삶이 이렇게 바뀌어도 되나?
지난 가을, 정확히 9월 어느날 이후, 내 인생이 180도로 급회전을 했다. 당혹스럽고 어지럽다. 땅은 하늘이 되었고 하늘은 사라졌다. 거꾸로 내려다보는 세상은 낯설고 사물이 뚜렷하지 않다. 윤곽만을 겨우 보며 감각적으로 판단하고는 있지만 아직은 거꾸로 매달린 것만도 힘겹다. 이전의 나는 게으른 삶으로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고 나이만큼 살집도 많아졌다. 하고 싶은 욕심은 턱 없이 늘어나 남편에게 요구하는 것이 많았고 남들과 비교하느라 비참한 생각을 끊지 못했다. 한마디로 어리석은 인간이었다.
남편을 보내고 마음이 급해졌다. 먹고 살아야 하는 문제와 이제 내 편은 없다는 생각에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어디까지가 내 역할이고 해 내어야만 하는 일인지도 알지 못했다. 쫒기듯 닥쳐오는 일을 처리하며 직장을 찾기 시작했다. 아이는 이제 자신이 성인이 된 기분인 모양이다. 모든 의사결정을 스스로 한다. 한마디로 엄마 말이 먹히지 않는다. 앞은 캄캄한데 한가닥의 빛도 보이지 않았다. 욕심으로 가득차 이미 비대해진 내 몸에 하늘 빛을 가려 세상을 어둡게 만들고 있는 것 같았다. 매일이 암흑이고 절망이었다. 아이가 아니었다면 포기하고 싶을 만큼 고통이 찾아왔다. 삶이란게 이렇게까지 절망적일 수 있을지 예전에는 결코 알지 못했다. 꽤 긴 시간동안 밀폐된 공간에 갇힌 기분이었다. 사실은 두 달이라는 시간은 짧을 수도 있는 시간이다. 하지만 절망적인 사람의 일분과 일초의 무게는 가늠할 수가 없다. 두달이 조금 지난 시간, 작은 바늘 구멍만한 빛이 새어 들어왔다. 그동안 반성하며 눈물로 빠져나간 내 욕심의 자리가 줄어들어 그 사이로 빛이 찾아 든 모양이다. 무사히 직장을 찾게 되었다. 절박하게 매달려 조건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다만 최선을 다했던 결과였다.
직장생활은 합격과 함께 빠르게 시작되었다. 부지런을 떨어야 했다. 빡빡한 근무시간에 집에 있을 아들 챙기기까지 잠시간 휴식의 짬도 나지 않는다. 이제 시작인데, 겨우 일주일을 버티고 나는 다시 우울해졌다. 앞으로 많이 힘겹겠구나. 계속 이런 삶을 살아가게 되겠구나. 남편이 내게 주었던 것은 경제력 뿐만 아니라 여유시간까지 였구나 하는 깨달음이 밀려들었다. 이러다 득도라도 하겠다. 내게 주어졌던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없었던 벌을 너무 과하게 받고 있구나. 몸은 지쳐서 골아떨어지기 일쑤이고 마음은 미안함만 가득하다.
직장생활은 예상밖으로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처음 만지는 돈 관리라 빵구를 매워야 할 때도 생겼고 프로그램을 아직 배우지 못해 신자분을 기다리게 하기도 했다. 때론 다른 지시가 없었지만 평소의 빠른 눈치로 미리 준비해 일이 막히지 않는 재치도 선 보였다. 그렇게 좋은 것도 나쁜 것도 골고루 경험하며 적응기를 거치는 중이다.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도 아니었고 월급이나 근무시간 보다는 근무환경이 중요했기에 선택한 직장이었다. 아니 이력서는 내 결정으로 냈지만 결국 선택 당한 건가? 하여튼 우연히 업무용 컴퓨터에서 발견한 이력서 파일을 보고 사실 으쓱했다. 많은 경쟁자의 화려한 경력에도 나의 무엇이 면접관의 마음을 움직였을까? 고마웠다. 잘 포장된 가식 덩어리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 내면의 무언가를 발견해 주었을까? 감사한 마음으로 비록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은 안도감에 편안했다. 그런 마음으로 하나하나 업무를 익혀가는 중이다.
사실 너무 고되다. 힘에 부쳐 집에 돌아와 아들을 챙기고 뒷정리를 하고나면 깊은 숙면에 든다. 졸고 있는 나를 보고 아들이 불을 끄고 문을 닫아 준다. 엄마와 대화도 하고 싶을 텐데 나는 내 몸 하나 추스리기도 버겁다. 문이 닫히면 아무리 피곤해도 예민한 내 감각은 눈을 뜨게 만든다. 그러면 창으로 들어오는 달빛에 흐릿하게 보이는 남편의 사진이 눈에 들어 온다. 나는 조용히 되뇌인다. '나 잘하고 있지? 걱정하지마. 잘 해 볼께.' 눈물이 주르륵 흐른다. 어리광부릴 남자의 부재가 못내 슬퍼 눈물이 흐른다. 애써 마음을 추스린다. 퉁퉁부은 눈으로 출근 할 수는 없기에 목으로 올라오는 설움을 잠 재우느라 애를 쓴다. 그러다 어느새 잠이 든다. 죽은 듯이 잠든다. 여전한 불면증은 패턴이 바뀌었다. 잠 못 이루던 불면증이 이제 시간마다 깨는 패턴이 되었다. 12시 취침 후 적어도 서너번의 잠이 깬다. 허전한 옆자리를 보면 못견디게 힘들지만 다독이며 다시 잠을 청한다. 그렇게 나의 새로운 루틴이 늘어났다. 밤마다 나는 잠을 깬다. 그리고 여전히 그가 그립다. 이제 겨우 그를 보낸지 석달이 되어간다.
땅이 하늘이 되어 거꾸로 매달린지 정확히 87일이 되었다. 남편이 보고 싶다. 납골당에 다녀 올 짬도 나지 않는다. 그가 기다릴 것만 같아 또 미안하다. 자꾸 미안해 눈물이 난다. 그의 사진을 쓸어보며 '미안, 조금만 더 기다려. 곧 보러 갈께. 익숙해지면 꼭 갈께.' 그렇게 또 부질없는 약속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