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객의 전도

by 완뚜

글쓰기를 시작하고 함께 모여 웃고 떠들며 마음을 문장으로 표현해 온 지도 몇 년이 흘렀다. 다들 어렵다고 그만두고 싶다고 하면서도 잘도 버티며 공동저서도 출판했다. 열심히 모여 인생을 이야기하고 위로를 받고 결국 글로 남기는 작업은 주부들이 누리는 어쩌면 호사일지도 모르겠다. 일단 정기적으로 토론을 위해 글을 써서 제출해야 하는데 한편을 위해 머리를 쥐어 짜야 하고 컴퓨터 앞에 앉아 족히 한 두 시간은 타이핑에 매달려야 하니 시간이 부족하다. 주부는 시간의 여유가 많아 보이겠지만 절대 부족한 것이 시간이다. 그러다보니 다들 지치고 힘겨워하는 것이 눈에 보여 휴식기도 가져보고 공연도 보고 여행도 하며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동아리를 이어오고 있다.

그놈의 코로나만 아니었다면.
아이의 방학은 엄마의 시간이 정지됨을 뜻한다. 아이 때문에 움직일 수가 없게 된다. 그동안 배우던 수업도 동아리 모임도 학부모 정기모임조차 방학을 한다. 방학없이 모임을 이어가보려 해도 참석률이 현저하게 떨어지니 어쩔수 없는 궁여지책으로 방학을 한다. 그런데 최근에는 학교의 재량이 많아졌고 학교마다 방학의 시기가 다르다. 결국 예전에는 한 달짜리 방학이 이제는 회원의 상황을 고려해 한 달 보름에서 두 달은 쉬어야 한다. 그렇게 두 달의 겨울방학을 끝으로 설레는 마음으로 모임의 시작을 기다렸는데 코러나19가 터졌다. 다들 아이가 있는 주부이니 더욱 모임은 어려워졌다. 그렇게 일 년의 시간이 지나갔다.

일 년, 말이 쉽지 초특급 아마추어 글쟁이는 일 년을 쉬면 감각이 무뎌진다. 머릿속으로는 쓰고 싶어 난리부르스를 추지만 정작 키보드 앞에 앉으면 손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이러다 모임도 무산될 것 같다는 조급함이 몰려왔다. 그들과 웃고 떠드는 시간이 나의 글 소재 발굴의 시간이었고 함께 글을 평가해 주는 시간은 좋은 공부 시간이었다. 이 모임이 내게 얼마나 중요한 존재였는지 일년의 휴식기에 절실히 깨닫는 중이다.

코로나 확진자가 몇 일째 나오지 않고 다행히 시에서도 단계를 낮추고 조심스러운 일상이 시작되었을 때였다. 우리도 조심스럽게 모임을 시작해 보기로 했다. 무뎌진 글쓰기 감각을 되찾기 위해 워밍업이 필요해 보였다. 모임 전에 아줌마들이 좋아할 프랑스 자수 수업을 먼저 시작하기로 했다. 그동안은 동아리 대상으로 글쓰기 수업을 했었는데 약간의 외도 시간도 필요할 것 같아 준비한 수업이었다.

아뿔사!
재미있다. 끈기없는 나는 실로 하는 작업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이건 좀 다르다. 다들 얼굴에 화색이 돌고 열심이다. 집에서 다른 작품도 만들어 톡방에 올리며 자랑한다. 이제까지 이렇게 열성적이었던 적이 있었나? 조금씩 걱정이 되었지만 단기 특강 형식이니 수업을 마치면 끝일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수업시간에 회원 한 명이 너무 재미있어 늙으면 전원주택에서 자수 놓으며 살고 싶다고 한다. 기어이 회원들 입에서 우리 모임에 한 달에 한 번 정도라도 자수를 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큰일이다.
사실 나도 혹했다. 모임이 한 달에 한 번 글쓰기를 하고 나머지 주에는 독서 토론, 윤독하기 등 다양하게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으니 프랑스 자수도 못할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나가던 도서관 회원이 자수에 빠진 우리를 보더니 책도 [일상을 수놓다]라고 제목 짓더니 일상을 수놓는 정도는 되어야 프랑스 자수를 하나보다고 농담을 던진다. 오, 색다른 발상에 그렇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우리 팀원들은 이것저것 배우기를 좋아한다. 못하는 게 없어 다양한 취미생활을 겸하고 있다. 그림, 매듭, 천연염색, 영상작업 등 그 영역이 다양하다. 가만히 들여다 보면 다들 예술적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자주 미술관 관람을 즐기는 모양이다. 그들은 예쁜 것을 좋아하고 그 예쁜 것이 내 손에 의해 탄생되면 기절할 만큼 흡족해 한다. 이제 말릴 수도 없는 일이다.

아마 우리 모임은 글쓰기 자수 동아리 정도로 이름을 바꾸어야 할 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짬짜면처럼 '글(쓰기)ㆍ자(수) 동아리' 정리로 개명해야 할까?
어쨌든 무엇이든 좋다. 아줌마들이 이렇게라도 모여 웃고 떠들며 즐거우면 그만이다. 글쓰기의 스트레스를 프랑스 자수가 풀어 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희망을 품어 본다. 그렇게라도 함께 할 수 있다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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