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

by 완뚜

갑자기 찾아드는 설움에 북받쳐 숨이 막힌다. 서럽다. 이렇게까지 큰 슬픔은 내 몫이 아닌 줄 알았다. 교만하게 살았던 나에 대한 일종의 벌인가? 버거워서 도망치고 싶은데 그것도 쉽지가 않다. 아직 책임져야 할 것이 있기에 포기조차 할 수 없다. 그래서 몸을 혹사시키면서 생각을 죽이며 버티고 있는 것이겠지.

치받고 올라오는 서러움이라는 종류의 감정이 어색하고 당황스럽다. 울컥 쏟아내는 눈물은 스톱모션마냥 일상을 멈짓거리게 만든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지금 제대로 걸어가고 있을까?

예전의 낭비벽은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여유시간이 돌아오면 습관처럼 쇼핑사이트를 둘러보다가 흠칫하며'미친X'이라며 되뇌인다. 습관이란 무서운 것이다. 퇴근 후 아이의 저녁을 챙기고 뒷 정리를 끝내면 무겁게 내려 앉으며 감겨오는 눈을 억지로 힘을 주고 버티며 소파에 기댄다. 아이가 책상에 앉아 있는데 침대에 누울 수는 없어서였다. 겨우 두 식구, 늦은 퇴근으로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하니 의식적으로 잠을 참게 된다. 그런데 억지로 깨운 잠에 무색하게도 이때부터는 몸이 기억하는 습관이 시작된다. 쇼핑 사이트를 뒤지고 인터넷으로 장을 본다. 장을 보며 의식적으로 아이가 좋아하는 거 하나, 남편이 좋아하는 거 하나 이렇게 장바구니에 담는다. 그러다 정신이 들면 남편이 좋아하던 품목에 삭제 버튼을 누른다. 망설이고 망설이다 구매버튼을 누른다. 최소한으로 구매했지만 먹다먹다 버리게 될 음식재료가 아까워서 망설이고 경제사정을 고민하느라 망설이는 것이다. 그러다 습관적으로 벽시계로 눈이 향한다. 남편이 퇴근하는 시간을 체크하다가 소스라치게 놀란다. '나 바보니?'이렇게나 기억이 나빴니?'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시간들, 특히 밤시간의 고요가 너무 낯설다. 세탁기의 종료음에 세탁물을 바구니에 넣고 베란다로 향한다. 취직 후 우리 집 세탁물은 자주 밤이슬을 맞고 있다. 베란다에서 빨래를 널다 안방 창문으로 시선을 옮긴다. 이것도 습관이다. 창문과 붙어 있는 침대헤드에 기대어 텔레비젼을 보고 있을 남편의 실루엣을 찾는다. 없다. 알고 있었으면서도 또 한 번 그곳으로 시선이 돌아간다. 이런! 또 미친 짓을 하고 있다.

남편이 좋아하던 음악, 좋아하는 프로그램, 즐겨 먹던 음식, 좋아했던 자리 등 모든 것을 눈에 담고 흠칫흠칫 놀라며 정신을 차린다. 언제쯤 모두 잊을 수 있을까?

어젯 밤, 또 다시 찾아온 불면의 밤, 서러워서 엉엉 울며 소리치고 싶은 깊고 검은 밤, 나는 무서워서 이불을 덮어 쓰고 숨을 죽인 채 가슴 언저리를 토닥거리며 "괜찮아, 괜찮아, 잘 될 거야, 잘 하고 있잖아."를 되뇌인다. 괜찮지 않은데. 이제는 스스로 거짓 위로를 한다. 그렇게라도 버텨야겠기에 나는 요즘 옛날 습관과 사투를 벌이며 새로운 습관을 만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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