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는 해돋이를 보고 소원을 빌고 그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계획을 짜곤하지. 특히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을 하거나 중학교 고등학교 진학을 할 때면 아무리 피곤해도 새벽 잠도 포기했고 온 가족이 캄캄한 밤길을 달려 바닷가에서 벌벌 떨어가며 새해의 떠 오르는 붉은 태양을 보며 기도를 했었지. 남편은 해돋이에서도 뒷편에 서서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 얼마나 간절히 아이를 위해 기도하고 있을지 잘 알 수 있었어. 그래서 아침 잠이 지독히 많은 나는 일년에 한 번, 그 날만은 잠을 설쳐가며 가족을 깨워 길을 나섰지. 남편이 좋아하는 것을 알았으니까. 그 정도는 서비스 정신으로 해 줘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2020년이 지나간다. 처음 맞이했던 때는 어감이 좋아 참 좋은 한 해가 될 줄 알았다. 이렇게 지긋하고 끔찍할 줄 알았다면. 알았으면 어쩔거야 어차피 방법은 없었겠지. 올 불행은 올 것이고 어차피 겪을 일은 겪게 되어 있는 것을. 일년을 코로나라는 병균을 피해 집안에 갖혀 생활했다. 상상도 못했던 일도 벌어져 남편이 떠나 버렸다. 아직도 얼얼하게 얻어 맞은 운명 앞에서 나는 지극히 나약하고 미미한 존재로 쪼그라 들었다. 남편의 빈 자리를 잘 버티어 나가야만 하는 숙제만 남았다.
방송에서 연일 코로나 환자의 증가로 타종행사도 해맞이 행사도 취소되었다고 떠들어 댄다. 아쉬워하는 뉘앙스를 풍기며 뉴스를 전한다. 그들은 알고 있을까? 연일 보여주는 해돋이 풍경에 가슴이 남아나지 못하고 있는 한 여인이 있다는 것을. 해돋이를 생각하면 연관 검색어처럼 남편이 생각난다. 우리는 몇 번의 새해 해돋이를 다녀왔고 기억에 남는 추억으로 자리 잡고 있다. 남편은 그 시간을 사랑한 남자였다. 만약 이 밤, 2020년 12월31일 밤, 그리고 1월1일 새벽에 그가 이곳에 있었다면 잠을 설치며 베란다 창에 매달려 있었겠지. 가는 해의 달을 볼 것이고 오는 해의 태양을 맞이하기 위해. 비록 바닷가로 가는 길은 막혔지만 베란다 창문에 의지해 하늘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그는 그런 남자였음으로.
다시, 나는 그를 그리워한다. 기억한다. 한동안 연말 정산을 하느라 바쁘고 고단해 화장실 갈 시간까지 줄이며 지내던 나는 31이라는 숫자 앞에서 무너져 기어이 남편을 기억해 냈고, 아파하고 있다.
마침 오전 근무만 하는 날이고, 마침 오늘은 1월1일 신년 첫 날이고, 또 마침 아들은 방학 후 챙겨주지 못하는 엄마 대신 이모 집에서 가짜 아들 노릇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마침 집에서 시간은 많고 또 혼자이니 나는 그 절묘한 상황에 말랐던 눈에 수분을 공급 중이다. 눈이 퉁퉁 붓고 있지만 그가 보고 싶어 수분 공급 행위를 멈추지 못하고 있다. 마침 혼자 적적하다는 핑계를 만들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