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한 피부는 젊음을 상징하듯 맑고 투명했다. 큰 키에 까만 생머리는 흰가닥 하나 섞이지 않았고 건강하다. 마스크 쓴 입매는 보이지 않지만 커다란 슬픈 눈과 짝을 이루고 있을 것이다. 그녀를 처음 본 나는 동병상련을 직감했다. 처음보는 얼굴, 처음 듣는 이름임에도 본능은 이성을 앞지른다.
새로 시작한 직장생활 한 달만에 젊은 가장의 죽음을 처리했다. 감정을 누르느라 힘겨웠다. 사망부터 장례, 삼오미사까지 곧 쓰러질 것처럼 흐느적거리며 사무실에 연락을 해 온 분은 망자의 모친이었다. 마음을 추스를 사이도 없이 먼저 간 아들의 장례절차를 준비하는 노모는 쓰러질듯 위태롭다. 경험해 본 사람만이 공감할 수 있는 짙은 슬픔에 압도당하듯 하루종일 머릿속을 헤집었다. 짧은 기간 동안, 나도 그들과 함께 얼굴도 모르는 망자의 장례식을 마음에 담은 채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잊을만큼 바쁜 시간을 보내며 서서히 감정의 속박에세 빠져 나오는 중이었다. 사무실에 업무로 사람이 몰리는 시간, 꾀 붐비는 틈바구니에서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가슴이 내려 앉았다. 분명 처음보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녀의 눈빛이 낯설지가 않았다. 시선을 돌리니 옆에 쓰러질듯 사무실에 드나들던 망자의 어머니가 계시다. 그래서 였구나. 그녀는 고왔다. 눈에는 슬픔을 덕지덕지 씌우고 혼은 어디로 나가 버린듯 멍한 표정이다. 나도 얼마 전까지 저런 모습이었을까? 며칠전 사무실에 들렀던 누군가의 말이 생각났다. 처음 출근할 때는 표정이 힘들어 보였는데 이제 적응이 되었나 보다며 얼굴이 좋아졌다고 하던 그 말. 내색하지 않으려 무던히 노력했던 그때가 떠올랐었지. 그리고는 얼굴이 좋아졌다는 말에 죄책감이 들었었다. 마치 남편을 잊고 잘 지낸다는 꾸지람으로 들렸었지. 젊어서 더 아프게 다가오는 그녀를 보며 꼭꼭 숨겼던 내 처지를 드러냈다. 언제든 답답하거나 이야기 상대가 필요하면 사무실로 오라고, 나도 같은 입장이라고 딱 그 말만 했는데. 그녀의 눈 속에 웅덩이가 만들어진다. 시어머니는 연신 나를 보며 미안합니다를 되뇌인다. 내게 미안할게 무엇이기에. 지나고 보니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슬프다고 우는 모습도 보여주지 못하는, 그런 시기가 오더라. 그래서 그럴때 붙잡고 얘기할 상대가 있으면 참 좋겠구나 하는 생각이 수도없이 들었었다. 별 도움은 되지 않겠지만 그녀의 손은 잡아 줄 수 있을거 같아 내민 손이었다. 내민 손을 잡을지 말지는 그녀의 선택이지만.
그녀를 만났던 그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유난히 힘겨웠다. 시야를 점령한 눈물 때문에 밤 거리의 조명이 환상적으로 흐느적거린다. 이렇게 예쁜 세상에 천사처럼 착했던 그 남자는 끝내 사라져 버렸다. 온 몸이 추위에 떨린다. 히터를 최고로 틀어도 추위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가 엄청나게 좋아하며 선물해 준, 그래서 내 앞에서 활짝 웃으며 잘 난 척하던, 그 고급 자동차를 탄다. 히터를 아무리 올려도 따뜻해지지 않는 몸은 결국 손끝부터 시려오더니 한기로 온몸이 떨린다. 아니, 그의 선물이라 더 추운 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의 빈자리 때문에 생긴 바람길이 온 몸을 휘감고 있는 것은 아닐지. 추워서 또 그의 품이 생각나는 퇴근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