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 Sugaring off 1955
"수고하셨습니다."
입을 헹구는데 핏물이 배어 나왔다.
아가미를 벌리고 숨을 몰아 쉬는 물고기 마냥 맥없이 '하, 하' 소리만 내며 입을 벌리고, 치과 의자에 누워 있던 참이었다. 지난주 스케일링을 하러 갔다가, 잇몸에 염증이 있어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소견을 들었다. 치과 치료에 익숙하지 않은 나로서는, 너무도 날카로운 소리를 내는 기계들이 차칫 잘못해서 잇몸이나 입술을 다치게 할까 봐 영 불안해서 몸에 힘을 주게 되었다. 손에서는 땀이 났다. '이러니 어린아이들이 치괴를 무서워하지'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아이들은 치과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 무서워하는 것이었다. 물만 마셔도, 귤 하나를 까먹는데도 이가 시렸다.
오십을 넘기면서부터 책을 읽기가 불편해졌다. 안과에서는 노안이라고 했다. 늙어가는 자연스러운 과정, 노화. 시력이 좋은 편이었기에 안경을 써야 한다는 것이 영 적응이 되지 않았다. 버틸 만큼 버티다가 돋보기를 장만하니, 뿌옇던 책 속의 글자가 선명해졌다. 책을 읽기 위하여 돋보기안경을 찾다가, 안경이 흔하지 않던 예전에는, 눈이 침침해지면 어떻게 책을 읽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예전에는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진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는 것과, 수명 또한 요즘처럼 길지는 않았다는데 생각이 미쳤다.
어린 시절, 나는 책을 읽는 어른을 본 적이 없다.
그들은, 노동하는 사람들로만 보였다.
아이들과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열정적으로 다니던 시기, 나는 그곳에서 그동안 본 적이 없던 노년의 어른들을 만났다. 우아한 옷차림으로 지인들과 그림을 감상하거나, 돋보기를 끼고, 유물 옆에 쓰인 안내문을 신중하게 읽는 어르신들을 보았다. 아! 이렇게 다르게 사는 사람들이 있구나 하는 놀라움이 포말을 일으키며 퍼져나갔다.
새해가 되니 나이를 한 살 더 먹었다. 지인은 '노력하지 않고 저절로 되는 일은 나이 먹는 일'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나이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새로운 기회가 주어진 것이고, 삶을 영유할 시간이 생기는 것이다. 글을 쓰다 보면, 같은 말만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우물의 밑바닥이 보일 듯, 고갈되어 더는 짜낼 것이 없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나는 내 인생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것인가, 낮은 질문을 한다. 글을 쓰면 쓸수록 빈약함이 드러나고 알고 싶은 것들이 많아진다.
'나는 행복했고, 만족했으며, 이 보다 더 좋은 삶을 알지 못합니다. 삶이 나에게 준 것들로 최고의 삶을 만들었어요. 결국 삶이란 우리 스스로 만드는 것이니까요'라는 말을 남긴, 애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는 모지스 할머니로 불리며,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화가로 꼽힌다.
76세에 처음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서 101세의 나이로 세상을 뜰 때까지 왕성하게 활동하며, 1600여점의 그림을 남겼다. 자신이 살아왔고, 살고 있는 곳의 그림을 그렸던 모지스 할머니의 그림은 밝고, 따뜻하며 삶에 대한 낙 관이라는 일관된 주제가 보인다. 그래서 사람들의 마음을 일께 우고 위로하는 것이고, 기억을 상기시킨다.
단풍나무 수액으로 메이플 시럽을 만든 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하나를 알면 열 가지의 모르는 것들이 생겨난다. 모지스 할머니의 책을 읽어 보았다. 버터와, 감자칩을 만들어 팔고, 우유를 짜고 농장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고, 닭을 치고 , 양말을 뜨는 모습이, 우리네 부모님의 모습과 닮아 있었다. 어린 시절에는 뚝딱, 맛난 것들을 잘도만들어 내던 어른들이 있었다. 내남없이 집에서 술을 빛고, 두부를 쑤고, 묵도 쑤고, 떡을 찌고, 엿을 고았던 때가 있었다. 지금의 나는 그러한 것들을 반의 반도 안 하고 살아간다.
다만, 그러한 유산을 자양분으로 삼아, 과거의 돌멩이를 꺼내 앞날에의 디딤돌로 놓는 중 일게다.
어반 스케치 수업을 올해도 신청했다.
좀처럼 늘지 않는 솜씨에 흥미를 잃다가도 수업이 있는 월요일이면 다시 시작한다. 일주일에 그림 하나만 그려 내자고 작디작은 목표를 세운다. 선생님께서 이번주에 단톡방에 올려주신 그림이 맘에 들었다. 어린 남매가 언덕 위에 앉아서 잔잔한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그림이었다. 은비늘 같은 윤슬이 일렁이는 바닷가에서 누구를 기다리는 것일까, 두 아이에게는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일까 궁금 해졌다.
유약하고, 쇠락해 가는 육체를 보완해 줄 수 있는 도구들이 있어서 다행이다. 갇혀 있는 생각들을 핸드폰 메모장을 이용해서 덜어내고, 종이와 붓과 물감을 사용하여 그림으로 풀어내며, 하마터면 그냥 흘러갈 시간들에 새로운 지문을 새기듯 의미를 그려 넣는다.
긴 겨울이 지나고 햇볕이 따사로운 봄이 되면 방문을 다 떼어내서 장독에 기대놓고 물을 뿌려
더러워진 창호지를 떼어냈다. 문살에 붙어 있는 창호지는 살살 긁어내야만 했다. 그리고 미리 쑤이서 식혀 놓은 밀가루 풀을 발라서 새로운 창호지를 붙였다. 앞산에 피기 시작한 분홍 진달래를 따다가 책갈피에 살짝 눌렀다가, 문살에 살짝 붙여 창호지를 바르기도 했다. 잘 마른 방문으로 비치는 분홍꽃의 은은한 모습은 수줍은 아리따움이었다. 글자를 몰라 책을 읽을 수가 없고, 그림이라곤 그려 본적 없는 어른들은
자투리 천을 모아 조각 보를 만들며, 옛이야기를 구수하게 들려 주었다. 삶은 나에게 귀중한 것을 주었다.삶이 내게 준 것들로 최고의 시간을 만들며 은은하게 살아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