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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집

by 그방에 사는 여자


해거름 저녁이면 집에 있어도,집에 가고 싶다.집은 상처일까?기억일까?


혼자 떠돌던 시절에는, 다른 집들의 불빛조차도 다정해 보였다. 옆집에서 들리는 말소리, 숟가락 달그락 거리는 소리, 물소리에도 마음이 저릿해졌다. 그땐 그 창문 안의 불빛들은 함께라는 이유만으로 따뜻할 것 같았다. 방과 방들을 건너며 살던 시절들, 형광등을 켜두고 잠드는 밤은 길었고, 마른 흙벽에 담장이 없는 집에 사는 듯 어수선했던 어린 날의 꿈을 자주 꿨다. 잠에서 깨면 목이 칼칼했다.


이 강소의 그림 '무제'에는 물과 집이 보인다.

전시의 제목 < 풍래 수면 시>는 '바람이 물에 스칠 때'를 뜻하며, 송나라 성리학자 소용의 시에서 따온 문구라고 한다. 집이라는 고딕의 형상과 흐르는 물의 형태는 어느 한순간 스치듯 맏물리면서 사연을 품게 되는 것은 아닐까. 집은 늘 그 자리에 서있는 속성이 있는데, 흐르는 물에 점자 허물어지는 형태를 그리고자 하였을까, 아니면 보이지 않는 질서를 깨닫고자 하였나. 흘러간다고 해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도 아닌, 한자리에 오래 서 있다고 해서 늘 같은 모습인 것은 아닌, 무엇이든 간에 완결됨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각자의 경험들이 넘나들고 흘러감이 그림의 최종 도착지 일 것이다.


아이들은 어렸을 적에, 버스나 지하철에서 곧잘 잠이 들었다. 심지어는 길 위에서도 잠이 들었다. 어디에서나 아이들에게는 엄마라는 존재만 있으면 되었다. 나는 몸집을 한껏 부풀리고 커다란 집이 되었다. 아프지 말아야지, 오래 살아야지, 엄마니까. 주문을 외우며, 온갖 것을 품은 커다란 집이 되어 한세월을 살아 냈다. 요즘은 몸의 힘도 바람도 빼고 일 인분으로 돌아오는 중이다.


한때 집은 낮잠 자는 집이었다. 낮과 밤이 바뀐 아이들은 밤이면 부산했고 낮에는 고요하게 잠을 잤다. 그 잠이 무겁고 싫어서 밖으로 나왔다. 아이들이 어릴 때 보던 그림책 '낮잠 자는 집'처럼, 비가 그치고 무지개가 뜨면 아이들은 차차 깨어날 것이라는 걸 알았다. 그러나 잠에서 깨면 말들의 투척에 종이 창문 같은 마음에는 구멍이 났다.


어반 스케치를 하면서 가장 많이 그리는 것은 집이다. 골목길에, 언덕베기에, 기찻길 옆에 있는 집. 사람의 얼굴만큼이나 집들의 표정도 다양했다. 그림을 그리다 요즘 집들에는 굴뚝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렸을 적 집들은 방의갯수만큼 굴뚝이 있었다. 저물녘 굴뚝의 연기는 밥 짓는 냄새와 함께 다정한 손짓이었다. 대청마루에 누워서 본 대들보에는 한문으로 글씨가 쓰여 있었다. 아마도 집이 다 지어진 날일 것이라고 누군가 일러 주었다. 오래전에 지어진 집이라고 했다. 그 집은 텅 빈 채로 아직 그곳에서 스러지는 중에 있다. 그 집에 살았던 사람들의 시간을 품고 집은 바람과 비와 눈을 맞으며 있다.


나의 집은 여전히 허술하다.

별거 없다. 밤이면 뗏목을 타고 밤바다를 떠다니는 듯 고단하던 날들도 다 지났다. 어쩌랴, 나는 항상 B급을 선택하며 살았다. 그러니 대충 삐그덕 거리며 흐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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