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 만혁. 말과 소녀.(한지에 목탄)
행복스토리 빌라 위 하늘을 가르며 군용 헬리콥터가 날아간다. 맞은편 횡단보도에서 하얀 헬맷을 쓰고 주황색 마스크를 쓴 남자가 자전거를 타고 지나쳐 갔다. 하늘은 청량하다.
대부분의 날들은 이렇게 지나갔으리라. 바람은 어제 보다도 더 찬기가 빠졌다.
잔잔하게 바라보며 그윽하게 조우하고 교감을 하며 함께 바다를 바라보던 갈매기의 시간. 화가는 무슨 연유로 바다를 노랑으로 메꿨을까? 살랑 부는 바람에 소녀의 머릿결은 가볍게 날린다. 순한 눈을 가진 말은 나약한 어깨를 맘껏 부비고픈 든든한 조력자의 얼굴이다. 스물과 서른 사이의 그 시절처럼, 밤 기차를 타고 간들 거기 진짜 푸른 바다가 있을까? 포말이 부서지며 하얀 사자처럼 달려오는 파도는 같은 이야기만 실어 올 테고 갈매기는 인사도 없이 새우깡만 날름 삼키겠지.
순간을 순간으로 점멸하는 신호등은 계속 걸으라 한다. 회색과 흰색을 번갈아 밟으며 소멸과 생성을 반복하는 리듬에 발을 맞춘다. 배 수아의 소설 '바우키스의 말'의 문장들처럼, 영원히 닫히지 않는 원을 향한 그리움의 도형인, 끝없는 나선형의 계단을 내려가며, 좁고 깊은 곳에 이르게 되는 것이 삶의 본래의 모습이 아닐까.
건널목을 건너고 카페거리로 들어섰다.
점심 무렵이면 줄을 선다는 파스타 맛집과 디저트 가게를 지나. 큰딸과 한 달에 한 번쯤 가는 태국 쌀국숫집 앞을 지나갔다. 지금은 바빠진 딸이 침대를 등짐처럼 지고 누워 있던 날들, 간신히 불러내 쌀국수를 먹이고, 카페를 가고, 카페 둘레길을 걸었다. 분수대 광장에 이르러, 날이 좋으니 다리 아래 천변길을 걸을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걷기를 하기에 적당한 신발을 신고 외출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어제는 이곳에서 14년 지기 지인과 두 달 만에 점심을 먹었다. 차를 마셨던 카페의 그 자리는 다른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어제도 과거가 되었다. 지나간 것들은 어디에서도 되찾을 수 없을 것이다. 초등학교 1학년 같은 반아이 엄마로 만나, 군대와 대학, 재수,삼수,알바로 커버린 아이들만큼 깊어진 인연이다.
떡집에 들렀다. 둘째 딸이 좋아하는 돈가스 집에서 오른쪽 코너를 돌아 다섯 걸음쯤 올라 가면 나오는 곳이다. 흰머리를 차분하게 빗은 여든쯤 되어 보이는, 깔끔하고 인상 좋은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곳이다. 진열대에 내가 찾는 모시 송편이 보이지 않는다. 모시 송편이 없는지 여쭈니, 있다고 하시며 아래쪽에서 찾아 주신다.
묻기를 잘했다. 큰딸이 좋아하는 약밥도 사고, 둘째가 좋아하는 가래떡도 샀다.
"그럼, 그다음엔 어떻게 되는 거죠?"
" 내일 밤 다시 돌아와서 모든 걸 또 한 번 하는 거죠" " 저는 이 장면을 손꼽아 기다려 왔는데 뭔가 다른 느낌일 줄 알았어요."
" 예전에 물고기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어, 그 물고기는 늙은 물고기에게 "저는 바다라는 곳을 찾고 있어요"라고 말했지. "바다" 늙은 물고기가 말했지, " 지금 네가 있는 곳이 바다야" "여기요? 여기는 그냥 물이 잖아요, 제가 원하는 곳은 바다라고요" 마트에서 나와 무거운 장바구니를 들고 걸으며 영화 '소울'의 한 장면을 떠올려 보았다. 그다음은 계속 연주를 하고, 계속 헤엄을 치면 된다. 영원히 새로운 것은 없고 하던 것을 계속해내는 힘으로 바다를 구축하는 것이다. 지금 여기는, 나의 바다다. 새 프라이팬의 포장지를 막 벗겼을 때의 반짝임, 새로운 시작을 하는 아이들의 긴장과 좌절을 함께 하며 일궈온 나의 청량한 바다.
3월이 되자,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떠밀리듯 덜컥 고3이 되어 버린 둘째 딸이 매운맛 새우깡을 사 왔다. 과자도 매운맛도 좋아하지 않는 나는, 쇼파에 앉아서 딸의 다리를 내 다리 위에 올리고 쓰다듬으며, 주섬 주섬 풀어놓은 고3 인생의 매운맛 이야기를 들으며 새우깡을 먹었다. 어느 날 깨어나 보니 갑자기 고3이라는 특별해야만 하는 존재가 된 것처럼 딸은 당황했다. 한참을 늘어놓던 이야기 끝에 아이는 "예전에 갈매기한테 먹힐 뻔했잖아" 라며 다섯 살 무렵 바닷가에 갔을 때, 갈매기한테 새우깡을 주던 순간을 떠올렸다. 다섯 살 아이에게 갈매기가 떼를 지어 몰려들었었다. 나는 그 갈매기들에게 매운맛 새우깡을 주었다면 아마도 '퉤!' 뱉어 버리고 가버렸을 거라며 웃었다. 아이는 여전히 매운 이야기를 하였고 나는, 아이의 순하고 든든한 말이 되어 주었다.
보통날의 청량함들이 반복되는 이곳은 너와 나의 바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