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간여를 걸어서 학교를 다니던 코 흘리게 국민학생 시절, 학교에 갈 때는 새벽에 일어나 밥 한 그릇씩 먹고 학교로 향했다. 가는 길에는 동네 아이들과 모여서 함께 갔다. 엄마가 밥 위에 올려 쪄준 커다란 술빵을 들고 먹으면서 가는 날도 있었다. 엄마는 마땅찮은 재료로도 맛난 것들을 뚝딱 만들었다.
갈 때는 잘만 갔는데 돌아오는 길은 더디고 더뎠다. 비 오는 날이면 도랑에서 신발을 벗어 올챙이를 잡느라 한 세월을 다 보냈다. 햇볕 쨍쨍한 여름날이면 숲 그늘에서 종이 인형놀이를 한참 하다 배가 고프면 길 옆 밭에서 무 서리를 했다. 손톱으로 껍질을 돌돌 벗겨 한입 베어 물면 무는 시원하고 달았다. 봄이면 지천으로 피는 진달래 꽃잎을 따먹으며 온 산자락을 흩고, 신작로에 군용 트럭이 지나가면 " 건빵 주세요!"라고 제비 새끼처럼 합창을 했다. 저 멀리 길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되는 곳에 군부대가 있었다. 군인 아저씨들이 던져주는 건빵을 "와"하며 달려들어 맛나게 먹었다.
짚더미를 높이 실은 우마차를 만나는 날은 운이 좋은 날이다. 소는 걸음이 느리다. 짐을 가득 실은 마차를 타고 가는 것보다 그냥 걷는 것이 더 빠를 성 싶지만, 다리가 아픈 우리 조무레기들은 날름 마차 뒷부분에 올라 엉덩이를 걸치고 앉았다. 높이 쌓인 집단 덕분에 마차 주인아저씨는 우리들이 탄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불쌍한 소만 그렇지 않아도 무거운 수레가 왜 더 무거워졌는지 영문을 모른 채 눈만 꿈뻑거리며 걸음을 옮겼을 것이다. 볏짚에서는 나는 익숙하고 따뜻한 냄새가 좋았다. 냄새에도 온도가 있었다. 마차는 느리고, 엉덩이는 백이고, 한참을 쉬었다 싶으면 마차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마당 끝에 앉아서 건너편 집 담장가에 서있는 미루나무 잎사귀를 멍하니 바라보던 오후, 목덜미를 흩고 가는 바람이 상큼했다. 지붕보다도 더 키가 큰 미루나무의 잎사귀는 바람결에 은비늘처럼 반들거렸고 하늘을 물들이던 노을은 미루나무 잎사귀를 황금색으로, 검은색으로 물들이며 사그라져 갔다. 그냥 앉아서 무언가를 바라보는,널린 게 시간이었다. 하루도 같은 날이 없이, 매번 다른 하루가 펼쳐졌다. 요즘에도 한 곳을 오랫동안 응시하는 일이 잦다. 카페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거나, 산책을 하다가 벤치에 앉아서 부지런히 종종거리는 참새를 바라보며 가만히 있는다. 빨래를 널다가, 밥을 하다가도 하늘을 본다.
존 컨스터블은 태어나고 자란 영국 서포즈 지방의 스투어 강변의 고향 마을을 평생 아끼고 사랑했다고 한다. 부유한 곡물상인의 아들이었던 그는 고단한 노동과 가난에서 자유로웠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누구나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마을을 이토록 따뜻하고 섬세하게 그리진 않았을 것이다. 해외로 그림 여행을 떠나는 대신 영국의 풍경, 자신이 머물고 있는 지역을 반복적으로 그리길 즐겼던 존 컨스터블에게는 날마다 새로운 풍경이 펼쳐졌을 것이다. 날씨와 구름에 대한 관찰은 많은 인내를 필요로 하였을 것이다.
학교에서 돌아와 가방을 장독대 위에 던져두고
벌렁 누웠다. 볕에 달구어져서 장독대 콘크리트는 따뜻했다. 하늘도 보고 구름도 할 일 없이 보다가 설핏 잠이 들기도 했다. 그러다 먹구름이 몰려와 갑자기 소낙비라도 내리는 날에는 비설거지로 정신이 없었다.
가만히 그 자리에 있기 위하여는 벌새처럼 수많은 날갯짓이 필요하다. 세상은 신비롭다.
사람은 사람을 만나고, 잎사귀는 아침 이슬을 떨군다. 나는, 자연에 무임 승차 하여 양껏 즐기며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