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다정한 현존

by 그방에 사는 여자

인간은 얼마만큼이나 타인과 밀착될 수 있을까.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넘쳐나는데 왜 인간은 이토록 고립적일까. 사실, 밀착된다는 건 대단히 성가신 일이다. 숨결과 체취뿐만 아니라 함께 나눠야 할 것들이 많아진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밖에서 스쳐 지나가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에게 괘념치 않는 모습이고 상당히 자유로와 보인다. 그들은 초월적인 존재가 아닐 텐데도, 단지 그들을 알지 못한다는 사실 하나로 아픔이 없는, 겉으로 드러나는 수많은 결점들에도 불구하고 의연하게 세상을 살아내는 존재들로 느껴진다.


"키스"조각은 손바닥으로 슬쩍 쓸어 보면 조금은 거칠 것 같다. 눈으로 보기에는 부드럽게 느껴진다. 두 사람이 한치의 틈도 없이 밀착되어 있는데 답답해 보이지 않는다. 불필요한 것들은 생략했기 때문이다. 만남이라는 것, 관계라는 것은 때에 따라서는 간결하고 원시적이다.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도 없고, 타인과 항상 함께일 수도 없다. 오롯이 혼자 있는 시간에서 조차도 정말로 혼자는 아니다. 다만 나와 엮이지 않은 타인들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관계 속에서 오류를 범하고, 갈피를 못 잡고, 샛길로 빠졌다가 되돌아오기를 반복한다.



부랑쿠시의 " 키스"는 36년 동안 5 작품이 제작되었다고 한다. 작가는 이 조각들을 통하여 무엇을 얻고자 하였을까. 온전한 받아들임의 여정이었을까.

영화 " 스윗 프랑세즈"에서 '루실'과 '부르노"는 음악을 나눈다. " 우리는 만날 거예요... 지금과는 다른 모습으로...."

" 잘 지내야 해요"

" 내가 잘 지내는 것이 당신에게 중요한가요?"

"중요해요..."

그들은 처음이자 마지막의 키스를 나누고 서로를 떠났다. 사랑은 찰나이고 기억은 영원하다.



받아들임에 대하여 생각한다. 바라는 만큼은 아니었으나 옹색하고 졸렬한 그것도 사랑이었음을, 관용에도 용기가 필요함을 알게 된다. 그리하여, 지금 이후의 삶에서는 사랑받았다고 믿으며 스스로 충만해지기를 선택하는 것이다. 상대의 등을 신중하게 감싼 두 팔은 다정한 현존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봄의 모나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