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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의 그 어떤 빛

by 그방에 사는 여자


마지막 장을 봤다.

늦은 저녁 마트에 들렀다. 초록색 빈 바구니를 들고 텅 빈 진열장 사이를 천천히 걸어 다녔다.

가득 차 있던 물건들은 어느새 사라지고, 미처 치우지 못한, 라면이나 냉동 생선류만이 마지막 구호품이라도 되는 양 남아 있었다. 냉동된 절단 동태를 집어 들었다. 그나마 살 수 있는 물건이 있어 다행이라는 안도감 마저 들었다. 그런데, 무가 없으니 찌개를 어떻게 끓인담, 뭐 어떻게든 되겠지. 며칠 전, 십 년 동안 매일 드나들던 마트가 영업을 종료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옆의 주유소와 카센터까지 매각되어 빌딩이 들어선다는 소문이 돌았다. 다음 날, 영업을 중단한다는, 그동안의 성원에 감사한다는 현수막이 입구에 걸렸다. 어쩐지 채소가 시들했더라니.

24시간 운영하고, 집에서 가까워서 아무 때나

부담 없이 드나들던 곳이었다.


다음 날, 새벽 둘째를 데리러 스터디카페로 가는 길은 어두웠다. 시커먼 어둠 속에 잠긴 마트는 입구에 영업 종료 안내와 함께, 바리케이드와 쇠사슬로 입을 꼭 다물고 있었다. 이곳이 이렇게 어두웠나, 이렇게나 넓었나. 24시간 밝았던 마트가 있으니 가로등도 없던 탓에 더 어두웠다. 아이와 돌아오는 길 군것질 거리를 살라치면 계산대의 여자는 피곤 가득한 얼굴로도 아이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곤 했다. 그녀는 언제 잠을 잘까, 생각해 보곤 했다. 그녀는 어디로 갔을까. 다들 어디론가 잘 갔겠지.


빛의 화가, 방혜자는 어릴 적 개울가에서 조약돌에 비친 빛을 보며 '이 빚을 어떻게 그릴 수 있을까'에 사로 잡혔다고 회고했다. 어릴 적 나는 스텐 세숫대야에 발을 담그고, 우물가에 앉아서 발가락을 꼼지락 거려 보았다. 하얗고 작은 발가락 사이로 물은 빛을 잘게 부수며 뽀글 거렸다. 두 손을 모아 동그랗게 물을 뜨면 물은 금세 새고, 빚만 한 움큼 남았다.


이십 대 시절, 겨우 방한칸 얻어 자취하던 그때,

늦은 귀가 길 골목 어귀에 불을 밝히고 있던 작은 슈퍼가 떠오른다. 손바닥 만한 텔레비전을 켜놓고 턱을 괴고 졸고 있던 주인아저씨는 말이 많지 않았다. 그러나 조미 김이나 참치 계란, 라면 소주를 사며, 동네에서 유일하게 한두 마디 나눌 수 있는 사람이었다." 오늘은 춥네요" " 오늘은 덥네요" " 퇴근이 늦었네요" "사과가 달겠어요" 쌀쌀맞은 집주인아줌마는 어쩌다 마주쳐도 살가운 대화가 없었으니 슈퍼 아저씨와의 잠깐의 일별이 나의 안부였다. 버스에서 내려 오분 정도 걸어가면 보이는 작은 슈퍼의 불빛은 잠시나마 나를 따뜻하게 했다.아저씨가 별것 안 하고 길가에 내놓은 의자에 앉아서 부채로 모기를 쫓으며 앉아만 있어도 의지가 되었다.


혼자 살던 시절 나는 불을 환하게 켜두고 잠을 잤다. 두려움 때문이었다. 밤잠을 잘 못 잔 나는 전철 안에서, 버스에서 꾸벅꾸벅 졸았다. 할 일이 많은 어떤 사람들은 이틀에 한 번씩 자기도 한다는데 나는 잠을 극복할 수는 없었다.


수초와 물결 자갈이 찬란하게 흔들리는 걸 보며' 이런 것도 그림으로 그릴 수 있나' 생각했다는 화가. 사는 게 원래 거기 있는 걸 찾아 떠나는 여정이 아닐까. 화가는 " 무엇을 그린다는 행위에 앞서, 우주와 내가 하나가 되어, 내가 우주 안에 있으며, 우주가 내 안에 있음을 빛으로 색으로, 기 에너지로 깨닫고자 한다"라고 말했다.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에서, 빨간 다라를 이고 산동네로 이사를 왔던 찬실이. 다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하고, 전구가 나가자, 집에 찾아온 후배들과 함께 플래시 불빛에 의지해 어두운 길을 걸어 내려간다. 찬실이는 둥그런 달을 보며 생각한다. " 우리가 믿고 싶은 거, 하고 싶은 거, 보고 싶은 거". 그런 것들이 때때로의 빛이 아닐까. 너무 목마를 때 꾸는 꿈은, 꿈이 아니라 하니, 가벼웁게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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