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감각

by 그방에 사는 여자

근래에는 어둠을 보지 못했다.

도시에는 어둠이 없다. 밤에도 조명은 높고 밝아 어둠을 드러낼 수가 없다. 세상의 어둠은 자꾸만 숨고, 도망치고, 웅크린다. 어디에나 맑간 얼굴의 사람들이 차 있다. 어디서나 ' 웃음이 폭죽처럼 터지고 밝음은 어디에나 흐른다.



어린 날, 저녁 7시에서 8시 사이는 검은 모래가 덧 입혀진 듯 느껴졌다. 눈앞의 세상은 분간이 안되고, 손바닥으로 쓸어 보면 왠지 자욱이 날 것만 같았다. 손바닥을 펼쳤는데도 손가락의 형체는 희미하고, 손을 펄럭거려 보고, 다리도 흔들어 보았지만 서서히 어둠에 잠기는 몸은 사라져 갔다. 내게 무엇이 있나 감각하여 보았다. 내게 있는 것을 기억하였다. 내 몸에 달린 것들의 형체가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삽시간에 부드러운 어둠이 감쌌고, 나는 몸을 움직여 보았다. 자유로웠다.



여름날 저녁. 방바닥에 누워 더위를 식히고 있는 내 옆으로 큰 딸이 다가와 누우며 말했다.

" 엄마, 나는 결혼이나 일찍 해야겠어"

스물두 살 딸은 아직 남자 친구도 없고 친구도 손에 꼽을 정도이다. 문득 외롭고 미래가 불안할 때면 딸은 이렇게 말을 한다. 내 옆구리를 파고드는 아이에게 "엄마가 살아 보니, 외로움에서 섣부르게 벗어나려 하면, 괴로움이 오더라. 또 괴로움에서 도망가려 하면, 불행이 닥쳐오는 법이지, 그러니 그냥 있는 자리에서 뿌리를 잘 내려야 해. 뿌리를 계속 내리고, 미련해 보여도 이곳에 있어야 하더라"라고 말하며 딸의 어깨를 감쌌다. 예전 같으면 딸은 그건 엄마 생각이고 어쩌고 하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을 터이다. 밥 한 숟갈 더 먹었다고 딸은 "그건 그렇지 "하였다.



밀란 쿤데라는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삶이 잔인했기에 공동묘지에는 항상 평화가감 돌았다'라고 하였다. 사비나는 참담한 현실에서 안식을 얻고자 할 때는 묘지를 산책하였는데, 묘지는 정원과 비슷했다. 무덤은 생생한 빛깔의 꽃들로 덮여 있고, 죽은 자들은 아이들처럼 순진 무구했다. 어둠과 묘지는 닮았고 끝은 단순하다. 그러니 삶은 담백하다.



호퍼의 그림은 따뜻하다.

붉은 계단을 내려가 어디론가 떠나려고 하는 것일까. 어둠이 깊은 숲에서 돌아와 잠시 숨을 고르며 뒤 돌아보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그냥 붉은 계단 위에 앉아서 건너편 숲을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검은 숲 너머에는 옅고 푸른 밝음이 있고, 그 뒤에는 흰 물결이 있다. 그것은 끝내는 품어야 할 소망일 것이다. 열린 문으로 여기와 저기는 연결된다.



어둠을 감각하는 일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을 자각하는 일이다. 애써 내린 뿌리에 물을 주고 돌보며, 천진한 결론으로 도달하는 일이다. 저물녘 풍경이 펼쳐지는 붉은 계단에 앉아 오래도록 잡답을 나누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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