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그방에 사는 여자

커다란 검정 풍선을 사촌 오빠가 탁 터뜨리자

파란색 하트 모양의 색종이들이 나풀거리며 떨어졌다. 아들이었다. 결혼식 말미에 사회자가 신부의 뱃속에 소중한 생명이 잉태되었지만 아직 성별을 모르는데 오늘 풍선을 터뜨리면 알게 될 것이라고 했다. 파랑이면 아들, 분홍이면 딸이란다. 아들만 세명에, 몇 년 전 결혼한 큰 아들도 아들을 두었던 터라 아마도 손녀를 바랐을 새언니는 서운한 표정이 역력했다.

세상은 이렇게나 다양하고 오묘한 색들이 넘치는데, 아직도 신랑의 엄마는 옥색 치마를 입고 신부 엄마는 연분홍 치마를 입는다.

어느 집은 아들만 있고, 또 어떤 집은 딸만 있기도 하고 한껏 기울어진 시계추 같아도 얼추 균형이 맞아 돌아가는 게 오묘한 섭리다.

꽃다운 스물세 살에 시집을 와서 눈도 제대로 못 맞추던 부끄럼쟁이 새색시가 시어머니가 되었다

마루에 쌀가마니를 쌓아 두고도 만삭의 며느리에게 국수만 삶아 먹게 하였다는 심술보 가득한 시어머니는 돌아 가신지 오래되었어도 잊히지 않는다. 영양실조로 앞니가 두 개나 빠졌다는 그녀는 임플란트를 해 넣은 하얀 이를 보이며 웃었다. 기다리는 부인 아랑곳하지 않고 친구들과의 환담이 길어지는 남편을 그래도 기다리는 그녀, 꽃 분홍치마 입고 와 이제는 푸른 치마를 입었다. 그토록 무겁기만 하던 다홍빛 계절을 지나고, 끝없는 강 같은 세월을 지나 만나는 해 질 녘의 하늘에는 꽃이 피었다. 이제 콩꼬투리 만한 싹들이 들보처럼 자라 날 것이다. 채워지고 비워지며 살고 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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