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가는 이

by 그방에 사는 여자

“ 너 독일로 시집갈래?”

다니던 직장에서 나와 잠시 고향집에 내려와 있던 내게 친구는 전화를 걸어 말했다.

“독일? 시집? 뭐 연애도 아니고 시집은 무슨 시집이냐! “

볕 좋은 뒤란 우물가에서 한참 비누거품을 내며 벅벅 빨래를 문지르고 있던 나는, 안방에서 요란하게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서둘러 고무장갑에서 손을 빼내어 바지춤에

손을 쓱쓱 문지르며 뛰어 들어가서 전화를 받았다. 성악을 전공하고 독일 유학 중인 친구의 막내 동생이 사는 집의 위층에 사는 남자를 소개해 주겠다고 했다.

독일로 유학 왔다가 형제가 눌러앉았다고 했다. 성실하고 수입도 좋다고 했다.

“병아리 감별사야”

병아리 감별사라는 직업이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한 동네에 살던 용이 할머니가 이른 봄날, 가운뎃 방에서 부화된 병아리를 오글오글 키우던 것을 보았던 기억이 났다.

그중 몇 마리는 용이 할머니 집에서 키우고 나머지는 다 팔았다.

어쨌든 병아리는 자라면 암탉도 되고, 벼슬 달린 수 탉도 되고 할 텐데 병아리 감별사라는 직업은 도대체 왜 필요할까 생각했었다.

“싫어” 나는 말했다. ”그렇게 괜찮으면 네가 만나봐 “

독일 이라니, 독일어는 물론 영어도 못하는 나에게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였다.

“너 글 쓰는 거 좋아하니, 독일 가서 결혼도 하고 기회가 되면 공부도 하면 좋지 않냐” 는 이야기였다.

나는 늘 방랑하며 살고 싶다는 얘기를 입에 달고 살았다. 그러나 정작 그 어디로도 떠나지 못했다. 그냥 현실에 졌고 눌러앉았다.

어쩌면 상황이 조금은 나았다면 나는 어디로든 떠났을지 모른다. 나는 두발을 땅에 꼭 붙이고 살았다. 그리고 내어 디딜만한 땅을 골라 디디며 살았다.

부모님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어느 날 갑자기 죽지만 않아더라면, 막내 동생이 대학을 졸업하고 수녀원에 들어가지 않았더라면, 언니가 고된 시집살이를 하다가,

사별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랬으면 나도 가볍게 어디든 떠날 수 있었을 것이다. 잠깐이지만, 전혜린이 걸었던 뭰헨의 거리를 걷는 상상을 해보기도 하였다.

전혜린은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에서 ’ 나는 뮌헨의 밤거리를 걷는다. 불빛이 차갑다. 사람들의 얼굴이 낯설다. 그러나 이 낯섦이 나를 편하게 한다’고 했다.

병아리 감별사는 친구의 동생이 소개해준 여자와 결혼해서 잘 산다는 이야기를 몇 년 후에 들었다.


십 대 시절, 저녁을 먹고 나면 나는 뒷길 언덕 배기에 올랐다.

거기에서 보이는 가장 멀리 있는 불빛을 바라보고는 했다. 조용히 점멸을 반복하는 그 빛들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저 빛이 보이는 산 중턱에는 군부대가 있다는 말을 들었으나, 나는 다른 것들을 상상하기로 하였다.

밤에만 나타나는 비행장 이라던가, 우주선들이 다섯 개의 불빛을 차례로 깜박이며 모스 부호 같은 신호를 이쪽의 누군가에게 보내는 것이라고.


이탈리아 볼로냐, 4평 방한칸이 침실이자 작업실, 평생을 독신으로 살며.

어느 글에서 이런 단어들을 읽고 호기심이 생겨 찾아본 화가, 조르쥬 모란디.

4평 방에서 독신으로 살며, 병 정물화를 그렸다는 조르쥬 모란디는 작은 아파트에서 세명의 누이들과 살았다.

그가 그린 병 그림들은 단순하다. 먼지를 덮어쓰고 서있는 병 그림들을 보고 있노라면 순례하는 사람이 보인다.

시인 필립 자코테가 ‘순레자의 그릇;조르쥬 모란디“라는 책을 지은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작은 방에서 면벽하는 스님처럼 보고, 또 보면서 살았을 그 삶이 궁금해졌다. 고요한 삶에 이물질이 끼어들까 우려되어서, 딱 한번 파리를 다녀온 것 이외에는

여행도 하지 않았을뿐더러 볼로냐 밖으로도 거의 나가지 않았던 모란디는 벼룩시장에서 다양한 형태의 병들을 구해와서 라벨을 떼고, 페인트를 칠해

특유의 물성을 제거해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그림을 그렸다. 깊고 고요한 모란디의 그림은 시간을 관통한다. 시간은 흐르고 머무른다.

어떤 순간들은, 영원히 살아남는다. 조르쥬 모란디는 무엇으로 침잠해 들어갔을까. 그의 그림들은 삭아내리는 먼지들과 함께 서로가

비스듬히 서있는 나이 든 사람 같기도 하고, 어디론가 정처 없이 길 떠나는 사람이 보이고, 문득 멈춰 서서 서로에게 다정한 사람들도 보인다.

정물화를 그렸는데 사람이 보인다. 침묵 속에 다정함이 읽힌다.



“전 세계를 여행한다 해도 아무것도 보지 못할 수 있다. 세상의 이치를 이해하기 위해서 반드시 많이 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지금 필요한 것을 성실하게 보는 것이다. “라고 조르쥬 모란디는 말했다.

어느 여름날 땀에 절은 수건을 땟국물이 흐르는 목에 두르고 부엌 뒷문을 열어 두란에. 핀 갖가지의 꽃들을 보며 다리를 쭉 뻗고 앉았던 엄마는 “좋다”

라고 말했다. 뚜껑을 열어 놓은 장독대 항아리들 위에는 나비가 날았다. 그런 것들을 무연하게 바라보는 그것이 ‘성실하게 보는 것‘이었을 것이다.

“가시적인 세계에서 내가 유일하게 흥미를 느끼는 것은 공간, 빛, 색, 형태다.”“현실보다 더 추상적인 것은 없다”라는 말을 남겼던 조르쥬 모란디는 병을 그린 것이 아니었다.

병은 도구였을 뿐이다.


나는 지금도 멍하니 앉아 있는 것을 좋아한다. 가만히 앉아서 세상을 구경한다. 세월을 바라본다.

멀리 가는 사람이 되어 보지는 못했으나 순응하며 삶이라는 긴 여행을 해왔다. 주어진 것을 견디고 살아내었다. 때때로 아름다운 날들이 있었다.

하루를 매일 살다 보니, 이제는 정말 멀리 왔구나 생각하게 되는 날들도 있다. 그리고 나는 ‘성실하게 보며 ‘더 멀리 가보는 생을 가져볼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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