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다는 것에 대하여

by 그방에 사는 여자

누군가와 마주 앉아 눈을 맞추는 행위는 영혼의 깊은 곳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https://youtube.com/watch?v=9SQsQR5enIU&si=ateA8RAgZDJ-Upfj

진득하게 한 사람을 마주하는 일은 자신을 꺼내 놓을 용기를 필요로 한다. 진실로 자신을 내어 놓고 나서야 공감도 위로도 힘을 발휘한다.

멈춰서 바라보면, 사람이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스쳐 지나가며 자신의 눈과 잣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한 세계를 가진 인간을 정성스럽게

보려는 마음으로 보면 이해의 폭이 커질 것이다.



소통이 어려워진 요즘 경계해야 할 것은 정의감이 아닐까.

섣부른 정의감은 사람을 타자화 하며, 대상화한다.

상대에 대한 그윽한 눈길이 없는 정의감이란 무서운 것이다.

선한 의도가 반드시 선한 결과를 낳지 않으며, 정의감은 언제나 독선이나 폭력으로 바뀔 수 있으니까.

간혹, 나의 분노나 정의감의 색깔이 무엇인지 구분해 보려고 들춰서 보다 보면 결핍의 감정이 섞여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결핍의 감정란 이물질 같기도 하지만 잘 사용한다면 좋은 양념이 되기도 한다. 감정을 잘 버무릴 줄 알아야 숙성된다. 깊고 어두운, 항아리 속의 내 감정에 집중할 때 세상과의 소통도 좀 더 너그러워질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앞을 볼 수 없게 된다면 무슨 일이 생길까.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는 갑자기 알 수 없는 이유로 앞을 볼 수 없게 되는 사람들이 나온다.

모든 사람들이 앞을 볼 수 없는 세계에서 오직 한 사람, 안과 의사의 아내만이 볼 수 있다.

단지 볼 수 없다는 사실만으로 세상은 참혹하게 변해간다. 더 이상 어떤 것도 만들어 낼 수 없으며, 사람들은 어느 곳으로도

자기 집으로도 돌아가지 못한다.

의사의 아내는 자신의 남편과 함께 있기 위하여 누구에게도 앞을 본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환경에서도 자신의 먹을 것을 병들고 약한 어린 소년에게 나누어주는 젊은 여인도 있었다.

나는, 인간이 모두가 앞을 보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도 아무 데서나 배설을 할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이 놀라웠다.

배설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욕구를 해결하는 방식이 그렇게나 무자비하게 변할 수 있구나 생각하니 인간이 가진 문화가

사실은 참으로 보잘것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의 마지막에는 사람들이 다시 눈을 뜨게 된다.

나는 온갖 오물로 뒤덮인 세상에서 눈을 떴을 때 그들이 느끼는 감정이 무엇일지 궁금했다.

‘나는 우리가 눈이 멀었다가 다시 보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의사의 아내는 말한다.


내가 가진 아주 조그만 세상에서라도, 주어진 기회만큼 소통하고 잠시라도 눈을 응시해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그런 날의 외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