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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방에 사는 여자 Dec 10. 2023

오십견 앞에서 엄살을 떨었다

 몇 달째  오른쪽 어깨가 아프다.

처음에는 양치질을 하는데 갑자기 어깨가 결리는 듯하고 좀 삐끗한 것 같아서, 시간이 좀 지나면 낫겠거니 하고, 파스만 붙이며 시간을 보냈는데,  나아지는 기미가 없고 어느 날부터는

자다가 팔을 조금 움직이기만 해도 아프고, 누가 툭  건드리기만 해도 아파서 집 근처 정형외과에 갔더니 오십견이라고 했다. 정확한 병명은 유착성 관절 낭염이라고 했다.



주사도 맞고 물리치료도 받고, 찜질도 하고 꾸준히 스트레칭도 하고 운동을 해주어야 한다고 했다. 잠깐 삐끗한 것이라  물리치료 몇 번만 받으면 낫겠지 싶었는데, 오십견이라니,

명절날 형님댁에 모이면  사촌 큰 형님들이 말씀하시던 그 오십견, 몇 년 전부터 큰 아주버님과 형님들이 말씀하시던 그 오십견.

"어느 날 갑자기 팔이 안 올라가는 거야, 앞으로 나란히가 안 됐다니까!"둘째 형님이 몇 년 전에 말씀하셨다.



다행히 나는 앞으로 나란히는 되는데 대한민국 만세가 안 됐다. 오른쪽 팔에 무거운 짐덩이를 매달아 놓은 것 마냥  뻑뻑해서 위로 쭉 뻗는 게 어려웠다. 의지와 상관없이 아무리 올리려고 해도 다 안 올라가고 오른쪽 팔이 왼쪽 팔과  엇박자로 열한 시쯤 에서 멈춰 있었다. 의사는 오십견이라는 말에 놀라서 당황한  나에게, 빨리 낫는 경우도 있지만 6개월가량 걸릴 수도 있고 잘 안 나으면 전신마취하고 팔을 강제로 돌릴 수도 있다고 하였다.



"오른쪽 팔을 많이 쓰시나 봐요?"물리치료사가 물었다."아무래도 살림하다 보면 그렇죠, 장 보고 무거운 것도 많이 들게 되고"사십대로 보이는 물리치료사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요즘 다 배달되잖아요?" 순간, 물음은 나에게로 와서 다양한 해석을 낳는다.

말들의 함의 속에는 천진함을 가장한 우월함을 품고, 삶의 태도들을 저울질하는 것들이 있다.

왜 그렇게 불편하게, 비효율적으로 사느냐,

그런다고 누가 알아주느냐.

우리 동네 마트는 배달이 안된다. 그리고 나는 운전을 못한다.

인터넷으로  구매하는 경우도 많지만 대부분은 공산품 위주로 주문하고 식품류는 동네 마트를 이용한다. 갑자기 타임 세일 할 때면 욕심이 발동되기도 하고 세제류가 원플러스원 할 때는 무거워도 어쩔 수 없지. 칼질도, 음식을 만들 때도, 빨래를 하거나 설거지를 할 때도 청소를 할 때도 오른손이 수고를 하고 왼손은 거들 뿐이었구나 싶다.



주 3회씩 물리치료도 받고 약도 먹고, 스트레칭도 자주 하였더니  2주 정도 지나자 오른쪽 팔을 위로 쭉 뻗어 올릴 수가 있게 되었고

통증도 없어서 병원에 가지 않고 스트레칭을 꾸준히 하면 나을 것 같았다. 걷기를 하거나, 장을  보러 가거나, 도서관을 가거나, 카페를 가기 위해 나서는 길에, 부러 운동기구가 있는 공원에 들러서  운동기구로 몸의 근육을 풀었다. 필수로 하는 운동은 원 모양의 기구를 돌리는 운동이었다. 어깨의 근육을 풀어 주는 운동이었다. 전에는 그냥 거기에 있는 기구들이라고, 어르신들이 사용하시는 것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제 나도 그 공간을 이용하는 일원으로 스며든 것이었다. 신기한 일이다.

필요로 하여 찾으면, 가까운 곳에 해결책이 있다. 이러다가 나도 어느 날인가 뒤로 걸으며, 트로트를 볼륨을 높이고 앞뒤로 팔을 휘둘러 손뼉을 치거나, 시멘트 벽에다 등을 막 치는 날도 있겠지 생각하니 삐죽 웃음이 새어 나왔다.



한동안 많이 나아진 듯싶었던 팔이 다시 아파지기 시작했다. 무엇이 바빴는지 저녁 6시 무렵  병원으로 갔다. 이번에는 전에 진료했던 1 진료실 원장님은 퇴근했는지 2 진료실 원장님이 진료를 보았다. "오랜만에 오셨네요? 치료 잘 안 받으면 오래갈 수 있어요. 자 팔 들어 보세요!"원장님은 내가 아프다고 할 때까지 오른쪽 팔을 위로 들어 올렸다." 사실 지금 팔을 확 젖혀서 엉겨 붙은 힘줄들을 끊어 버리면 치료가 빨리 될 수 있어요.

나사가 녹이 슨 거랑 같은 거예요. 녹이 슨 나사를

 처음에 돌릴 때 뻑뻑하잖아요. 지금 그런 단계예요. 지금 아파도 나사가 잘 돌아가도록 세게 돌려주면 금방 나아질 수 있어요! 어떻게 딱 5초만 참아 보실래요?"나는 오른쪽 팔을 부여잡고 "아! 아파요! 하지 마세요! 아!"하고 비명을 질렀다. 사실 너무너무 아프기도 했다.

"그냥 치료 잘 받고 스트레칭 열심히 할게요! 나이 먹어도 아픈 건 아파요!" 나는 앓는 소리를 했다. 의사는 친절한 미소를 보이며 "그렇죠, 이해해요" 한다. 마침 병원이 끝날 시간이라 환자가 없어서 내가 진료실에서 엄살떠는소리를 다 들은 듯했다. 마주치는 중년의 간호사 분이 다 안다는 듯, 웃으며 "운동 열심히 하세요!" 한다.



"나 오십견이래!" 안방 침대에 누워 폰을 보는 남편에게 말을 건넸으나, 남편은 대꾸가 없었다.

"나도 이제 늙었다고!" 괜히 그럴 줄 알면서도 서운해서 한마디 더 얹었으니, 식탁에서 늦은 저녁을 먹던 큰 딸이 한마디 한다."엄마! 아빠한테 공감을 바라지 마, 미련을 두고 그래?"

그 말에 더 기분이 나빠져서 " 마누라 아프다는데 걱정도 안 되는 거야? 맨날 밥만 시켜 먹다가 늙어 가는 마누라는 안 보이는 거야?"쏘아붙이니  "나더러 어쩌라고 그래! 참 나 남들도 다 걸리는걸! 육십견이 더 아프대, 팔십견은 더 더 아프고! 그러다 아픔이 느껴지지 않으면 죽는 거지!"남편은 능청스럽게 한마디 덧 붙인다. 큰 딸의 숟가락을 빼앗아 남편의 뒤통수를 한대 딱! 때리는 상상을 하며 안방 문을 쾅 닫았다!!



나는 사실 아픔을 잘 참는 편이다.

아프다고 가볍게 엄살을 떠는 편이 아니다.

큰 아픔은 더 잘 참고, 드러 내지 않는다.

제왕절개로 큰아이를 낳던 날, 자궁 수축이 안되고 출혈이 계속되었다. 산부인과 원장님은 수술대 위에서 나를 깨워서, 지금의 상황을 설명하시면서 일단은 봉합을 하겠으나, 출혈이 계속되면 자궁을 적출할 수도 있다고 하였다.

 마취가 깬 상황에서, 배를 당겨서 꿰매는 느낌이

그대로 전해졌다. 수술을 마치고, 회복실에서 수혈을 계속 받으며 누워 있는데, 원장님도 퇴근을 안 하시고 밤새 지키면서, 한 시간에 한번 꼴로 자궁에 고인 피를 빼내야 한다며 금방 제왕절개로 아이를 낳은 배를 사정없이 눌러 댔다. 그때는 생과 사의 기로에 있었고, 너무 아프기도 해서 '악'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아기를 보지도 못하고, 밤새 수혈을 하고 피를 계속 빼내야 했다. 갓 수술한 배를 있는 힘껏 눌러 댔으니 얼마나 아팠을까? 긴 밤이 지나고 새벽녘이 되자 의사 선생님께서, 이제 출혈이 멈췄다며, 괜찮을 것이라며 이마를 훔쳤다.

그날은 분만을 한 다른 산모가 서울대 병원으로 이송되었다는 소식도 있어 더욱 긴장하셨던 것 같았다. 원장님께서 다시 내 배를 꾹 누르는데 나도 모르게 "악" 외마디 비명이 흘러나왔다.

그날 처음 내지른 비명이었다.

"허, 이제 살만 하니까 소리 지르는구먼! 허허!"

머리가 희끗한 원장님께서 웃으셨다.

정말 그랬던 것 같다. 살았다고 안심하던 순간 아프다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것 같았다.

감당할 수 없는 큰 아픔  앞에서는 애써 평온하고, 자잘한 아픔에는 조금은 엄살을 떨며, 아마도 나는 무탈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으로, 자신을 정의하며 살아 가는지도 모르겠다.



어떤 순간을 지나고 나면, 그때 그곳에 천사의 손길이 잠시라도 스쳤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다. 혼자서 휘적휘적 헤치며 살아온 듯싶으나, 뒤에서 옆에서, 잠깐씩 보듬는  손길이 잠시라도 머물렀음을 알아채는 순간이 있다. 그때 나에게도 천사가 머물렀구나, 자신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을 다 하며 머물렀던 초로의 산부인과 의사의 모습으로 스쳐 갔구나 생각된다.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그동안 마음 놓고 썼던 몸을 이제는 불편하게 써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월에 마모되는 육체는 이제 여기저기 고장 나고 덜그럭거릴 테지만, 우리 동네 핫플인 공원에서 삐그덕 거리며  관절을 조이고 풀며,

불완전하고 쇠락해 가는 육체를 데리고 농담처럼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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