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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방에 사는 여자 Dec 26. 2023

엄마의 김치 냉장고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나는 집안의 가전제품들을 장만해 드렸다. 국민학교만 졸업하고  돈 벌러 나간 지  십여 년 만에,  쓰러져가는 초가집 옆에 번듯한 벽돌집을

부모님께 지어 드렸던 동네 언니처럼 헌신하는 k장녀는 아니었지만 집안의 살림살이를 하나하나씩 장만했다.



처음으로 산 가전제품은 냉장고였다.

그때까지 고향집은 부뚜막과 아궁이가 있는 옛날 부엌이었으므로 냉장고를 놓을 자리가 없어 마루 한편에 놓았다. 위는 냉동실 아래는 냉장실이 있는 냉장고를 실은 트럭을 타고 집에 도착하니 동네 아주머니들이 구경을 하러 와 계셨고, 엄마가 여름에 찬물도 얼음도 시원하게 먹을 수 있다며 좋아하셨다. 아마도 동네에서 제일  늦게 냉장고를 산 것이 우리 집이었을 것이다. 우리 집 첫 장고는 나중에 좀 더 큰 냉장고로 바꿔 드린 후, 나의 자취방으로 와서 나의 냉장고가 되었다. 그 냉장고는 한 번의 잔 고장도 없이 이십 년 가까이 잘 돌아갔다.



그다음으로는 가스레인지를 샀다.

전기밥솥이 있었지만 겨울에는 아궁이에 불을 때서 밥을 짓고 국을 끓였다. 더운 여름에는 장독대 옆에 양철로 화덕을 만들어 불을 땠었는데, 명절을 앞두고 가스레인지를 사드렸다. 부엌 한쪽에 벽돌을 쌓아 가스레인지를 올려놓았다. 아궁이와 가스레인지가 공존하는 부엌이었다.



그다음으로는 텔레비전을 바꿔드렸다.

그때까지 우리 집에는 양쪽으로 문을 열고 닫을 수 있고 다리가 네 개가 있는 갈색의 텔레비전이 있었다. 아버지의 사촌 중에 고생 끝에 성공이란 걸 해서 인근의 시에서 가전제품 대리점을 하시 분이 계셨는데, 내 나이 열한 살쯤 그곳에서 산 텔레비전은 우리들의 소중한 보물이 되었다. 주말의 명화와 명화 극장으로 영화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고, 특히 간략한 영화 소개로 품격을 더해주던 정영일 평론가 덕분에  명화 극장을 더욱 기다리게 되었다. 간혹 명화 극장을 기다리다 까무룩 잠이 들고난 다음날 아침이면 그렇게 원통 할 수가 없었다. 흑백텔레비전이 수명을 다하고  리모컨이 있는 칼라 텔레비전으로 바꿔 드렸다.



세탁기는 사드렸지만 엄마가 애용하지  않았다.

아무리 알려 드려도 이것저것 버튼 누르는 게 어렵다고 하셨고. 얼른 빨래를 주물러 널고 일하러 나가야지 세탁기 돌아갈 때까지 언제 기다리느냐고 하셨다. 세탁기는 짤순이로만 사용되었다. 그 뒤로  가전제품들을 한 번씩 더 차려대로  바꿔드렸었다.




내가 결혼을 하고 몇 년 후, 엄마는 시내에 있는 가전제품 매장에 혼자 가셔서 김치 냉장고를 현금을 주고 사셨다. 딸들에게 필요하다고 말씀도 하지 않고, 같이 가자고도 하지  않고 두툼한 현금 봉투를 들고 가서 사셨다.

나는 같이 가서 골랐으면 더 잘 살펴보고 골랐을 텐데, 아니 필요하다고 하시면 사드렸을 텐데 왜 혼자 가셨냐고 하였으나 엄마는 별 말이 없으셨다. 다른 집에도 다 있는  김치 냉장고가 얼마나 좋은 물건인지 엄마도 한번 써 보고 싶을 셨던 것이리라.



그렇게 좋은 것이라면 나도 써봐야지,  나라고 언제까지 땅 속에 묻어둔 항아리에서 시어 빠진 김치만 먹고살 수는 없지 않으 하는 마음.

엄마의 김치 냉장고는, 남들 하는 것은 나도 한번 해보고 살고 싶은,  자존심과 지키고 싶은 삶의 품격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나는, 결혼을 하고 내 살림을 사느라 점 점 낡아 가는 엄마의 살림은 그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며 살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엄마가 갖추고자 했던 나직한 자존심과 좋은 것을 좋게 사용하고 싶은 마음, 나조차도 나를 곁다리로 취급하지 않으려 애썼던 마음에 대하여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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