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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방에 사는 여자 Jan 17. 2024

5층 할머니는 어디로 가셨을까?

'드르륵 드륵' 하루 종일 무언가 갈고 , 두드리는 소리로 골이 아프다. 원래 이런 날은 일찌감치 집을 나서면 그만인데, 어제 아버지 제사 음식을 준비해서 들고 가 언니네 집에서 제사를 지내고 와서인지 몸이 무겁고 머리가 아팠다. 그래서 선뜻 몸을 일으켜 집을 나서지 못했다. 제사상 앞에서 마주한 사진은 너무도 생생해 , 아버지가 정종 한잔 드시고 "허! 허!"수줍게 웃으시거나 종주먹을 움켜쥐고 휘두르시며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에......"굳세어라 금순아를 열창하실 것만 같다. 이제 5년이 넘는 시간인데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고 낯설다. 느리고 세상 급할 것 없는 성격으로 엄마의 애간장을 태우던 모습과는 다르게, 아버지는 너무도 갑작스럽게, 바쁘게 대문 빗장도 못 걸고, 바깥 마당 가동 그리지도  못하고 서둘러 떠나셨다.



5층의 인테리어는 3주 동안 며칠 간격으로 계속되고 있는 중이었다.

엘리베이터에서 5층의 공사를 알리는 안내문을 보았을 때는,  그저 '어떤 집이 이사를 가고 또 이사 오나 보다!'라고만 생각했었다. 마트에 다녀오다가 6층 여자를 만났을 때 "5층 인테리어 하나 봐요?" 했더니 "시끄럽죠?" 한다.

정말 시끄럽네요! 도 아니고 시끄럽죠?라는 건 무언가 상대방에게 떠 넘기는 듯한 기분이라 6층 여자를 어쩌다 마주쳐 잠깐의 대화를 나눌라치면 말이, 잠깐이지만 설컹거리는 느낌이 들곤 한다." 많이 시끄럽지는 않은데.... 뭐 그 정도면 참을만하죠, 근데 5층 이사 갔나 봐요?" "그러게요... 며칠 전에 짐을 빼길래 할머니 요양병원 가셨나 했어요!" 한다. 아 맞다! 5층은  5층 할머니 댁이었다. 그러고 보니, 오후 4시 무렵이면 주간 보호센터라고 쓰인 노란 버스에서 내리시던 할머니의 모습을 한동안 못 본 것 같았다.

"할아버지도 같이 가셨나 봐요? 두 분 다 건강이 나빠 보이지는 않으셨는데...."

"할아버지도 몸이 안 좋으셔서 집에만 계셨대요"

어쩌다 마주친 할아버지는 숨 찬 목소리를 작게 

내셨던 것 같다."이제 애들 다 키우고 살만 한대 우리도 늙을 일만 남았나 봐요!" 6층 여자의 심란한 말을 듣는데 나직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처음 이사오던 16년 전. 5층 할머니는, 시장도 다녀오시고, 장바구니에 말린 고추를 싣고 가서

고춧가루를 빻아 오기도 하셨다. 엘리베이터에서 아이들과 만나면 "이렇게 둘 이유?" 하며 딸들을 가리키셨다. "네둘이에요!" 하면 "아들 하나는 있어야 하는데... 우리 딸도 딸 둘이고, 아들은 딸 하나고..."이렇게 수집한 정보로는 할머니에게는 5남매가 있고, 아들 한 명은 의사이고,  할아버지와 함께 사신다는 사실이었다. 이사 온 지 삼 년이 지났어도, 오 년이 지나도,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새로 이사 오셨수? 이렇게 딸만 둘 이유?" 묻는 할머니가 나는 싫지 않았다. 아이들은 엄마는 유난히 할머니들을 좋아한다고 했다.



 학교 갈 일도 많고 모임도 많아서  한창 바빴던 아이들 초등학교 시절, 외출하려고 나서다  우연히 만나면 "어디를 그렇게들 나가유?"하고 묻고는 하셨다. 책망하는듯한 목소리가 아니라, 정말 궁금하고 쪼금은 부러움이 묻어난 물음이었다.

"네 애들 학교에 일 있어서 나가요, 엄마들 하고 점심도 먹고요" "아유, 우리 며느리도 바쁘고, 딸도 맨날 어디를 그렇게 나가  더라고" 점차 바뀌는 에레베이터 숫자들을 바라보며 할머니가 심심하게 말씀하셨다.




아파트 정자에서 다른 할머니들과 둘러앉아 담소를 나누시는 모습을 작년 여름 까지도 본 듯한데, 어느 날 인지 넘어지셨는지 허리에 복대를 하고 계시는 모습을 보았었다. 또 어느 날은 발에 깁스를 하고 계시기도 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부턴가 오후 4시면 주간 보호센터 노란 차에서 내리시는 것을 보았다. 어제 8층 아줌마를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차에 5층 할머니 어디 가셨나 보다고 했더니"네  어디 좀 가셨어요"라고 얼버무리는 것을 보니  아마도 요양원에 가신 듯했다. 8층 아줌마와 5층 할머니는 이 아파트에 입주당시부터 살던 분들이라 친하게 지내시는 듯했다.



제법 키가 크셔서 164센티인 나와 키가 비슷해 보이시고 건강해 보이셨던 할머니께서, 어디를 가시던지 마실도 다니시고 담소도 나누시며, 잘 지내셨으면 좋겠다. 아들 딸 다복하게 잘 키우고 나면 늙어지고, 아파지고, 그러면 순서 대로 요양 병원으로 납골당의 작은 항아리 속에 치곡 차곡 들어가 안착하는 것이 삶의 끝인가 싶어 쓸쓸하기도 하다. 쓸쓸함 너머의 다른 의미가 있다며 그  의미를 찾아 탐구하고, 성찰하며 살고자 하지만, 별 의미 없이 가볍게 살고, 가볍게 지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어쩌면, 펼쳐 놓은 것들을, 주렁주렁 매달아 놓은 것들을 미처 거둬들이지 못하고, 그 어떤 결론에도 도달하지 못하고 저물지도 모르기에 나는 세상에 빚을 남겨 놓기 싫다. 무엇보다 말빚을 남겨 두기 싫은 나는, 타인에게, 특히 아이들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하지 않으려 하고, 미안하다, 사랑한다, 고맙다는 말을 더 많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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