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방에 사는 여자 Nov 29. 2023

무해한 사람

나는 좋은 사람이다

이제껏 누군가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한 적도 없고

법을 어긴 적도 없으며 나쁜 을 한 적이 .

매년 배추를 직접 사서  사십 포기 가까이 김장을 하고  혼자 사는 동생에게  우체국 택배로 김치를

보내준다.  김치도 다 담가먹고  반찬은  어쩌다 한 번씩 사 먹고, 어렵게 사는 언니에게는 가끔씩 돈을 얼마간 찔러 주기도 했다.

동네 아줌마들과 만나도 커피도 한 번씩 사곤 한다.

오래전에 친구라고 생각했던 A에게 돈을 빌려주고도 받지 못했다.




결혼 생활 내내 남편의 밥은 열심히 챙기고

아이들만 두고  밤 외출도 하지 않고 애들을 방치하지도 않았다. 돌아가신 부모님께는 효도는 못했지만 영양제와 홍삼을 챙기는 착한 딸이었다. 나는 무해한 사람이었다.




무해한 사람은 결국 자기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이었거나, 미움받을 용기가 없는 사람인 것이다. 돌아서서 자신의 어리석은 행동을 탓하며 또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다.

내가 선택한 차선책은 그런 나를 인정하고 이해해 주는 것이다. 어차피 내가 착한 심성의 소유자라서 남에게 쓴소리 한번 하는 것조차

큰 용기가 필요한 사람이라면, 나를 왜 그렇게 착해 빠졌냐고 힐난하기보다는 착한 게 좋은 거라고 배려심 많은 것이 좋은 거라고, 나를 내가 이해해 준다. 그리고 다음번에는 참지 말고

한 마디 해주자고 다짐한다. 핵 사이다를 날리는 것도 좋겠지만,  부드럽게 스며들고 작게 작게 두드려 보는 것도 방법이라고 나에게 말해준다. 아이들에게도 착한 게  좋은 것이라고 늘 말해준다. 남을 배려하는 행동은 멋진 것이라고 말한다.



 내가 하는 행동과 내 인식이 분열하고 흩어질 때 자신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입히는지 나는 알고 있다. 나를 책망하는  사람들 틈에서, 나만은 나를 공격하지 말자. 무엇인가 부당하다고 느껴지고  화가 난다는 것은 그 상대방이 잘못했거나 그 상황이 잘못된 것이라고 나에게 말한다. 나조차도 나를 믿지 못하면 뿌리는 썩게 되고, 서 있을 수 없는 썩은  나무가 되는 것이다.




엄마는 큰딸의 생일엔  허리가 휘어져라  이것저것 보따리 보따리를 이고 지고  시집간 큰딸의 집을 찾았고 의 생일은 늘 그냥 지나갔다. 나는 자매들과 밥을 먹을 땐 늘 계산을 하였구나의 언니는 형편이 나아 저도 나에게 천 원짜리 떡볶이도 사주질 안았고, 동네친구들과는 여행계도 부었다. 김치를 받은 막내 동생은  감사의 인사를 늘 톡으로 전했고 집으로는 찾아오지 않았다. 늘 따뜻한 밥상을 받는 남편은 화가 나면 쌍욕을 했다. 그들은 모두 좋은 사람들이다. 그것은 참 이상한 일이다.



몇 년 전 간 베트남 여행에서 버스 옆 자리에 앉으려는 나를 남편은 손짓으로 쫓아 보냈고 여행 내내 뒷 지리에 우두커니 앉아서 다녔다.

 혼자 짐을 싸느라 낯선 여행지에서 혼자 늦은 아침을 먹는 것이 창피했다.

다행히도, 어렸던 아이들은 그때의 여행이 아주 즐거웠다고 한다.

언니와 동생은 함께 제주도 여행을 갔고 나에게는 묻지 않았다. 나는 용돈을 부쳐주며 재미있게 놀다 오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나는 어차피 아이들 때문에 함께 가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한 번쯤 물어봤으면 좋았을 것이다.



동생과 언니는 몇 년 전부터  둘이 따로는 만나지 않고 지낸다.

 한 그릇 속, 식혜의 밥알처럼 동동 떠서 섞이지 못하는 자매 관계, 안방과 골방에서 섬처럼 떨어져 있는 부부,  남편은 늘 그렇게 어리숙해서 어떻게 살아가냐고 답답하다고 책망했으나, 가장 큰 참음과 착함을 감내하게 하고, 나를 비난하면서 내 뒤에 숨어 있는 사람은 남편이었다.



나의 미련한 태도들이 나를 정의하는 것이다.

그것들이 미력한 관계를 이어주고, 어쩌면 삶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아 주는 실낱 같은 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호박 푸레기 드시러 오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