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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방에 사는 여자 Nov 02. 2024

하루의 단편


올해는 유난히 더위가 길었다.

늦도록 이어지는 더위에 샌들을 구월 말까지 신었다. 얼마 전에  갈색단화를 께네 신었는데 바닥이 미끌거렸다. 처음에는 길바닥이 미끄러운가 생각했다. 외출할 때마다 번번이 미끄럽자 집에 돌아와서 살펴보니 단화 밑창이 몹시 닳아 있었다. 앞축은 거의 매질맨질 해졌고 뒤축은 더 닳아 있었다.  

생각해 보니 오륙 년 된 신발이니 그럴만했다. 굽도 적당하고 발이 편하고 색깔도 맞추기가 수월해서 자주 신는 신발이었다.  

장 보러  갔다가 마트 안에 있는 다이소에서 미끄럼 방지 신발 밑창을 사 와서  스티커를 떼고 간편하게 덧붙였다. 간단하게 수선한 단화를 신고 외출해보니 미끄럽지가 않고 안정감이 있어서 걷기가 한결 편했다.

이 신발의 밑창이 닳아갈 동안 나는  얼마나  닳았을까?  닳고 있는 나는 간단하게 덧붙일 수도 없을 텐데,  내가 이렇게 닳고 있는 걸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다. 나도 모른다.


 아파트 후문을 나서니 아이들이 다니던 초등학교가 보인다. 초등학교와 우리 아파트 사이에는 각종 운동기구와 벤치들이 있는 작은 공원이 있다. 십 칠 년 전, 이사를 오면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점이 아이들이 학교를 가면서 도로를 건너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었다. 작은 초록공원 덕분이었다.  공원이 초록색 바닥재로 덮여 있어서 '초록길'이라는 이름도 붙여 주었다.  

아이들은 초록길에서 친구들과 인라인도 타고 줄넘기도 하고 자전거도 탔다. 바닥이 땅바닥 보다 푹신해서 넘어져도 무릎이 심하게 다치지는 않았다.

처음 이사 올 때 만 해도 선명하던 초록길, 이제는 운동기구들이 낡고 녹이 슬어서 삐그덕 소리가 난다. 우두득 소리를 달고 사는 내 뼈마디 같다. 고등학교 이 학년인 둘째는 아침마다 이 길을 지나서 학교로 간다. 아이는 아침마다 무슨 생각을 하며 학교로 갈까?

아이들이 다녔던 학교는 모두 집에서 가깝다.



아이들의 하교 시간인지 중학교 교문으로 한 무리의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나온다. 내 아이들은 이미 떠나온 그 공간에 과거가 아닌 현재를 살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 이상한 기분이 들곤 한다. 저 아이들이 살고 있는 저곳에서 과거의 시간들은 어디로 가버린 걸까 하는 상념에 사로 잡힌다. 아이들은 어디서 계속 생겨 나는 것일까?

아이가 자라면 어른이 되고 아이는 사라지는 것일까?


어제 온 듯 한 가을이 벌써 가려나, 발치에 뒹구는 플라타너스 잎들이  새삼스럽다. 요즘엔 플라타너스를 가로수로 심지 않는다고 하던데, 우리 동네에는 플라타너스라니 참으로 고전적이다.  한동안 길바닥을 쓸고 다니던 낙엽들은 어느 날인가 사라지겠지! 바스락 거리는 소리를 듣고 싶어 낙엽 위로 살살 걸어 보았다.  

공간도 시간도 흐르면 저절로 낡아지는가?

나는 어디까지 흘러가서 얼만큼이나 낡아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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