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우리 집엔 책이 귀했다. 아니, 책이 없었다. 국민학교 이학년 무렵 뒤늦게 한글을 떼고 가장 즐겁게 읽은 책은 교과서였다. 철수와 영희와 바둑이가 나오는 교과서를 방학식 날 받아 오면 해가 지난 달력 종이를 뜯어서 책 싸기를 했다. 윗 학년으로 갈수록 교과서에 좀 더 긴 글이 나와서 재미있게 읽었다. 6학년때는 교실에 학급문고가 생겼다. 삼단정도 되는 작은 책장은 각자 집에서 가져온 책들로 채워져 있었는데 주로, 홍당무, 신데렐라, 장화홍련 같은 동화책이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같은 책들이 있었다. 백제의 부부가 일본으로 떠밀려가서 왕과 왕비가 되었다는 연오랑과 세오녀의 전설 같은 책들도 있었다. 학급 문고의 책을 다 읽고 또 읽었다. 학교에 분명 도서실 비슷한 게 있던 것 같은데, 창고 한쪽에 큰 책장 몆 개에 책이 꽂혀 있었는데 늘 자물쇠로 잠겨 있어서 책을 빌려 읽은 기억이 없다.
책을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한 시점은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다. 교실 하나 크기의 도서실이 있어서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책을 대출하여 읽을 수 있었다 톨스토이, 헤르만 헤세 같은 고전문학이나 소설들을 섭렵하여 읽기 시작했다. 시를 쓰셨던 담임선생님 덕분에 시에 대하여 눈을 뜨게 되었다. 선생님께서 빌려주셨던, 에히리프롬, 쇼팬 하우어, 니체 등을 통하여 철학을 접할 수 있었다. 선생님께서는 가끔 친필로 쓴 자작시몇 개를 보여주시곤 했다. 대학교 졸업 후 갓 부임한 선생님은 열정이 넘치셨고 미남이셔서 인기도 많았다. 나는 스승의 날 선물로 호일로싼 병맥주와 원고지 한 더미를 포장해서, 학교 앞 당구장에서 당구를 치던 선생님께 드렸다.
메모에는, 맥주로는 육체의 고단함을 달래고, 원고지로는 영혼의 허기를 채우시라 적었던 것 같다. 젊은 선생님께서는 어이없는 듯 웃으셨었다.
힘들고 외로웠던 시절, 책이라는 절대적인 것을 한줄기 빛으로 삼았다. 선생님께서 보여 주셨던 작은 관심이 내 사고의 지평을 넓혀주었다. 졸업 후에도, 문학의 길을 가고 싶다는 소망을 담아 선생님께 편지를 쓰기도 하였으나 점차, 사느라 잊었다. 내 처지가 부끄러웠다.
힘든 가정환경 탓에 학교를 며칠 동안 안 갔을 때, 집까지 찾아와 아버지와 막걸리를 드시고 가셨던 선생님, 그때는 철이 없어서, 그 관심이 뜻하는 것이 무엇인지 몰라서, 세상을 다 안다는 듯 시니컬하게 선생님을 노려보기도 했다.
얼마 전 선생님의 소식을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삼 년 전에 중학교 교장선생님으로 정년퇴직을 하셨다. 그 사이 시집도 세권이나 내셨다. 인터넷으로 찾아본 사진 속의 선생님은, 예전의 선이 굵고 이모구비 선명하던 멋진 모습이 아니라 어쩐지 낯설었다. 세월이 지났으니 나 역시 그럴 테지, 정진할걸, 계속 글을 쓰고, 가꾸고 열매를 맺을걸, 이런 마음이 생겨났다. 선생님의 시집 한 권을 주문했다.
이십 대 시절, 먹고 사느라 바쁜 와중에도, 현실에서의 나는 한 권의 책과 한 끼의 밥을 고민해야 할 만큼 가난했다. 닦아도 다시 피어오르는 곰팡이처럼 가난에 잠식당했다. '책만 읽다가 그대로 침대에서 썩어 가도 좋겠다'는 작가 신경숙의 글처럼 살고 싶었으나 살려면, 밥을 위한 노동을 해야 했다. 생존에도 글쓰기에도 치열했던 시기였다. 그리고 조금은 오만했다.
스스로가 성숙한 인간이라는 착각 속에 살았다.
아무것도 없던 시절, 책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것을 베개 삼아 베고 낮잠 자듯이 꿈을 꾸며 잘 살아 내었다.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면서는,
어린 시절의 구멍들이 복원되는 나날들이었다.
아이가 말을 하기도 전에 그림책으로 놀았다.
바스락 거리고, 이야기를 하고, 꾸벅꾸벅 졸면서 읽어 줬다. 아이들은 다행히도 책을 좋아했고 책 더미 속에서 뒹굴었다. 집에 빈 벽이 없을 정도로 책이 많았다. 다 자란 어른인 나도 뒤늦게 그림책을 읽는 즐거움에 빠졌다. 아이들 책 들로 뒤덮인 집에서 나의 책들은 상자에 쌓여
창고로 들어갔다.
아이들이 다 크고, 나는 나만의 책 읽기를 시작했다. 아이들을 키우는 동안 오랫동안 읽지 못했던 시를 다시 읽기 시작했다. 시를 읽는다는 것은 말을 씹고 또 씹어야 하는 감정의 노동이 많은 작업이다. 몸을 갈아 넣어도 부족할 만큼, 정신을 혼미하게 하고, 육체를 갉아먹는, 육아의 시간에선 시를 읽어 낼 수가 없었다.
지난주에는 허 수경 시인의 "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를 읽었다. 한 사람의 가장 서러운 곳으로 가서 농담 한 송이 가져오고 싶다는 시인과, 인간이란 언제나 기별의 기척뿐이라서 고요한 연처럼 연처럼 머물렀다. 이번주는 나희덕 시인의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을 읽는다. 우리가 손에 쥔 것은 비어 있는 손바닥뿐이란 걸, 허공 한 줌까지도 허공에 돌려주어야
한다고 시인은 말한다.
최 명희의 ' 혼불'을 다시 읽고 싶어서 도서관에서 대출했다. 이십 대 시절 감명 깊게 읽은 대하소설이다. 청암 부인의 머리에 꽂은 옥빛의 비녀처럼 아름다운 우리말의 향기에 한참을 머물렀다. 집에도 있는 책인데 상자에 넣어 창고로 들어갔으니 다시 꺼내려면 다 뒤집어야 할 판이라 도서관에서 빌렸다. 마지막 10권부터 빌렸다. 가끔 그럴 때가 있다. 다 본 드라마를 마지막 회부터 다시 보기도 하고, 다 읽은 책도 끝부분부터 다시 볼 때가 있다. 급하게 외출 준비를 할 때, 단추를 맨 아랫부분부터 채우면
구멍을 빼먹고 채울 일이 없다. 이와 비슷하게 책도 마지막부터 읽다 보면 복습하는 것처럼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들이 한 땀 한 땀 맞물려 되살아난다.
지난해 운이 좋게 글쓰기 모임에 참여할 수 있었다. 큰 용기를 내서 참여했고, 글쓰기를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일 년이 넘게 월 2회씩 모임을 하면서 지금까지 와는 다른 서계가 펼쳐진 듯 즐거웠다. 사정상 모임을 나오게 되면서 연락이 뜸했는데, 한 지인이 이번에 책을 출판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하였다. 출판사 계약을 앞두고 의견도 나누고, 책이 출판이 되면 우리끼리라도 출판 기념회 하자고 새끼손가락(?) 걸고 약속했었다. 며칠 전 책이 판매된다는 소식을 접했다. 핸드폰 화면으로 본 책의 표지가 예쁘고 산뜻했다. 축하의 글도 남기고, 아이들에게 보여주며"와! 감동이다! 신기하지?"를 연발했다.
지인과의 만남에서도 이런 일도 다 있다며 책 표지를 보여주며, 출판 기념회에 가게 되었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글을 쓰며 얼마나 치열했을지 알기에, 한 권의 책이 나오기까지 들인 정성이 어떨지 짐작을 하기에 마음껏 축하를 해주었다. 그 마음과는 다르게, 나는? 뭐 하고 있는 거지? 하는 마음이 솟아올랐다.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무작정 백개의 글을 써보자 마음먹었다. 그러면, 뭐라도 되겠지 싶었다. 쓰다 보면 언젠가는 백편의 글을 채우겠지.
다정한 부부의 연예와 사랑이야기를 담은 핑크빛 책도 기다려지고, 정년퇴직 하신 고2, 고3 때의 담임 선생님의 시집도 기다려진다. 바야흐로 책들이 다가오고 있는 시간이다. 아득한 시간마다 책 속에서 길을 찾고 때론 책 속에서 길을 잃었다. 시간을 한 땀 한 땀 뜨다 보면 나에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