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느린 운영 시스템
일반적으로 카페는 이렇게 흘러간다. 손님이 매장의 출입문을 열고 들어온다. 자주 카페에 방문했던 손님은 거침없이 목표 지점으로 걸어간다. 주문을 하기 위해 포스 앞으로 오거나, 좌석을 둘러보고 좌석을 먼저 결정한다. 반면 카페에 처음 오는 손님이면 카페에 들어와 주위를 살핀다. 공간을 둘러본다. 분위기가 어떤지, 카페가 어떤 모양으로 있는지, 심호흡을 하듯이 기분을 만끽하며,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고민한다. 말하자면 카페가 만들어 놓은 규칙을 본능적으로 이해한다.
주문하는 곳에 직원이 웃으며 서서 바라보고 있으면, ‘아무래도 여기는 주문을 먼저 하고 가야 하는 것 같아’라고 판단하고 메뉴를 먼저 보게 된다. 반면 주문하는 곳이 안 보이면 ‘자리부터 앉을까? 주문은 어떻게 하지? 메뉴판을 가져다주시나?’ 그런 고민을 하면서 슬금슬금 자리를 찾게 된다.
손님이 주문을 마치면, 바에서는 분주함이 피어난다. 한가로운 매장이었다면, 직원들은 기다린 사냥감을 발견한 것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각자의 역할을 해낸다. 손님이 자리에 앉기도 전에 메뉴를 완성했다는 것에 뿌듯함을 느끼고, ‘아니, 커피가 벌써 나왔어요?’라는 손님의 반응에 희열을 느끼는 듯 주문서를 처리한다. 손님이 커피를 가져가고 나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평화롭고 지루한 시간이 다시 찾아온다.
바쁜 매장이라면 직원들은 이미 전투 모드. 에스프레소 30초 추출 시간도 아까워한다. 주문서가 날아가고 바닥에 얼음이 굴러다닌다. 빠르게 메뉴를 쳐내지 않으면 안 된다. 주문한 사람이 적어도 10분 이내에는 커피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늦어지면 손님은 진동벨을 만지작거리고, 바를 기웃거리며 쳐다보고,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내 커피가 나왔는지 보게 된다.
커피를 마시는 손님은 핸드폰을 보고, 친구와 대화를 나누고, 노트북을 하거나 책을 읽다가, 시간이 되면 잔을 반납하고 카페를 곧장 떠난다. 그럼 직원은 그 뒷자리를 정리한다.
대체로 거의 모든 카페는 이런 방식으로 흘러간다. 이런 과정이 무수히 반복되고 반복된다. 그리고 카페를 창업할 때는 본능적으로(이렇게 일을 해왔기 때문에) 이런 방식의 운영 시스템을 설계하게 된다. 일종에 손님과 직원의 흐름이라고 할까.
이 흐름의 속도는 창업하고 싶은 상권, 또는 컨셉에 따라 달라진다. 빠르게 흘러가는 곳도 있고, 내가 생각한 것처럼 느리게 흘러가는 곳도 있다. 그걸 어떻게 생각하고 기획하는가. 그건 카페 운영에서 제법 중요하다.
오피스 상권에서는 손님들이 특정 시간에 몰려온다. 점심시간이다. 그래서 특정 시간에 가능한 많은 손님을 받을수록 매출은 높아진다. 테이크아웃이 많고 좌석이 적은 보통의 오피스 상권 카페라면, 어떻게 하면 운영 시스템을 빨리 가져갈 수 있을까. 특정 시간에 폭발적으로 속도를 올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런 고민을 하게 된다.
앞서 설명한 흐름에 빗대어 말하면, 손님은 출입문을 열자마자 주문하는 곳이 있어야 한다. 손님의 동선이다. 동선이 짧을수록 흐름의 속도는 빨라진다. 이 속도를 극도로 높이는 방법이 출입문 옆에 창문을 터서 밖에서 주문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키오스크를 출입문 옆에 두는 것도 방법이다.
손님이 주문을 했으면, 커피를 받는 곳이 가까워야 한다. 가장 좋은 것은 주문하는 곳 바로 옆에 커피를 받아 갈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주문하고 옆으로 2걸음 걸어가 서있었더니 10초도 안되어 커피가 나왔다. 이런 맥락이다. 커피를 픽업하는 곳이 주문하는 곳과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손님이 커피를 픽업하는 속도가 늦어진다. 그럼 그만큼 시간은 느려지고, 직원은 픽업하지 않은 커피를 구분해야 하고, 응대에 시간이 들어가고, 손님은 다른 손님들과 엉켜 정체된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주문을 하고 픽업을 하는 전반적인 동선의 흐름이 엉킴 없이 단순해야 한다.
직원들도 폭발적이게 속도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에 맞는 장비를 구입하는 것. 에스프레소 머신이 3그룹, 혹은 2그룹을 2개 놓는 식으로 그룹 수를 늘리면 추출 속도는 빨라진다. 배치 브루 혹은 탭 브루도 좋은 방법이다. 자동 탬핑기나 계량이 정확한 그라인더. 그런 종류의 장비들이 작은 시간을 줄여, 전체적인 속도를 높인다.
이 외에도 베리에이션이나 주스 종류는 미리 준비하고 일정량을 소분해두는 방법. 얼음을 컵에 담아서 미리 냉동실에 넣어 두는 방법 등이 있다. 나아가 메뉴 제조 방식을 간편하게 하면서 속도를 줄일 수도 있다.
내 경험상 바에서 직원의 속도가 나지 않는 가장 큰 원인은 대체로 동선 문제였다. 제빙기나 냉장고, 머신의 위치. 각각의 위치가 너무 멀거나, 너무 가까워서 작업할 때마다 불필요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흔히 있는 경우가 냉장고 문을 여는 방향이 반대인 상황). 이런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아이디어를 짜내고 맞춰가야 하지만. 창업을 하는 시점이라면 그런 부분도 세세하게 고려하면 나중에 훨씬 수월할지도.
이와 다르게 아주 느린 운영 시스템은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전체적으로 느리게 만들 수 있을까. 그리고 그 느림이 지루하거나 불편하지 않고 좋은 감정으로 담기게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느리지만 좋은 감정을 전하는 것. 그게 느린 운영 시스템의 중요한 지점이라 생각한다.
나는 도서관을 좋아한다. 도서관에 들어가면 공기가 느려진 느낌이 든다. 낡은 나무와 책 냄새를 맡으면 일순간 주위가 멈췄다가, 잔잔하게 흘러가는 기분이 된다. 나만 그런 것인지 모르지만. 나는 그런 잔잔함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그렇게 책장 사이를 유유히 걷고 책을 뒤적거리면 기분이 한결 가벼워진다. 여기서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사실 기분이 좋아지려고 도서관에 가는 경향이 있다. 책을 읽는 것은 거기에 따라오는 부가적인 것이라고 할까(농담입니다). 아무튼 그런 좋은 감정을 일으키는 느린 운영의 카페를 만든다면 어떨까. 그게 내가 하고 싶은 카페의 모습에 가깝다.
손님이 출입문을 열고 들어오면 잠시 공기가 멈춘듯하고, 그러다 시냇물이 흘러가듯 잔잔하게 흐른다. 창밖의 풍경도 쳐다보고, 바에 서있는 직원도 보고, 좌석도 둘러본다. 출입문 옆에 있는 선반, 그 위에 올려져 있는 책이 보이고, 옆에 새로 나온 안내물 같은 종이도 보인다. 카페에 강아지가 있어서 햇살 아래 늘어져 누워 있을지도 모른다.
손님이 볼 거리가 많다. 보려고 하지 않아도 시선에 들어오는 것들이 있어서, 마음속에 잔잔하게 울림을 준다. 먼 휴양지의 해변에서 들려온 것 같은 스탄 게츠의 트럼펫 소리가 매장을 가득 채운다. 주위를 둘러보다가 앉고 싶은 자리를 골라 가방을 내려놓는다.
그러자 인사를 건네며 다가온 직원이 물과 메뉴판을 책상 위에 올려놓는다. 메뉴판이라고 말해야 할까. 메뉴책이라고 해야 할까. 메뉴에 대한 설명, 카페에 대한 이야기. 각종 이야기들이 적혀있다. 손님은 자리에 앉아 시원한 물을 마시며 한참 동안 메뉴판을 들여다본다. 잠시 뒤에 직원이 다가와 주문을 받는다.
메뉴판을 가져다주고, 주문을 받으러 오는 시간도 의도적으로 시간을 느리게 만들 수 있다. 그 시간 동안 손님의 갈증을 채워줄 물과 흥미로운 읽을거리가 있다면, 그 과정은 손님을 불쾌하게 만들지 않을지도 모른다.
주문을 받으면 느긋하게 메뉴를 준비한다. 그런데 어차피 느리게 흘러가기로 결정했다면, 에스프레소 머신이 꼭 필요할까? (물론 맛으로 생각하면 꼭 필요하기도 하지만) 머신이 아닌 모카포트로 대체할 수도 있지 않을까. 어쩌면 이런 곳에서는 드립을 마셔야해, 라고 느끼는 손님이 많을지도 모른다. 손님이 충분히 느리게 머무를 생각을 하고 있다면, 메뉴도 조금 느려도 괜찮을지도.
손님과 직원의 동선을 효율보다 더 좋음으로 집중할 수 있다.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좋은 기분을 느낄 수 있을까. 그런 부분에 집중해서 설계할 수 있지 싶다. 이런 방식으로 운영되려면 어떤 머신이 필요하고, 어떤 메뉴가 필요할까. 바는 어떤 모양이어야 좋고, 손님은 어떻게 움직이고 무엇을 보게 될까. 그런 세세한 부분의 결정을 할 수 있다. 어떻게 하면 효율을 내려놓고 내가 생각하는 바를 전달할 수 있을까. 물론 이건 내가 생각한 대로 되지 않고, 매장이 예상한 데로 흘러가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래서 갑자기 바쁘다며 에스프레소 머신을 넣고 분주하게 움직일지도.
매장에는 저마다의 리듬이 있다. 손님이 어떤 흐름으로 들어오고 나가는지. 직원들이 어떤 템포로 움직이는지. 인테리어나 메뉴, 음악, 모든 곳이 리듬에 영향을 주고, 이런 리듬이 전반적인 흐름을 만든다고, 나는 그게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단정할 수는 없겠지만, 이런 점에 미루어서 아래 요소들을 고려하고 있다.
1. 에스프레소 머신이 아닌 모카포트
2. 정형화되지 않은 느낌의 메뉴들
3. 바 보다는 가정집 주방 같은 느낌
4. 자리에 메뉴판을 가져다드리는 방식
5. 음료는 서빙하기
6. 볼거리가 많은 공간
모두 느리게 운영하겠다고, 효율보다 기분 좋은 느낌을 주는 방향으로 하겠다고 생각하며 결정하게 되는 요소들이다. 이 외에도 여러 가지 요소들이 이 기준에 맞춰 설계되지 않을까. 가능하면 이 마음을 잃지 않고 고집스럽게 가지고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만. 흐음….
창업 순서
1. 큰 비전을 세워라.
2. 비전을 해체하여 구체적인 모습으로 만들어라.
3. 나에게 커피/카페란?
4. 나는 어떤 공간을 만들고 싶은가?
5. 앞의 내용을 바탕으로 카페의 첫 단면을 그려라.
6. 회전율 정하기.
7. 이상적인 부분과 현실적인 부분을 구분하라.
8. 매장의 운영 흐름 짐작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