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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잡문인 Oct 10. 2019

어머니와 커피

  날씨가 제법 차가워지고, 길거리에는 은행이 떨어져 지독한 냄새를 풍긴다. 나는 공원을 산책하고 돌아와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켜고, ‘아, 오늘은 뭘 적어볼까.’ 하고 고민하고 있었다.

  나는 방문을 살짝 열어 두었는데, 마침 어머니가 방에서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어머니는 부엌으로 가서 커피를 내리기 시작했다. 커피 향이 내 방으로 스며들었다. 기분 좋은 향이다. 커피가 추출되고, 어머니는 소파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며 낮잠의 여운을 쫓아내고 있었다.

  나는 종종 어머니를 보면서 홈 카페의 가장 이상적인 모습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누구보다 커피 마시기를 즐기고, 커피 한잔에 행복해한다. 게다가 꽤 많이 마시기도 하는 편이니, 원두를 판매하는 카페들의 경제 활성화에도 일부 도움이 되는 셈이고, 좋은 커피 문화 만들기에 이바지하는 하나의 톱니바퀴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 충분히 이상적인 홈 카페 바리스타가 아닌가. 어쨌든 바리스타의 입장으로서 어머니 같이 홈 카페를 즐기는 사람들은 언제나 대 환영이다. 산업의 측면에서 커피를 소비하고 즐기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법이다.


  어머니와 커피에 대해 말하자면, 어머니는 과거에 오랫동안 가게를 운영하셨다. 가게의 선반에는 언제나 MAXIM이라고 적힌, 빨간색 뚜껑의 유리병에 담긴 커피가 있었다. 어머니는 한차례 손님들이 몰렸다 빠지면 한숨 돌리면서 주전자에 물을 끓이셨다. 정리가 끝난 부엌을 한번 보고, 한숨을 한번 내쉬고, 빨간색 유리병 속의 커피 가루를 종이컵 속에 툭툭 털어 넣는다. 스푼도 저울도 필요 없다. 손목의 스냅으로 두세 번 털어낸다. 그렇게 커피를 마시며 손님이 빠진 조용한 가게를 둘러보셨다.

  그러던 어머니는 이제 집안일을 하신다. 커피를 하는 아들로서, 어머니에게 효도하는 기분으로, 집에 원두를 채워 넣고 1인용 커피메이커를 사놓았다. 물은 이 정도, 원두는 1.5스푼. 그리고 버튼을 눌러요. 끝. 편하죠? 건강도 챙기실 겸, 인스턴트커피 말고 원두커피를 드세요. 향도, 맛도 좋아요. 어머니의 원두커피 사랑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아주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물을 넣고, 원두를 대충 두 스푼 털어 넣고, 버튼을 누른다. 커피가 추출되는 동안, 화장실 한번 다녀오고, 담배 한 대 태우고, 부엌으로 가서 커피를 가져와 소파에 앉는다. 그리고 “아, 좋다. 아침에 먹는 커피가 세상에서 제일이다.” 아침마다 항상 하시는 말씀.

  첫 모닝커피를 시작으로. 아침 먹고 한 잔. 집안일 간단히 하고 소파에 기대서 한 잔. 점심 먹고 나면 한 잔. 오후에 시장 보거나 친구 만나고 돌아와서 한 잔. 저녁 먹고 한 잔. 으흠, 어어, 이거 적고 보니, 너무 많은 거 아니에요? 어머니?

  어머니가 그렇게 원두커피를 드신 지 3년 정도 되었다. 이제는 맛이나 향으로도 뭔가를 느끼기 시작했다. 나도 집에서 커피를 마시기 때문에, 원두를 구매할 때마다 다양한 카페, 원두를 구매한다. 이제 어머니는 원두가 바뀔 때마다 정확하게 알아맞춘다. 피드백도 좋다.

  “어이, 아들. 이번 커피는 뭔가 깊이가 없다. 좋은 것 좀 사봐.”

  “어이, 아들. 이거는 고소하니 향이 좋다. 진하고 좋아.”

  “어이, 아들. 이번 커피는 너무 시큼하다. 맛이 희한한데, 쫌 파이다.”

  그러다 한 번은 게이샤 커피를 구매했더니,

  “어이, 아들. 커피 바뀌었어? 뭐야 이번 커피는 고급지고 좋다. 향이 좋네. 부드러워.”라고 말하시는 데. 으음, 그렇지. 그렇지요. 향이 좋은 비싼 커피입니다.

  아무래도 나는 지금 새로운 주부 바리스타를 양성하고 있는 기분이다.

  그런데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커피를 권하더니, 이제는 아버지도 커피에 입문하셨다. 으음, 으음… 원두 값을 받아야 하나.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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