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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잡문인 Jul 16. 2019

나만 일하는 것 같아

  “왜 인지. 나만 일하는 것 같아.”

  카페에서 일을 하다 보면, 이상하게 나만 일 하고 있다고 느낄 때가 있다. 평소와 같이 일을 하고 있는데, 어느 날 문득 하수구 냄새가 코 끝을 스치는 것처럼 불쾌한 기분이 들기 시작한다. “왜 나만 일 하는 것 같지?”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눈덩이처럼 종잡을 수 없이 거대 해진다.

  “왜 저렇게 빈둥거리는 거지? 난 이렇게 바쁜데, 핸드폰을 만지면서 여유로워 보여. 왜 나만 이런 거야?”하는 억울한 마음이 요동친다. 설거지도 얼른 정리하고, 시럽도 채워야 하고, 과일도 씻어서 손질해야 하는데, 손님도 간간히 들어와 주문도 받아야 하고, 할 일이 너무 많다. 마음이 조급해지고, 밀린 일들을 얼른 정리해버리고 싶다. 그런데 왜 쟤는 저렇게 빈둥거리면서 주문도 안 받는 거지? 하는 생각이 턱 끝까지 스멀스멀 기어올라온다. 한마디 소리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다.

  할 일은 산더미 같이 쌓였다. 얼른 처리해버리고 싶은데, 함께 일하는 다른 직원들은 도와주지 않는다. 나 혼자만 바쁘다. 서서히 억울한 마음이 요동치고, 다른 사람들이 미워진다. 얼굴도 보기 싫다. 말을 걸어도 대답하고 싶지 않다. “너희는 그렇게 놀아. 그냥 내가 다 한다.”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한다. “나라도 해야지. 매장이 돌아가려면.”

  거기까지 생각이 들면, 아무것도 믿고 맡길 수가 없다. 다른 사람들이 한 일들이 제대로 된 건지 의심이 가기 시작하고, 하나하나 신경 쓰게 된다. 그렇게 나는 점점 지쳐간다.

  이런 경험을 한 적 있지 않으신지? 카페에서 일하는 것뿐만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과제를 하거나 일을 하면, 꼭 이런 일이 생긴다. 갑자기 미워지고, 화가 나고, 나만 일하는 것 같다. 어째서 이렇게 되는 걸까.


  한 번은 함께 일하는 직원이 일을 너무 안 한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왜 저렇게 일을 안 하고 매번 빈둥거리는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틈만 나면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설거지가 쌓여 있어도 모른 채 다른 일을 해버리고, 청소나 과일 손질은 보란 듯이 미뤄버리고, 다른 쉬운 일만 찾아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게 아닌가.

  대체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일을 적당히 하기 위해 모든 것이 계산된 행동일까. 아니면 아무런 계산 없이 본능적으로 적당하게 일을 하는 걸까.  

  만약 모든 것을 철저하게 계산해서 일을 하는 경우라면, 대단하다. 인정해야 한다. “음, 서서히 손님들이 단체로 나가려 하는군. 곧 설거지가 많이 쌓일 테니, 이쯤에 테이블과 의자 정리를 하면서 느지막하게 돌아오면, 다른 누군가가 설거지를 하겠지.” 일일이 계산하며 전체 흐름을 파악하고 도둑질 한 너구리처럼 슬그머니 뒷걸음질 친다면, 인정해야 한다. 비범한 능력이다.


  그러다 우연히 그 직원과 퇴근하는 시간이 맞아서 같이 맥주를 마시러 간 적 있다. 근처 맥주집에서 치킨을 시켜 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다 대뜸 그가 말했다.

  “요즘 너무 바쁜 것 같아. 손님도 늘었고, 할 일이 끊이지 않는 것 같아. 그러지 않아요?”

  나는 그 말을 듣고 혼란스러웠다. ‘바쁘다고? 정말? 뭐가? 어째서?’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맥주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깨달은 게 있는데, 누구에게나 각자의 바쁨과 힘듦은 있다는 것이다. 비록 납득이 되지는 않았지만, 각자가 나름대로 성실히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자신이 가진 기준과 행동방식으로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 있는 것이다. 그도 그럴 수 있는 게 모든 사람이 내가 생각하는 방식이나 기준만큼 일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는 나름대로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여전히 “정말 그래? 정말이야?” 하고 의심이 가지만. 그렇다고 정말 그런 것인지 하나하나 따지다 보면, 분위기가 험악해지고 복잡해지기 때문에, 그저 그렇게 믿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정리하고 나자, 이후로는 그다지 미움이 생기지 않았다. 아아, 뭔가를 하겠지. 원래 그렇지. 하는 식으로 나의 태도가 바뀌었다. 나름대로 이해하는 방법을 배운 것이다.


  그런데 말입니다. 한 사람을 이해하고 나면, 또 다른 무언가가 마음에 걸리기 시작합니다. 저건 왜 저렇지? 왜 저러는 거야? 아 정말, 마음에 안 들어. 하고 또 억울한 마음이 요동칩니다. 문제가 끊임없이 돌고 돕니다. 인간관계란 다 그런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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