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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 Mar 05. 2016

2. 두 사람의 위기

침묵의 연장전

나는 머리 끝까지 화가 나 있었고, 말 없이, 하지만 티를 내려고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그 남자는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는 듯 했다.


일주일간 간단한 아침/저녁 인사, 묻는 내용에 대한 간단한 대답만을 이어갔었고 점점 늦어지는 답장의 속도와 무뚝뚝함으로 그사람이 빨리 내가 화가 나있음을 알아주기를 바랬다. 빨리 알아채서 나를 좀 달래줬으면 싶었다. 하지만 결국 화나서 끙끙대던 것도 나 혼자, 그런 나를 알아주지 않아서 화가 난 것도 나 혼자였다. 나 혼자.


일주일만에 나는 우리 사이가 예전같이 괜찮은 것 같냐고 물으며 공격을 시작했다. 예상처럼 그의 답변은, 최상의 행복 상태는 아니었지만 화가 나 있는 상태는 아니지 않냐고 대답했다. 일부러 나를 약올리려고 이러는 건가 싶었다. 지금까지 지내온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 사람은 나에 대해 하나도 깨달은게 없는건가. 나를 위해 자신을 무조건 바꿔야 하는건 너무 부당하다고 말하던 그 사람은, 또 이렇게 이해해 주기를바라고 내 화를 어르고 달래주기를 바라는 내 마음에 큰 구멍을 냈다.


불과 일주일 전 이었다. 너와 나의 미래, 아무준비도 없이 빈둥대는 그사람에 대한 걱정과 불안함으로 크게 다투었고, 길고 긴 이야기와 헐뜯음 끝에 서로의 속에 어떤 계획과 생각이 있는지 알게는 되었다. 그사람도 나도 마음의 상처를 크게 받았다. 서로를 이해해주지 못하는 상대 때문에.


하지만, 그 계획을 알게 되었다고 내 불안감이 감쪽같이 사라지는 것은 않는다는 것을 그 사람이 알 리가 없다. 그래도 나를 몇번 더 달래주고, 더 신경 써주고, 사랑한다고 한마디 더 해주기를 바랬던게 잘못인가. 쿨하게 아무일 없던 것 처럼 묵묵하게 기다려주는 여자친구가 되어야 했었나.


아무일 없다고 생각하던 사람에게 갑자기 화난 고양이 처럼 달려드는 여자친구가 뜬금 없었을 것 같긴 하다. 너의 이런 행동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으니까.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모르는 그 사람은, 또 무관심과 무시의 자세로 대응하기로 마음 먹었었나보다. '또 이러다가 지나가겠지, 항상 그랬던 것 처럼...' 이라는 마음으로.


화가 나서 연달아 메시지를 보내고, 왜 내가 화가 났는지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고, 네가 나에게 해줬으면 하는 것들에 대한 질타와 원망을 늘어놓은 나에게 돌아온 대답은.... 이제 졸려서 자야겠다는, 그리고 사랑한다는 한마디였다. 맥이 풀렸다. 벽을 보고 혼자 화가나서 빽빽 소리를 지르는 기분이었다.


그 이후로 우리 사이에 계속 침묵이 흐른다. 침묵이라고 해봤자 8000km 떨어진 그사람과 나 사이를 연결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던 전파가 끊긴것일 뿐이다. 생각하는 시간을 갖자고 했지만, 5년전에 했던 다른 사람과의 이별이 그 '생각하는 시간'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이 계속 마음에 걸린다. 나는 우리가 정말 서로를 위해 태어난 사람들인 줄로만 알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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