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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20만 원짜리 적금을 들었다.

버티는 삶

by 홍차

2020년 1월 방콕으로 출장을 다녀오면서, 뉴스에 아주 조그맣게 중국에 무서운 감기 바이러스가 유행한다는 기사를 읽었다. 코로나가 대유행을 하기 전이었다. 그 후로 세상은 변했다. 그리고 나에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작은 아파트에서 전세를 살던 나는 재택근무를 시작하면서 24시간 집에만 있는 답답함에 조금은 큰 집을 알아보았고, 이제 마흔이 넘었으니 자가를 갖기로 결심을 했다. 빚을 냈고 그렇게 나는 "경기 자가에 소기업 다니는 사십 대"가 되었다. 하늘길이 막히고 내가 좋아하는 카페고 식당이고 거리에도 사람이 줄었다. 모두들 마스크를 쓰고 다녔다.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던 그 시간은 결국엔 흘러 점점 일상을 되찾기 시작했다. 일상을 찾고 그동안 쌓였던 답답함을 토해내듯 여행을 갔다 왔다. 자금과 시간의 부족으로 봄에는 방콕에 다녀왔고 가을이 끝날 무렵에서 겨울까지는 프랑스와 두바이에 다녀왔었다. 작년에는 교토에 가려고 예약을 했다가 지진경보라는 뉴스에 급하게 취소를 했다. 결국 2023년도의 두 번의 여행을 끝으로 나는 여행을 하지 못했다. 국내 여행도 2023년도가 끝이었다.

2-30대에는 여행 러버인 줄 알고 살았다. 적어도 30대 중반까지는 정말 그러했다. 어느 순간 여행이 조금은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변한 나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마지막 여행이었던 프랑스 여행에서 절실히 깨달았다. 새로운 곳에 가서 새로운 음식을 먹어도 기대했던 맛이고 새롭지가 않았다. 그저 사람 사는 곳일 뿐. 가끔은 돈 쓰고 여기서 뭐 하는 짓이지? 하는 생각도 문득 들었다. 뒤돌아 생각해 보니 복에 겨웠던 순간이었다. 그렇게 스트레스를 훌훌 털어버린 나는 2024년도의 시작이 좋았다. 회사일도 그 무엇도 열심히 열정을 다해할 마음이 있었고 그냥 하루를 열심히 충실히 사는 것을 즐겼다. 그렇게 나를 차곡차곡 채우던 무언가는 결국 작년 이맘때쯤 폭발해 버렸다. 연차도 제대로 못쓰고 1년 가까이 달려오면서 야근과 주말근무도 많았지만 불만도 없고 왠지 모르게 일이 재밌는 느낌도 있었다. 아마도 자기 최면이었을지 모른다. 결국 11월 초에 조금은 긴 휴가를 내면서 집에서 마냥 쉬었다. 이게 잘못이었다. 결국은 회사에서도 그리고 고객들도 (아마도 나의 연차는 고객에게 공유되는 것 같다. 꼭 쉬는 날에만 연락이 온다.) 연락을 해왔다. 결국 휴가 기간에도 컴퓨터를 켰고 업무를 간간히 봤다. 조금은 길게 내었던 휴가 기간에 나는 회복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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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온다는 번아웃이 이런 거구나. 한 대 맞은 듯한 깨달음이 나에게 왔지만 어찌할 수가 없었다. 점점 무기력해지고 나도 모르게 화와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이 시기는 무척이나 오래갔다. 알면서도 해결할 수 없는 답답함이 쌓였다.

원래의 나라면, 이렇게 번아웃이 왔고 무기력해졌다면 아마도 회사를 떠나는 결정을 하고 당분간은 아무 생각하지 않고 쉬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변했다. 중년이 되었고 무엇보다 나에게는 빚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2020년 이후 부지런히 갚고 있지만 그저 백사장에서 모래 한 줌을 갚은 느낌이었다. 매달 나가야 하는 이자와 원금은 과거의 내 모습으로 더 이상 돌아가지 못하도록 나를 붙들어 맸다. 이쯤 친구가 "너는 그 집 아니었으면, 진즉 퇴사하고 놀고 있었을 거야. 집을 산 것을 다행이라 생각해."라고 말해줬다. 머리로는 더 이상 중년은 무턱대고 그만둘 수 없고 다행히 나에겐 빚이 있어 행동으로 옮기지 못함을 다행이라 생각했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나를 더욱 버티게 하고 숨통을 트이게 할 무언가가 필요했다.

멍하니 여행 유투버의 콘텐츠를 보던 그때, 하와이에 가고 싶어졌다. 팬데믹 이후 치솟은 물가로 하와이는 너무 비싼 여행지가 되었다. 10시간씩 비행기를 타고 가서 3 밤만 자고 올 수는 없을 터, 나는 그렇게 야밤에 적금을 들었다. 고작 20만 원이라고 할 수 있지만, 매달 집담보대출을 상환하는 나에게는 20만 원이 고작은 아니었다. 중년이 되면 돈은 걱정 없이 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허무맹랑한 믿음이 있었던 나의 20살은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20만 원짜리 적금의 이름은 "하와이 적금"이 되었다. 정말 몇 년 후에 하와이를 가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주식이 아닌 적금이 맞는지도 모르겠지만 우선 숨을 쉴 수 있었다. 막연한 "쉼"이 있는 몇 년 후를 상상하며 그래도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버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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