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2024년, 올해의 회사의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2023년 겨울에 떠났던 휴가 기간 동안 팀 내 큰 변화가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내가 의견을 낸다고 반영이 될 상황도 아니었고 불만을 내뱉어 봐야 그 불만들은 살을 붙이고 붙여 더 커질 것이 자명했기에 나는 애써 불만을 삼키며 그냥 받아들였다. 받아들였다기 보단 외면했다는 것이 더 맞는 것 같다. 오랜 회사 생활을 통해 나름 깨달은 것이 있다면, 회사 생활은 더 좋은 것도 더 나쁜 것도 없다는 것이었다. 40년 넘게 살아보니 전화위복, 새옹지만 같은 사자성어가 괜히 나온 게 아니더라 단것인 줄 알고 삼켰던 초콜릿이 쓰디쓴 럼을 품고 있을 수도 있고 쓴 다크초콜릿 안에 달콤한 체리쨈이 가득 들기도 한 것이 삶이다라는 것을 깨달았다. 편안하게 쉬고 와서인지 내 마음은 잔잔하고 깊은 바다처럼 너그러워진 것만 같았다. 그냥 하루에 만족하고 기뻐하는 삶을 살아보기로 결심했다.
봄이 지나면서도 잘 견뎌냈다. 재택을 하는 날 점심밥상을 차려 먹고 퇴근 후에 이른 저녁밥상을 만들어 내는 하루, 해 질 녘이면 깊게 해가 들어오는 거실을 지나치면서 재택을 하는 것에 만족했다. 어느 날 갑자기 아침에 달리기를 시작했다. 언제인지도 모르는 초여름의 어느날이었다. 너무나 일찍 눈이 떠졌고 평소라면 침대에 누워서 핸드폰이나 만지작 거리며 뒹굴거렸을 나였지만 그날은 마치 스프링처럼 침대에서 튀어 올랐다. 그렇게 아침 달리기가 시작되었다. 일찍 일어나 동네 공원을 한 바퀴 둘고 와서 샤워를 하고 간단한 아침을 먹고 서재에 들어가 컴퓨터를 켜면서 시작되는 회사일은 바빴어도 괜찮았다. 여름휴가도 못 가고 주말이고 밤이고 일을 해야 했다. 그래도 잘 견뎌냈다. 원래 여름은 성수기니까 나가면 너무 덥기만 할 테니까 불만을 내뱉기 전에 마치 어릴 적 할머니가 청심환처럼 생긴 생약을 초콜릿이라 속이며 나에게 먹였던 것처럼 스스로 지쳐가는 나를 잘 속여가며 지냈다. 추석 연휴를 기다렸다. 그리고는 시월의 연휴를 기다렸다. 그렇게 하루하루 기다리며 버텨냈다. 할머니가 초콜릿이라 속이지 않고 쓰디쓴 인 것을 미리 알려줬더라면 배신감이 덜 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오래 전의 어린 나처럼 결국 나는 더 빠르게 지쳐갔다.
12월에 한꺼번에 쉬리라 마음을 먹었으나 이미 나에게는 12월의 스케줄이 쌓이기 시작했다. 지금이 아니면 도저히 쉴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가을방학을 결심했다. 여러 번 연차를 신청하고 회수하는 것을 반복했기에 나의 매니저는 이번에는 절대 번복하지 말라며 나의 가을방학을 응원해 줬다.
2024년 11월 늦은 가을방학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