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탐구생활 #2
나는 물리학과를 졸업했다. 중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 물리학과에 진학하기로 마음을 먹었고 연구자의 꿈을 가지고 있었지만, 누구나 그렇듯 꿈을 이루고 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나도 그중 하나이고 나는 석사를 마치고 방황을 하다 작은 회사에서 일을 시작하였다.
대학원을 다니던 아주 옛날에 혈액형별로 사람의 성향을 나누는 것이 한창 유행이었는데, 어느 날 대학원 친구들에게 한창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는데 한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너는 물리학을 공부한다는 사람이 그런 걸 믿니?"
그래. 나는 과학을 공부하는 사람이지. 그래도 재미로 볼 수 있는 거 아닌가? 불안한 미래를 가슴에 안고 등에 지고 살던 시기라 새해에는 친구와 종각 근처 길거리에서 할아버지들에게 만원을 내고 사주를 봤다. 20대를 거쳐 30대까지 한창 방황을 하고 무언가에 집착을 질리도록 하고 나니 더 이상 궁금한 나의 미래는 없었다. 하루하루 출근해서 일에 치여 살기 바빴고 주말에는 다시 월요일에 출근을 하기 위해 충전을 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랐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사주풀이가 궁금해졌다. (아마도 COVID-19로 긴 재택을 하면서 출퇴근에 쏟았던 에너지가 남아 있어서 이런저런 잡생각이 많았나 보다.) 일요일 오후 집에서 뒹굴다가 다음 지도를 열어 "사주"라고 검색을 하니 근처 사주카페가 주르륵 검색이 되었다. 그중 한 곳에 전화를 했고 그렇게 나는 사주를 봤다.
내 사주에는 火가 많고, 38살 이전까지 이 火가 내 삶에서의 운을 뚝뚝 끊어 먹는다고 했다. 다행인 것은 사주를 봤던 현시점에서 38살은 과거라는 것이다. 이제는 이 火를 더 활활 타오르게 하는 시기란다. 이 火를 활활 타오르게 할 장작 같은 것은 木인데 그 木이 공부란다. WHAT???!!!!!! 그렇게나 무수히 퇴사와 입사를 하면서 새로운 업무에 적응하기 위해 공부를 했고, 직업의 특성상 무수히 많은 논문과 특허를 읽어내야 했다. 그리고 지금은 외국계 회사에서 일하면서 거기에 영어를 더 얹었다. 공부가 너무 지겨웠다. 학위를 하는 것도 아닌데 너무 지겨웠다. 마흔이 넘으니 체력이 떨어지면서 내 마음도 열정도 힘을 잃었다. 그 공부가 지긋지긋해서 사주가 궁금했나 싶었는데, "부적이다 생각하고 공부를 해라" 라니. 지긋지긋한 내 팔자야.
(그러나, 다이어리에 어제의 페이지를 보니, 영어 공부, 코딩 공부, 색연필 그림 온라인 수업 등록 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래 뭐라도 배우면 남겠지.)
집에 돌아오는 길에 헛웃음이 났다. 뭐에 홀려 사주를 보고 왔나 싶어서. 성당을 바라볼 수 있는 근처 카페에 가서 뭔가 속죄하는 마음으로 커피를 한 잔 마시고는 봉헌초를 주르르 여러 개 켜고 기도를 했다.
굉장히 주관적인 직장운 없는 사람의 십여 년 직장에서 느낀 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