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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차 Jul 05. 2020

물리 전공자, 사주를 보았다.

직장 탐구생활 #2 

나는 물리학과를 졸업했다. 중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 물리학과에 진학하기로 마음을 먹었고 연구자의 꿈을 가지고 있었지만, 누구나 그렇듯 꿈을 이루고 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나도 그중 하나이고 나는 석사를 마치고 방황을 하다 작은 회사에서 일을 시작하였다. 


출 - Pixabay (가물거리는 기억이지만, 대학원 시절 내가 썼던 Single Crystal Growth 장비와 유사한 사진을 찾았다!) 


대학원을 다니던 아주 옛날에 혈액형별로 사람의 성향을 나누는 것이 한창 유행이었는데, 어느 날 대학원 친구들에게 한창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는데 한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너는 물리학을 공부한다는 사람이 그런 걸 믿니?"


그래. 나는 과학을 공부하는 사람이지. 그래도 재미로 볼 수 있는 거 아닌가? 불안한 미래를 가슴에 안고 등에 지고 살던 시기라 새해에는 친구와 종각 근처 길거리에서 할아버지들에게 만원을 내고 사주를 봤다. 20대를 거쳐 30대까지 한창 방황을 하고 무언가에 집착을 질리도록 하고 나니 더 이상 궁금한 나의 미래는 없었다. 하루하루 출근해서 일에 치여 살기 바빴고 주말에는 다시 월요일에 출근을 하기 위해 충전을 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랐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사주풀이가 궁금해졌다. (아마도 COVID-19로 긴 재택을 하면서 출퇴근에 쏟았던 에너지가 남아 있어서 이런저런 잡생각이 많았나 보다.) 일요일 오후 집에서 뒹굴다가 다음 지도를 열어 "사주"라고 검색을 하니 근처 사주카페가 주르륵 검색이 되었다. 그중 한 곳에 전화를 했고 그렇게 나는 사주를 봤다.


내 사주에는 가 많고, 38살 이전까지 이 가 내 삶에서의 운을 뚝뚝 끊어 먹는다고 했다. 다행인 것은 사주를 봤던 현시점에서 38살은 과거라는 것이다. 이제는 이 를 더 활활 타오르게 하는 시기란다. 이 를 활활 타오르게 할 장작 같은 것은 인데 그 이 공부란다. WHAT???!!!!!! 그렇게나 무수히 퇴사와 입사를 하면서 새로운 업무에 적응하기 위해 공부를 했고, 직업의 특성상 무수히 많은 논문과 특허를 읽어내야 했다. 그리고 지금은 외국계 회사에서 일하면서 거기에 영어를 더 얹었다. 공부가 너무 지겨웠다. 학위를 하는 것도 아닌데 너무 지겨웠다. 마흔이 넘으니 체력이 떨어지면서 내 마음도 열정도 힘을 잃었다. 그 공부가 지긋지긋해서 사주가 궁금했나 싶었는데, "부적이다 생각하고 공부를 해라" 라니. 지긋지긋한 내 팔자야. 

(그러나, 다이어리에 어제의 페이지를 보니, 영어 공부, 코딩 공부, 색연필 그림 온라인 수업 등록 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래 뭐라도 배우면 남겠지.)


출처 - Pixabay


집에 돌아오는 길에 헛웃음이 났다. 뭐에 홀려 사주를 보고 왔나 싶어서. 성당을 바라볼 수 있는 근처 카페에 가서 뭔가 속죄하는 마음으로 커피를 한 잔 마시고는 봉헌초를 주르르 여러 개 켜고 기도를 했다. 


'지난 주도 참 심심한 한주였다고 감사하다고. 

그리고 이번 주도 심심한 한주가 되도록 해 달라고.'



굉장히 주관적인 직장운 없는 사람의 십여 년 직장에서 느낀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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