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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에 하는 월동 준비

겨울의 맛, 복숭아 병조림

by 홍차

여름이면, 말랑말랑 핑크빛이 살짝 도는 털복숭아가 여러 박스 강원도 시골로 배송이 되었다. 한 여름을 알리는 신호.

작은 엄마의 형제 중 한 분이 경기도에서 복숭아 농장을 하셨고, 매 해 여름이면 복숭아를 아주 잔뜩 보내주셨다. 복숭아가 배달이 되는 날은 바쁜 날이었다. 현자 씨는 여기저기 부딪히지 않은 모양이 예쁜 복숭아를 골라 씻고 깨끗하게 껍질을 깎고 잘라 접시에 한가득 담아 주면서 "할아버지, 할머니부터 포크에 꽂아 드려라."라는 말을 꼭 했다.


우리 세 남매는 신이 나서 뛰어가서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포크를 들고 젤 큰 조각을 찍어 할아버지! 할머니! 를 외치며 입에 넣어드렸다. 그리고선 우리도 신이 나게 복숭아를 먹었다.

신나게 복숭아를 먹고 있으면 현자 씨는 미리 준비해 놓은 병조림용 유리병을 꺼냈고 할머니와 현자 씨는 모든 복숭아를 손질했다. 그리고는 아직은 먼 그 해의 겨울을 위해 복숭아 김장을 했다.


현자 씨의 복숭아 병조림은 복숭아 껍질을 벗기고는 조각을 내지 않고 딱 반을 잘라 씨만 뺐다. 그리고 복숭아 4-5개는 들어갈 큰 병 한가득 복숭아와 달달한 설탕물을 담았다.

복숭아 병조림은 찬장에 일렬로 줄 맞추어 첫눈이 오는 날까지 옹기종이 때를 기다렸다.


출처 - Pixabay

긴긴 강원도의 겨울밤 현자 씨는 병조림을 하나둘씩 꺼내 복숭아를 잘라 주었고 찬장에서 커다란 복숭아 병을 꺼내어 뚜껑을 열 때마다 지난여름의 추억도 함께 열렸다. 병조림의 뚜껑 열기는 아빠의 몫이었다.

복숭아 병조림이 다 떨어질 때쯤이면 어김없이 봄이 왔다.

겨울 과일이라고는 귤만 먹던 그 시절에 귀한 겨울의 맛, 복숭아 병조림.


출처 - Unsplash

최근에야 알게 된 사실은, 할머니는 간재미라고 부르셨고 나도 어릴 적엔 복숭아 간재미라고 불렀다. 강원도 정선의 사투리라고 생각하며 자랐는데 검색해보니 일본어다. 할머니의 아주 어린 시절을 보냈던 광복 이전의 시대에 어린 전기옥여사가 쓰셨던 단어인가 보다. 할머니는 할머니가 된 후에도 어릴 적 단어를 꺼내어 쓰셨구나.

매해 여름이 되면 복숭아 병조림을 만들어 나도 아직은 한참 남은 겨울을 준비해야 할 것 같은 느낌처럼 할머니도 그러셨나 보다.


함씨네 비법 아닌 비법 - 설탕물을 뜨겁게 끓여 반으로 자른 복숭아를 넣어 살짝 데친 다음 유리병에 넣고 이 유리병을 다시 뜨거운 물에 한 번씩 끓여 냄 (현자 씨는 30년이 훨씬 넘어 기억이 가물가물하다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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