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꿩 대신, 닭 만두를 아시나요?

할머니 만두

by 홍차

2020년의 가장 뜨거운 키워드는 COVID-19일 것이다. 다행히도 지난 2월부터 우리 회사는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잠잠해지면 복귀하려는 계획은 점점 미뤄지더니, 최근에는 working from home에 대한 설문조사까지 진행되었다. 물론 나는 "I love it!"에 한 표를 던졌고, 앞으로도 재택을 했을 경우 지원해주면 좋을 것에 이것저것 적어냈다. 이러다 한국 사무실은 사라질 것 같다. 아마 다른 도시에 있는 사무실들도...

재택근무를 하면서 매 끼니를 만들어 먹는 재미에 점심시간이 기다려지더니, 날씨가 더워져 그런지 지치기 시작했다. 동생네 놀러 갔다가 냉동실에 있는 엄마 만두를 가져와 쪄 먹다 보니, 할머니 만두가 생각이 났다.


출처 : Pixabay

내가 기억하는 정선의 겨울은 온통 하얬다. 어릴 적 나는 큰방이라 부르는 할머니 할아버지 방에서 함께 잤다. 그 방에는 작은 창문이 골목을 향해 나있었고 아침이면 할아버지의 거친 비질 소리에 잠이 깼다 들고를 반복했다. 캄캄한 새벽부터 비질을 하지 않으면, 대문을 열기 힘들 정도로 눈이 많이 왔고 우리 집은 골목 중간에 위치한 집이라 할아버지가 항상 골목 끝까지 비질을 하셔서 푹푹 발이 빠지지 않고 골목 안 사람들이 일터로 향할 수 있었다. 비질 소리가 나면 오늘은 눈이 왔구나 했다. 할아버지 비질 소리에 잠을 자는 것은 여간 행복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강원도 시골의 겨울은 길었고 그 시절은 늘 제철음식이라 겨울에 나오는 재료로 만든 음식들만 상에 올라왔다. 우리 집은 일곱 식구였다. 할아버지, 할머니, 엄마, 아빠, 나, 그리고 남동생 둘. 겨울이 오기 전에 어마어마한 양의 김장을 했다. 할아버지와 아빠는 뒤 안에 땅을 파 깨끗하게 씻어 놓은 커다란 김장독을 여러 개 묻으셨다. 내가 쏙 하고 들어가도 넉넉하게 남을 것 같았던 아주 큰 김장독이었다. 다음 봄이 오기 전까지 우리 집 밥상을 꽉 채워준 김치를 저장할 그 김장독.


할머니는 유난히 만두를 좋아하셨고 나도 울 할머니 입맛이라 만두를 좋아한다. 추운 겨울 놀러 나가기 힘든 날에는 할머니랑 앉아서 만두를 빚었다. 고사리 같은 작은 손으로 밀가루 반죽을 똑똑 떼어 동글동글 새알심을 만들면 할머니가 손으로 만두피를 만들어냈다. 조금 더 자랐을 때는 나도 따라 했던 손으로만 만든 만두피. 지금도 나는 아주 얇은 만두피보다는 살짝 두툼한 씹는 맛이 느껴지는 만두피가 좋다. 한 번에 많은 만두를 빚는 날에는 국수를 밀던 커다란 밀대로 반죽을 밀어 주전자 뚜껑으로 만두피를 찍어냈다.

얼마나 많은 만두를 빚고 가족들이 만두를 좋아했냐면 그 시절 짤순이라는 탈수기를 김치를 짜는 용도로 별도로 집에서 구매해서 썼다. 만두 전용 짤순이는 세탁기와는 다르게 거품이 있는 하얀 세제 물 아니라 고춧가루가 있는 빨간 김칫물을 뱉어냈다. 어린 마음에도 우리 집은 왜 이렇게 만두를 먹나 생각하면서도 만둣국이 저녁상에 올라오는 날은 너무 좋았다.


출처 : SBS News 라이프

어느 날 테레비를 보다가 (왠지 나의 어린 시절이라 TV, 텔레비전이 아니라 테레비가 딱인 것 같다.) 만두를 돼지고기로 만든다고 해서 너무 놀랐던 기억이 있다. 우리 집의 고기만두는 내가 아주 어릴 적엔 꿩만두였고 어느 날부터 닭 만두로 바뀌었다. 그 후로 쭉 닭 만두가 우리 집 만두다. 꿩만두의 맛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꿩만두에서 닭 만두로 바뀐 그 날 '닭 만두는 꿩만두보다 맛이 없네.'라고 생각한 기억만 어렴풋이 난다. 지금은 시골 닭집에서 닭의 살을 발려주지만 그 시절엔 그냥 생닭만 팔았다. 그렇게 엄마가 사 온 닭은 할머니가 살을 잘 발려내었고 남은 뼈는 육수를 냈고 뼈를 건져내면 내가 남은 살을 뜯어먹었다. 원래 어린이들은 이런 게 좋다. 발려진 살은 할머니가 직접 칼로 타닥타닥 소리를 내면 다졌다. 그렇게 만들어진 우리 집 만두는 육수가 아닌 맹물에 삶아도 닭 육수가 뽀얗게 우러났다. 엄마의 김치가 들어간 할머니의 만두소는 찰떡궁합이었다. 지금도 우리 집은 닭 만두를 먹는다.


할머니는 닭고기를 넣지 않은 김치만두도 해주셨다. 고기를 넣지 않은 김치 만두는 아주 조금씩 만들었고 그날은 만두 전용 짤순이를 사용하지 않았다. 우리 할머니, 전기옥 여사의 비밀 레시피는 라면이었다. 라면을 잘게 부숴 만두소를 만들었다. 굵직한 밀가루 맛을 좋아하는 내가 좋아한 할머니표 라면 김치 만두는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로는 먹어 보질 못했다. 더운 여름 에어컨 앞에서 일하다 문득 따뜻했던 할머니의 만두가 생각났다.



함씨네 비법 아닌 비법 - 꼭 안성탕면을 잘게 부숴 김치만두 속에 섞기. 탄수화물 중독자가 좋아할 그 맛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진짜 올챙이는 아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