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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차 Jun 30. 2021

이력서를 다시 문서함에 넣었다.

프로 이직러의 이야기

나는 프로 이직러였다.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 계속 다니고 있으니 과거형 프로 이직러.

짧게는 6개월을 다닌 곳도 있었고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가 가장 오래 다니고 있는 회사다. 벌써 만으로 3년이 지났다. 또래의 친구들은 16년 차 17년 차가 되도록 한 회사만 다니는 친구들이 많아 나를 보면 신기해 하지만 나는 그들이 신기하다.


대학원을 졸업한 연구실에서 연구원으로 몇 년을 일했다. 가장 길게 방황했던 시기였다. 회사라는 곳에 취직을 할 용기도 없었고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모르던 시기였다. 어릴 때부터 늘 하고 싶은 무언가가 있던 나로서는 너무나도 당황스럽고 처음 마주하는 그런 내 상태였다. 지도교수님의 권유로 살짝은 도피성이 있었지만 그래도 내 오랜 꿈이기도 했던 유학을 준비했지만, 정말 붙어 버리면 이대로 나는 미국에 가야 하나? 하는 막연한 두려움도 함께 커져가서였는지 나는 3개의 대학에 지원했고 모두 보란 듯이 똑 떨어졌다. 그렇게 나는 미련 없이 연구실을 떠나 두 번째 직장을 찾아갔다. 그때 교수님은 나에게 독일에 있는 연구소에서 일을 좀 하다가 공부를 다시 하는 게 어떻겠냐고 하셨지만, 내 힘으로 처음 옮긴 곳에서 우선 일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교수님 말을 들었어야 했다. 1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후회한다.) 그렇게 나는 잘못된 길에 발을 내디뎠다.

세상에는 내가 할 수 있는 많은 직업과 회사가 있다는 것을 조금 더 자세히 알아봤어야 했다. 지금의 회사에 입사하기까지 나는 6개의 회사들을 거쳐갔다. 프로 이직러라고는 하지만 나는 굉장히 게으른 인간이었고 스쳐간 회사들 중 나 스스로 뛰쳐나온 곳은 두 군데밖에 없다.

처음 학교를 떠나갔던 곳은 계약직이었다. 나는 오래 다닐 생각이 없었기에 계약직이 딱이라고 생각을 했다. 처음 면접을   시간이 지나고 정규직으로 해준다는 말에 시큰둥했다. 그렇게 시작한 곳에서 유일한 정규직의 과장은 나를 포함한 모든 계약직이 자기에게  보이기 위해 노력하길 바랬으나 다들 자존감이 높았다. 결국 내가 담당하던 장비에 전적으로 책임이 있던 내가 냈던 의견이 맘에 들지 않아 그때부터 나를 맘에 들어하지 않더니, 기회가 찾아오자  지정해서 잘랐다.  과정이 치졸했다. 1 7개월쯤 됐을 , 갑자기 소속을 변경해야 한다며 사내 다른 법인으로 소속을 옮기고서는 3개월이 지나자 수습기간이 지났으니  채용하지 않겠다.라고 했다. 소속을 옮기는 과정에서도 무작정 옮기는 것이 안되기 때문에 그들은 이미 근무를 하고 있는 계약직들이 내정되어 있는 상태에서 채용공고를 거짓으로 올리고 그대로 계약직들을 채용하는 작업을 했었다.  당시 너무 황당하기도 했고 원래 2년을 채우면 그만둘 예정이었던 곳이라 미련 없이 그날 짐을 싸거 나왔다. 교수님이 가지 말라고 말렸을  말을 들었어야 했다.

그리고 다녔던 곳들 중에는 갑자기 회사 사정이 어려워져서 월급을 안 주겠다고 하거나, 사기꾼에 휘말리면서 스타트업 한 곳은 폐업을 하기도 했다. 우여곡절이 많았다. 대학원 시절부터 거의 20년의 세월을 옆에서 지켜본 친구가 "너처럼 직장 복이 없는 애는 처음 본다. 학교 생활을 허투루 한 것도 아니고."라고 말했다.

이런 과정에서 연구실에서 같이 공부를 했던 사람은 나에게 너는 박사를 못 받고 석사만 했으니, 이 정도의 월급이면 감지덕지이니 자기 연구실 셋업을 도와달라고 했다. 연고도 없는 지방 도시에 내려갈 이유가 전혀 없었다. 심지어 연봉도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신입의 연봉도 되지 않는 정도에 그 당시 받고 있는 나의 쥐꼬리 만한 월급보다도 한참이나 적었는데 나를 희생할 이유가 없었다.

나중에 다시 만난 그 지인은 내가 그때 안 도와줘서 기분이 너무 나빴는데, 네가 무슨 염치로 먼저 연락을 했냐고 말했다. 그 후로 그 지인과는 연을 끊었다. 특별한 상황이 아니고서는 얼굴 볼 일도 연락을 할 일도 없다.


지금의 직장에 오기까지 많은 회사를 거쳐가면 무수히 많은 일들이 있었다. 당분간은 일을 하지 않겠다 선언하고 1년 정도를 여행도 다니고 책도 읽고 운동하고 쉬었다. 가장 인간답게 살았던 시기였다. 당시에 나는 알았다. 다시는 오지 않을 롱 베케이션이라는 것을.

그리고 잦은 이직을 하면서 나는 변했다.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고 했던가? 나도 환경에 따라 변했다. 엄청난 게으름으로 한번 정한 것을 잘 바꾸지 않고 오히려 집착하는 성향이 강했던 나는 이제는 한 곳에 오래 버티고 있는 것이 좀이 쑤시기도 했다. 그래도 나는 참고 버텼다. 어쩌면 버틸 수밖에 없는 환경이 또 만들어졌는지도 모른다.

지금의 회사에서 3년이 넘어가니 이전의 회사 경험을 통해서 눈 감고 귀 막고 살겠다는 다짐을 뒤로한 채 조금씩 눈을 뜨고 귀를 열고 있다. 너무 오랫동안 묵혀두었던 이력서를 업데이트했다. 많은 이직을 했다는 것은 무수히 많은 거절을 받았다는 얘기가 될 수도 있다. 또다시 거절이라.. 마음 한편이 답답해져 왔다. 새로이 업데이트 한 이력서를 다시 문서함 저 깊숙한 곳에 넣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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