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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차 Aug 29. 2021

오늘은 실컷 울기로 했다.

다시채우기 위해비워내기

믿었던 사람에게는 나도 모르게 기대를 하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그들의 작은 말, 작은 행동 하나도 나에게 트리거로 작동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는 2020년 코로나 환자가 한국에서 발생하기 시작했던 2월부터 재택을 하고 있다. 벌써 1년 하고도 반이 넘도록 나는 재택근무자다. 올해 초에 잠깐 주 1회 출근을 시도하였으나, 델타 변이라는 새로운 복병이 나타났고 결국 다시 전면 재택에 들어갔다. 고작 4번 정도 출근할 후라, 출근한 기억이 없을 정도다. 물론 가끔 중요한 회의를 해야 할 경우에는 미리 회사에 얘기를 하고 회의실을 예약한 후에 모여서 회의를 한다. 고객과의 미팅이 자주 있는 편인데 그것 또한 고객의 특별한 요청이 있기 전에는 온라인으로 대체한다. 아마 우리나라의 모든 직장인들이 온라인으로 하는 회의, 교육, 세미나 등에 익숙해져 버린 것 같다. 


재택을 하고 있으면 그 누구도 보는 사람이 없다. 원래도 조금은 자유로운 회사였는데 더욱 자유로워졌다. 그렇다고 현재 내 근무지인 우리 집 서재를 근무시간에 떠나지 않는다. 커피가 생각나 커피를 사러 나갈 때 조차도 우리 팀에게 커피 좀 사러 나갔다 오겠다고 꼭 얘기를 하고 자리를 비운다. 회사에 출근했더라면 그냥 잠시 사라져도 찾지 않는 것이 우리 회사였는데 보는 눈이 없으니 스스로 더욱 까다롭게 신경을 쓰고 있다. 


나도 내 동료들도 서로를 볼 수 없으니 얼마나 업무에 시달리고 있는지 보이질 않는다. 우리 팀은 원래도 바쁜 팀이었는데 올해는 진짜 그 도를 넘어선 느낌이 들었다. 그 정도가 넘어선 지 언 5개월 차. 지난 4월부터 야근과 주말근무가 필수이며, 미리 신청했던 연차도 몇 번을 회수했는지 모른다. 심지어 잠을 쪼개서 자야 하는 상황까지 생겼다. 이번 주만, 이번 달만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라고 잘못 생각했다. 


지옥 같았던 시간 중 8월은 이렇게까지 일을 해야 하는지 조차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트레스와 피곤함으로 생긴 다래끼는 커져가는데 잠시 병원을 다녀오면 오늘 자야 하는 5시간의 잠 중에 2시간은 버려야 한다. 그렇게 버티다 결국 성형외과를 가야 하는 상황까지 번졌다. 체력은 무너졌고 그렇게 정신력도 같이 무너졌을 때쯤 트리거가 작동했다. 


아주 사소한 것. 

믿었던 사람들 어쩌면 그래서 내가 더 기대고 의지했던 사람들의 무심결에 던진 한마디들이 트리거가 되었다. 회사를 계속 다니는 게 맞을까? 작년에 집은 왜 사서 대출금도 있고 매달 써야 하는 내 생활비도 있는데 그냥 무작정 퇴사를 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그래도 내 건강이 먼저가 아닐까? 온갖 생각을 다 들었다. 그들도 내가 보이질 않으니 얼마큼 업무에 시달리고 있는지 단순하게 던진 업무가 실제로는 몇 날 며칠을 밤을 새워야 하는 업무인지 몰랐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에게 화를 내야 하는 상황이 아닌 것을 안다 다만 나는 그들에게 알 수 없는 기대를 했던 것 같다. 그래도 나는 화가 났고, 나는 속으로 화와 울음을 삼켰다. 


며칠 전 아주 사소한 거에 너무 억울하다며 엉엉 우는 7살 조카를 보면서 나는 소리 내서 꺼이꺼이 울었던 게 언제였던가 기억해봤다. 기억이 나질 않는다. 엉엉 울고 난 7살짜리는 다시 환하게 웃으면서 식탁으로 와서 억울했던 것을 조잘조잘 얘기했다. 그러고는 언제 울었냐는 듯이 까르르 웃어댔다. 저렇게 비워내야 다시 저런 웃음이 채워질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오늘은 소리 내서 울자고 결심했다. 비워내야 다시 채울 수 있을 것 같아서.

매거진의 이전글 이력서를 다시 문서함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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