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차 Oct 24. 2021

매일 저녁 빨간 눈으로 맥주를 마셨다.

1인 가구 내 집 마련  Ep.8

철거는 시작되었고 나는 나름의 스케줄로 집 공사를 진행했다. 처음에는 도배와 청소만 할 계획이었기에 부동산 사장님이 며칠 정도의 목돈을 유통해주셨다. 물론 이자를 내고 차용증을 쓰고 며칠 빌리는 조건이었고 약 오천만 원 정도가 모자랐다. 이 사실을 안 친구 몇몇은 이자가 아깝다며 바로 오천만 원을 이체해주겠다고 했다. 일주일 빌리고 이자를 몇 십만 원을 낸다니 미쳤다고 했다. 기분이 좋았다. 나에게는 없는 오천만 원이 내 친구들에게는 당장 필요하지 않은 돈이니 우선 써라.라고 하는 여유 있는 친구들이 있어서 좋았고, 월급쟁이에게 오천만 원은 일 년을 넘게 모아야 하는 큰돈인데 당장 보낼 테니 계좌번호를 부르라고 하는 친구들을 보며 내 신용도가 높다는 뿌듯함에 웃음이 났다. 일주일 뒤 전셋집을 빼면 바로 갚을 수 있는 돈이기에 부담 없이 빌릴 수도 있었지만, 이런 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내가 될까 봐 겁이 났고 제3자에게 이자를 주고 빌리는 것이 "돈"이라는 문제에 있어서는 깔끔할 것 같았다. 그렇게 웃으며 나는 비싼 이자를 냈다. 


셀프 인테리어를 알아보면서 나는 욕심이 조금씩 났고 그렇게 약 열흘 정도의 공사를 감행하게 되었다. 전셋집을 빼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마지막 도배를 앞두고서는 모든 짐을 집에 넣어 놓고 도배 공사를 진행해야 했다. 물론 도배를 알아보면서 이러한 상황에서도 공사가 가능한 곳을 골라 계약을 했다. 


생각보다 공사는 힘들었다. 흔히들 턴키라고 부르는 인테리어 업체에 맡긴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직접 공사 후의 마감을 봐야 했다. 공사 도중에 진행이 잘되고 있는지 혹시라도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 해결까지 모두 내 몫이었다. 주변에 셀프 인테리어를 해본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기에 인터넷에 있는 글들만 무작정 믿고 해야만 했다. 모두들 진심으로 겪은 것들을 자세히 올려주었지만, 세상에는 무한수의 경우의 수가 발생하는 것 같았다. 재택근무를 하고 있어 9시부터 6시까지는 집에 있어야 했고 모든 공사는 아주 일찍부터 와서 준비하고 9시에 시작을 한다. 나는 새벽부터 일어나서 나의 첫 집에 가서 각 단계별로 공사 업체의 사장님들을 기다렸고 주의 사항들을 설명드리고 궁금한 점을 물어봤다. 그러고는 점심시간에 짬을 내서 커피와 간식 등을 사서 진행 상황을 점검했고 보통 5시쯤 공사가 끝나기 때문에 마무리하고 가신 다음 나는 퇴근하고 마무리 점검을 했다. 큰 하자가 없었고 나는 공사 대금을 입금을 했다. 


처음 며칠은 다행히 내가 이미 살고 있는 집에서 공사를 진행했는데, 전세 계약이 만료가 되고 짐을 빼서 공사 중인 집에 짐을 옮긴 후 며칠 동안은 큰 동생네 집에서 생활했다. 동생은 주말 부부라 임신한 올케와 4살 조카와 셋이 살았다. 새벽마다 일어나서 준비하고 낮에는 회사 업무를 하고 저녁에 다시 공사 현장을 방문하는 스케줄은 몸도 마음도 지치게 만들었다. 

결국 나는 눈에 핏줄이 다 터져버렸다. 왼쪽 눈의 흰 부분은 그냥 빨간색이 되어 있었다. 병원을 가볼 시간 조차 없었고 저녁이 되면 온 몸이 바스러질 것 같았다. 밤이 되어 조카의 놀이방에 누워 잠을 청할 때면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 고생을 하고 있는지 헛웃음이 났다. 그런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눕기만 하면 기절하듯이 잠에 빠져들었다. 몸이 너무 고되었기에 생각을 깊게 오래 할 수 없었다. 최종 점검을 하고 동생네로 터덜터덜 걸어오는 저녁 시간에 나는 항상 맥주를 사들고 왔다. 그렇게 나는 빨간 눈을 하고 매일 저녁 맥주를 마셨다. 


공사의 일정은 아래와 같았다.

철거 - 주방 타일 공사 - 페인트 - 전기 공사 - 스위치 및 콘센트 교체 - 마루 - 이사 - 도배 - 청소 - 중문 설치 - 방문 손잡이 교체 - 목공 작업 및 문 2개 교체


스위치 및 콘센트 교체와 방문 손잡이 교체는 진정한 셀프였다. 대학원 시절 장비도 분해해보고 뭔가 뚝딱 거려야 하는 것들이 많아서 저런 건 쉽게 할 줄 알았다. 콘센트와 스위치 교체 비용도 개당 비용이 청구되는 거라 은근 개수가 많아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그냥 내가 하기로 했다. 청계천을 뒤지고 오가며 가장 저렴한 스위치 가게를 알아냈고 개수를 안 세고 가는 바람에 두세 번 방문하게 되었다. 나는 한창 유행하던 르그랑 스위치를 달고 싶었고 스위치가 은근히 비쌌다. 저렴한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의 전체 금액이 차이가 많이 났기에 큰 동생을 데리고 을지로에 가서 스위치를 잔뜩 사 왔다. 교통비 및 스위치 교체 작업을 도와줬기에 아르바이트비를 주었다. 요즘 용돈이 줄어서 힘들어하기 있기에 동생은 흔쾌히 도와주고 용돈을 받아갔고 나는 편하게 을지로를 왔다 갔다 했다. 물론 커피도 공급해줬다.

 [꿀팁] 스위치를 변경할 때는 가능하면 콘센트와 인터넷 등 같은 모델로 하는 것이 집이 훨씬 깔끔해 보인다. 전기 공사 사장님께서 알려주신 팁이다. 콘센트는 교체할 생각을 못했는데 안 했더라면 너무 눈에 거슬릴 뻔했다. 

거실 벽의 콘센트와 인터넷선 교체 작업 중


처음 민원을 받은 날은 마루 공사를 한 날이었다. 마루업체 사장님이 당일 개인적인 큰일이 발생했고 정신이 없으셨다고 했다. 9시부터 공사가 시작되어야 하는데 맘이 급한 나머지 8시부터 공사를 시작한 것이다. 마루 작업이 고구 망치로 통통 두들겨서 마루를 붙이는 작업이라 은근 소음이 발생한다. 결국 나는 전화를 받고 죄송하다고 연신 말할 수밖에 없었다. 마루 작업 후 이삿짐을 넣고 도배를 해야 했기에 마루 보양 작업도 요청을 했는데 이 작업 또한 잊고 그냥 가버리셨다. 나는 동네 철물점을 다 뒤져 골판지 보양재를 샀으나 턱없이 부족했고 무게가 상당했기에 작업을 할 수가 없었다. 결국 도배 공사팀에 죄송하다고 연신 고개를 숙이며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 이게 시작이었을까? 도배팀에서 콘센트 작업을 하다가 손을 다쳐 결국 3명이 오셨는데 2명이서 작업을 하게 되었다. 시간도 부족하고 해서인지 주방 구석 잘 안 보이는 곳은 도배풀과 먼지가 뒤엉켜 지저분해져 있었다. 나는 굉장히 까다로운 인간형이라고 생각했는데 모든 게 귀찮고 빨리 끝내고 싶어 그냥 넘어갔다. 어차피 무언가를 두면 안 보일 거라고 생각했기에. 

도배가 끝나고 청소가 끝난 후 나는 입주를 할 수가 있었다. 입주를 하고 보니, 마루 보양작업을 못한 탓인지, 새로 한 마루는 여러 군데가 찍히고 긁혀 있었다. 어차피 살다 보면 생길 부분이지만 막 새로 한 마루가 긁히고 찍힌 것을 보니 너무 속이 상했다. 이삿짐을 넣을 때인지 도배 공사를 할 때인지 알 수가 없었다. 살다가 나중에 쪽 갈이를 하라는 조언을 마루업체 사장님으로부터 듣고 눈을 질끈 감기로 했다. 


왼: 가장 심하게 긁혀있던 바닥 모습, 가구를 놓을 수 있는 위치가 아니라 그냥 눈을 감기로 했다. 오: 도배가 끝난 모습. 이사짐을 풀지 않고 도배를 했다.


아직 공사가 덜 된 상태에서 나는 입주를 했다. 싱크대의 뒤판이 훤히 보여도 안방 베란다에 귀신이 나올 것 같은 화분 가림막을 두고도 그냥 살았다. 참 무서운 게 적응이었다. 적응하니 또 살만 했다. 그렇게나 꼴 보기 싫던 중문도 자꾸 보니 괜히 교체한다고 했다 싶었다. 물론 모든 것이 정리된 후에는 잘했다 생각했다. 

위: 안방 베란다 화단 가림막 공사 전/후  아래: 교체한 중문 내 맘대로 디자인하기 위해 많은 손품과 발품을 팔았다.


그렇게 나는 살면서 조금씩 고쳐 가보자 하는 마음으로 어설프게 완성된 집으로 입주를 했다. 가끔은 그 흔한 패닉 바잉의 결과물인가 하는 후회가 될 때가 있기도 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앞으로 내가 쉬어갈 공간이 있다는 마음에 안도하는 내 첫 집이다. 


첫 내 집을 마련할 때 TIP!

1. 가장 편하게 집을 수리하는 방법은 업체를 통해서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이다. 하지만, 민원이 발생하거나 할 때도 큰 문제가 생겼을 때도 결국 집주인의 몫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모든 업체가 성실히 하자 없이 공사를 해줄 거라는 보장은 없다. 

2. 공사를 시작하면서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모르니 공사 사이에 넉넉하게 시간을 배치하는 것이 좋다.

3. 공사 전에 여러 업체의 견적과 포트폴리오를 보는 것이 좋다. 꼼꼼하게 잘하는 업체는 몇 달 전에 예약이 다 차기 때문에 미리미리 스케줄을 짜고 예약을 하자.

4. 을지로도 좋지만, 집 주변에 잘하는 업체를 수소문하는 것이 좋다. 

5. 정신적 스트레스를 최소한 받기 위해서는 적당히 타협하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다. 나는 타일 공사에서 흔히 말하는 호구가 되었다. 덧방에 몇 시간 하는 작업을 100만 원을 줬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를 제외하고는 모두 저렴하게 했기에 평균으로도 굉장히 저렴하게 모든 공사를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이전 글 보기

1인 가구 내 집 마련하기 Ep.1 : 내 집 마련을 결심하다.

1인 가구 내 집 마련하기 Ep.2 : 10년 산 동네서 집 구하기 - 나는 내 동네를 몰랐다.

1인 가구 내 집 마련하기 Ep.3 : 내 집 마련의 결심은 우울증을 타고

1인 가구 내 집 마련하기 Ep.4 : 포기했을 때 찾아온 나의 첫 집

1인 가구 내 집 마련하기 Ep.5 : 덜컥 집은 계약했고, 이제뭘 해야하지?

1인 가구 내 집 마련하기 Ep.6 : 겁 없는셀프 인테리어 도전!

1인 가구 내 집 마련하기 Ep.7 : 철거가시작되었다. 이제되돌아갈길은 없다.




매거진의 이전글 오늘은 실컷 울기로 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