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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차 Oct 27. 2021

핼러윈 데이의 악몽

1인 가구 내 집 마련  Ep.9

새 집에 입주를 하고 한 달이 넘게 지났다. 생활은 차차 안정이 되어갔고 나의 첫 집이지만 낯 선 공간에 나도 적응이 되어가고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정이 갔다. 금요일 밤이면 빔프로젝트도 빌려 하얀 벽에 빔을 쏘아 영화도 보고 맥주도 한 잔 하며 스스로 자축했다. 외국의 명절은 아니지만, 핼러윈 데이는 이유 없이 설레었다. 어릴 적 영화 속에 나오는 것처럼 나도 독특한 분장을 하고 집집마다 사탕과 초콜릿을 얻으러 다니는 것이 소원이었다. 조카들에게 재밌는 하루를 선물하고 싶었다. 막상 어떻게 꾸며야 할지도 모르겠고 여기저기 남들이 꾸며 놓은 것들을 참고해서 파티 용품 가게에서 장식품들을 샀다. 생각보다 비싸거나 내가 원하는 모습이 나오질 않아 반짝이 털실을 사다 거미줄을 엮어가며 장식들을 직접 만들기도 했다. 조카들이 좋아할 만한 핼러윈 케이크도 주문해뒀다. 같이 먹을 저녁 메뉴도 고심하여 선정했다. 나는 밤새 우리 집 현관과 거실을 꾸몄다. 이리저리 붙였다 뗐다를 반복했다. 장을 봐 동생네 가족들이 오기 전에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을 모두 준비해뒀다. 몸이 부서질 것 같았으나, 현관에서 부터 해골이 장식된 것을 보며 신나서 소리치던 조카들의 모습에 피곤한 줄도 몰랐다. 사진도 찍고 지렁이 젤리가 마구 쏟아져 나오는 해골 모양 케이크도 자르고 발바닥에 불이 날 듯 하루 종일 서서 만든 음식들도 잘 나눠먹었다. 

새벽까지 온 거실과 현관을 할로윈 장식들로 꾸미고 파티 음식을 준비했으며 조카들이 좋아할 지렁이가 우수수 쏟아지는 해골 케이크도 주문해뒀다.

큰 동생네는 먼저 집으로 갔고 막네 동생네는 우리 집에서 자고 가기로 했다. 동생들도 어느 정도 정리된 집은 처음 오는 거라 약간의 집들이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모든 뒷정리가 끝나고 조용한 밤에 내년에 집수리를 하고 입주를 해야 하는 막내 동생 부부에게 집수리가 된 부분을 보여주며 설명을 했다. 옷방은 매일 들어가는 방이지만, 옷장을 주로 열기 때문에 고개를 숙인 적이 없었다. 핼러윈 데이 밤에 우연히 바닥을 보고는 비명을 지를 뻔했다. 새로 깐 마룻바닥이 색이 벽면 쪽으로 군데군데 진하게 변해있었다. 누수다! 그렇게 나의 평화로운 일상에 작은 금이 갔다.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땐 너무 놀라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말 그대로 핼러윈 데이의 악몽이었다. 

옷방 창문 너머가 세탁실과 맞닿은 벽의 바닥이 얼룩덜룩 변해있었다. 사진은 다음날 아침에 찍었다.

다음날 부동산에 먼저 집에 누수가 발생했음을 알렸고, 아파트 관리실에 누수 신고를 했다. 관리실에서 와서 보더니, 이건 바로 옆 세탁실에서 물이 넘치는 바람에 벽을 타고 누수가 발생한 거라고 했다. 읭? 세탁기 물이 좀 넘쳤다고 벽을 통과해서 마루가 색이 변할 정도로 누수가 되었다고요? 하지만 그렇다는데 처음 이사 온 나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누수 전문 업체에 전화를 미리 해뒀는데 아파트 관리실에서는 그거 돈만 나가지 소용이 없다며 극구 말렸다. 우선 지켜보는 것으로 마무리를 하고 허송세월을 보냈다. 


회사는 처음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했던, 2020년 2월부터 지금까지 재택을 하고 있다. 작년 11월에도 재택 중이었다. 유난히 우리 팀은 팀워크가 좋았는데 회사 메신저로도 회포를 풀 수가 없어 반년도 더 넘게 만에 저녁을 먹기로 했었다. 그렇게 미리 예약해둔 간장게장 집으로 가는 택시에서 불길한 전화를 받았다. 3,4층에서 누수가 발생했는데 아무리 봐도 우리 집에서 물이 새는 것 같다는 것이다. 집에 아무도 없는데 현관 앞 계량기가 돌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 간장게장이 넘어가질 않았다. 어차피 벌어진 일 그냥 잘 먹고 해결하면 되는 것인데 이런 일이 처음이었고 간이 콩알만 했던 나는 그렇게나 좋아하는 간장게장을 앞에 두고 먹지를 못했다. 물 공급이 중단된 상태라 한창 추웠던 11월에 보일러도 끄고 씻지도 못하고 하룻밤을 보냈다. 다음날 관리실에서 방문을 했고, 집을 매수한 지 두 달 밖에 되지 않은 상태라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을 것 같아 관리실에서 추천받은 누수 업체에 연락을 했다. 모든 아파트 관리실이 이렇지 않겠지만, 관리실을 믿지 말자. 처음 내가 찾았던 업체에 맡겼더라면 내 멘탈도 세탁실의 바닥과 함께 산산이 부서지지 않았을 것이다. 


관리실에서 소개해준 업체와 연락을 하고 날짜를 잡았다. 우리 집은 단수 상태였기에 나는 짐을 싸서 또다시 큰 동생네로 피난을 갔다. 이번에는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재택근무를 무슨 정신으로 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예약한 날짜에 누수 업체가 방문을 했다. 아저씨 한 분이 오셨다. 이 집은 누수가 너무 특이해서 바닥을 다 깨 봐야겠다고 했다. 절망했다. 세탁기는 앞쪽으로 옮겨졌고 보일러부터 세탁실의 반이 해머 드릴로 파헤쳐졌다. 아니, 저렇게 깨면 멀쩡한 배관도 깨지는 거 아닌가? 이렇게 먼지가 많이 나는데 보양도 없이 작업을 하는 건가? 결국 우리 집은 문을 닫아 놨던 안방의 커튼까지 먼지로 뒤덮였다. 깊게도 파내려 갔더니 우리 집은 이중 배관이었다. 온수가 흐르는 배관을 다른 넓은 배관이 감싸고 있었다. 이 집은 너무 이상하다며, 그렇게 세탁실 반을 깨 놓으시고는 싱크대를 들어서 거실로 옮기고 주방 바닥을 다 깨 봐야지 알겠다고 하셨다. 물론 싱크대는 못 옮기니 업체에 연락해서 거실로 옮겨놓으라 하셨다. 정신을 차릴 수 없는 막막함이 밀려왔다. 부동산 사장님들도 오셔서 보시고는 어쩌냐고 이런 일은 처음이라고 하셨다. 매도인에게도 이 상황을 알리셨다. 싱크대 업체까지 예약을 하고 하루의 시간이 있었다. 너무 찜찜한 마음에 처음에 연락했던 누수 업체에 사정을 얘기하고 요청을 드렸다. 늦은 밤 시간에 들러서 이 집은 오래된 아파트인데도 이중 배관을 쓴 거 보니 나름 신경을 쓴 것 같다. 요즘 새로 짓는 아파트에 들어가는 자재이고 바닥을 깨는 게 아니라 관만 교체하면 깔끔한 건데 전 업체에서 이런 걸 아예 모르셔서 온수관을 따라 바닥을 다 깬 것 같다고 하셨다. 전 업체서 사고 친 부분까지 수습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고, 다음날 바로 수리를 해주시기로 하셨다. 


다음날 오전 총 세 분이 오셔서 싱크대도 부분을 해체해서 살짝 옮기신 후에 정말 속에 들어있던 관만 새로 교체를 해주셨다. 누수의 원인은 집을 지을 때 운이 없게도 온수관에 살짝 찍힌 배관이 사용되었고 세월을 버티다 그 부분이 터진 것이라고 했다. 전 업체에서 다 깨 놓은 세탁실 바닥까지 마무리해주시고 다음날 다시 타일을 붙이러 오셨다. 그나마 위안은 세탁실은 페인트만 새로 시공을 해서 바닥 타일은 거의 20년 전 그대로였다. 새로 붙여주신 타일이 훨씬 맘에 들었다. 전 업체에서는 그래도 내가 시간을 썼으니 80만 원을 달라고 하셨다. 전 업체에서는 이중 배관이라는 것을 처음 봤다고 했다. 심지어 세탁실의 바닥을 깨면서 이중배관을 다 찢어 놓았다. 차라리 처음부터 이건 좀 이상해서 잘 모르겠다고 하셨으면 출장비를 드리고 끝났을 텐데 온 집은 모든 가구를 닦고 옷과 집기를 꺼내서 세탁을 해야 했고 심지어 다 깨 놓은 세탁실 바닥 때문에 추가 비용이 많이 발생했고 엄청난 민원과 스트레스를 견뎌야 했다. 전 업체와 결국 피해보상을 받지 않는 것으로 마무리를 했다. 


왼: 문제의 온수배관, 주방 쪽 이중 배관의 안쪽 배관의 찍힌 모습. 가: 바닥이 거의 다 깨진 세탁실, 문앞의 빨간 주름관이 깨져버린 이중 배관. 오: 온 집안을 뒤덮은 먼지.

누수가 발생한 부분은 모두 수리를 마쳤고 청소 업체에게 온 집안 청소를 의뢰했다. 문을 닫아 놓은 방은 청소하지 않는 것으로 계약을 했는데 업체 사장님이 도저히 안 되겠어서 문을 닫아 놓은 방의 벽까지 다 닦아주셨다. 추가 비용도 받지 않으셨다. 그만큼 집이 너무 전쟁터라 나를 딱하게 보셨다. 커튼도 다 세탁을 해야 한다고 어떡하냐고 고생하라고 말씀해 주셨다. 청소 업체에서 다녀간 후 모든 이불과 옷과 커튼을 세탁했다. 한꺼번에 하기엔 너무 벅차 세탁소에 맡기고 할 수 있는 만큼 다 했다. 주방의 모든 식기는 꺼내 다시 설거지를 했고 자잘한 집기류를 닦았다. 일주일을 넘게 청소를 했던 것 같다. 그래도 어느 정도 안정이 되었을 무렵 앞집에 사시는 분이 엘리베이터에서 만나서는 어떻게 인테리어를 했길래 수도관이 터져서 누수가 발생했냐고 하셨다. 바닥 깊숙이 묻혀있는 온수관을 고작 마룻바닥 교체했다고 찍혀서 터질 리가 없으며 여차 저차 한 이유였다고 설명을 드렸다. 이 상황을 아는 곳은 관리실이니 관리실에서 이상한 소문을 냈을 거라 의심이 들었고 사실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관리실에 당장 쫓아가서 따지고 싶었으나 그럴 기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나는 이제 3층과 4층의 누수 피해를 입은 세대의 보상을 생각해야 했다. 


첫 내 집을 마련할 때 TIP!

1. 집을 보러 갔을 때는 대부분이 이미 거주하고 있는 상태라 집구석 구석을 보기 민망할 수 있으나, 꼼꼼히 보지 않으면 추가로 수리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으니 꼼꼼히 따져보자. 

2. 현재 거주하고 있는 분들에게 누수 관련 사항은 꼭 체크하자. 외벽 크랙, 베란다나 창문틀의 실리콘 문제로 인한 누수는 매도인이 보상할 문제가 아닐 수 있다.

3. 매수 후 6개월 이내 누수 및 중대하자의 경우 매도인이 보상을 해줘야 하는 의무가 있으니 계약서를 쓸 때 꼼꼼히 따지고 누수 관련 문제 등은 특약으로 명시하는 방법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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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가구 내 집 마련하기 Ep.1 : 내 집 마련을 결심하다.

1인 가구 내 집 마련하기 Ep.2 : 10년 산 동네서 집 구하기 - 나는 내 동네를 몰랐다.

1인 가구 내 집 마련하기 Ep.3 : 내 집 마련의 결심은 우울증을 타고

1인 가구 내 집 마련하기 Ep.4 : 포기했을 때 찾아온 나의 첫 집

1인 가구 내 집 마련하기 Ep.5 : 덜컥 집은 계약했고, 이제 뭘 해야 하지?

1인 가구 내 집 마련하기 Ep.6 : 겁 없는 셀프 인테리어 도전!

1인 가구 내 집 마련하기 Ep.7 : 철거가 시작되었다. 이제 되돌아갈 길은 없다.

1인 가구 내 집 마련하기 Ep.8 : 매일 저녁 빨간 눈으로 맥주를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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