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가구 내 집 마련 Ep.10
처음 우리 집에 누수가 발생했던 것을 알게 된 것은 10월의 마지막 날, 할로윈 데이었다. 아파트 관리실에서 내가 처음 우리 집 누수를 신고했을 그때 저층 세대의 누수 발생 원인을 못 찾고 있었던 것과 우리 집 누수를 연관 지었다면 두 세대의 피해 또한 적었을 테고 나도 빠르고 쉽게 누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파트 관리실은 전혀 연관 짓지 못했고, 내 집의 누수는 그렇게 나는 집에 이사 오고 거의 두 달이 되도록 나도 모르게 남의 집에 피해를 끼치고 있었다.
우리 집의 누수는 우여곡절 끝에 해결을 했다. 누수가 멈추고 가까스로 일상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저층 세대의 피해에 대해 그 후로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해 그저 약간의 물이 흐르고 멈췄나 보다 하며 일상을 보냈고 몇 주가 지나고 나서야 관리실에서 연락이 왔다. 보상을 해줘야 할 것 같으니 어떻게 처리할 거냐고 했다. 우선 나는 집을 매매한 지 몇 달이 되지 않은 상태였고 우리 집의 수리보상은 매도인에게 받았다. 저층의 누수 피해 또한 매도인이 보상을 해야 할 것 같았다. 누수의 시작이 잔금을 치른 날짜였기에 최소한 일부를 매도인이 부담해야 할 것 같았다. 매도인에게 저층 두 세대의 보상에 대해서 얘기했을 때 매도인은 펄쩍 뛰었다. 아니 고층 집 누수가 어떻게 저층 세대에 피해를 줄 수 있냐며, 집수리 후에 피해 세대의 물 흐름이 멈춘 것은 우연의 일치이며, 그럼 모든 아래층 세대의 누수를 책임져야 하냐며 화를 냈다. 집 매매를 몇 주만 늦었더라면 내가 겪은 고생을 매도인이 겪어야 했다고 생각해서인지 나도 화가 났다. 결국 변호사와 상담을 했고 민사 소송이 진행이 된다면 저층 피해 세대는 나에게 민사를 진행하고 나는 다시 매도인에게 민사를 진행해야 한다고 했다. 현 소유주가 나이기에 피해 세대는 매도인에게 바로 소송을 진행할 수가 없다고 했다. 골치가 아팠다. 내가 왜 집은 샀을까? 하는 후회와 동시에 이전에 살던 좁은 전셋집으로 다시 짐을 싸서 들어가고 싶었다.
누구도 함께 상의할 사람 하나 없는 1인 가구는 모든 것을 혼자 결정하고 감당해야 했다. 정신을 부여잡고 이것저것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왜 화재보험을 들지 않았을까부터 후회를 했다. 그러다 혹시나 해서 실비를 포함한 나의 유일한 보험의 내역을 검색했다. 일상생활배상책임보험이 포함되어 있었다. 세상이 날 향해 웃어 주는 기분이 이런 걸까?
내가 막 대학원을 졸업하고 일을 시작할 때 가입했다. 친한 친구의 어머니께서 보험설계사를 하고 계셨고 친구가 부탁하여 내 사정을 다 들으시고는 어머니께서 보험을 설계해주셨다. 영등포의 한 카페에서 어머니를 만나 보험 약관 설명을 들었던 그때가 생각이 났다. 어머니께서 이 항목은 나중에 결혼 후 자녀를 키우면 유리창을 깨던지 자잘한 것들이 생기는데 그때 쓸 수 있다고 하셨다. 그때의 나는 시간이 지나면 결혼을 하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고 있던 때라 "네."라고 짧게 대답했다. 그때 이 항목을 추가해준 어머니께 감사드리고 아무 생각 없이 대답한 과거의 나를 칭찬했다.
나는 어머니께 바로 전화드려 여쭤보니, 우선 보험 신고 접수부터 하면 될 거라고 알려주셨고 배상이 최대 1억이라고 하셨다. 너무 마음이 놓였다. 다음날 나는 보험사에 사고 신고 접수를 했고 담당자가 배정이 되었다. 그리고 관리실에 연락하여 아래층 두 세대의 연락처를 받아 연락을 했다. 보험 접수를 했고 보험으로 커버를 할 예정이다라고 말씀을 드리고 담당자와 피해 현장을 방문하기 위해 시간 약속을 잡았다.
피해를 준 세대는 2 세대로 4층과 5층이었다. 누수 피해가 먼저 5층에 발생을 했고 5층에서 물이 고이다 그것이 4층 보일러실 가까운 방의 천정을 뚫고 터진 정도의 피해였다. 4층은 석고보드 보수와 도배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고 5층은 누수 발생 원인을 몰라 보일러 가까운 방의 바닥의 부분을 다 깨 놓은 상황이었다. 그리고 누수 때문에 바닥 장판을 걷으면 물 계속 올라오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집 전체 도배와 장판을 새로 해야 했다. 5층은 세입자가 거주하고 있었는데 세입자가 몇 달 뒤면 이사 예정이라 깨진 바닥 외에는 추가 공사를 원하지 않았다. 조금 불편할 뿐 짐을 빼고 이사를 나갔다 오는 것이 훨씬 힘들다고 했다. 집주인 할머니, 세입자, 보험 담당자와의 논의 끝에 우선 깨진 바닥만 공사를 하고 집 전체 도배와 장판은 다음 세입자가 오기 전에 하는 걸로 합의를 했다. 그리고 공사 견적만큼은 사전 지급이 가능하다고 보험 담당자가 얘기를 했다. 사전 지급은 독이 되었다. 합의를 잘 마치고 집에 오니 집주인 할머니의 딸이 전화를 했다. 본인들은 논의한 내용을 원하지 않으니 세입자의 이사비용, 호텔비, 식대까지 모두 청구할 것이며 천만 원이 넘는 돈을 사전 지급해 달라고 요청했다. 나는 모든 진행 사항은 보험 담당자와 상의하시라고 하고 짧은 통화를 마쳤다.
보험사는 바보가 아니다. 늘 우리가 욕하던 대상이 아니던가? 실제 공사비는 약 300만 원이었고 이사 비용, 호텔 비용, 식대 등이 800만 원이 넘었다. 5층에서는 공사 전에 보험을 받을 수 있다는 말에 800만 원 정도의 비용을 미리 받고 세입자가 이사를 나간 후에 공사를 할 요량이었나 보다. 현재 거주하고 있는 부부는 몇 달 남지 않은 상황에서 절대 이사를 가지 않겠다고 선언을 하셨기 때문에 나름 합리적인 의심이라고 생각했다.
보험사는 청구한다고 무조건 보험금을 입금하지 않는다. 결국 최종 마무리가 된 후에 보험 담당자에게 연락을 받았다. 공사 금액을 제외한 청구는 세입자의 이사, 호텔 숙박 등을 직접 확인한 후에 지급이 될 것이라고 했고 결국 5층에서는 공사비 외의 항목에 대한 청구를 철회했고 공사비만 지급받았다. 몇 달이 흐르고 5층에 새로 이사를 왔다. 정확히 전에 살고 있던 분들이 이사 갈 날짜라고 했던 그 시기에.
반면 4층에서는 보험이 있어서 너무 다행이라며 나 몰라라 하는 집들도 많다던데 피해에 대해 보상을 해줘서 고맙다고 말씀하셨다. 나도 그동안 모르고 피해를 드려서 죄송하다 빨리 공사가 진행될 수 있게 하겠다고 말씀드렸다. 피해를 줬음에도 다행이라고 나를 위로해줬던 4층 이웃에게 감사했다.
이 일을 겪고 한 두 달이 지났을 때쯤 회사 옆 팀장님께 전화가 왔다. 지난번 누수가 잘 해결되었냐고 물어보셨다. 알고 보니 팀장님의 부모님 댁에 누수 사건이 발생했고 업체와 처리 과정 등등을 물어보시기 위해 전화를 하셨다. 이렇게 나는 아파트 누수 전문가가 되었다. 최소한 내 지인들 사이에서는.
2020년 연말이 되었다. 누구는 살면서 한 번도 겪지 않을 누수를 집을 사자마자 겪고 집주인이 되면서 많은 일들을 겪었다. 40대의 나는 많이 성장한 어른이 된 기분이었고 조금 더 집이 내가 온전히 쉴 수 있는 공간이 되어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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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가구 내 집 마련하기 Ep.1 : 내 집 마련을 결심하다.
1인 가구 내 집 마련하기 Ep.2 : 10년 산 동네서 집 구하기 - 나는 내 동네를 몰랐다.
1인 가구 내 집 마련하기 Ep.3 : 내 집 마련의 결심은 우울증을 타고
1인 가구 내 집 마련하기 Ep.4 : 포기했을 때 찾아온 나의 첫 집
1인 가구 내 집 마련하기 Ep.5 : 덜컥 집은 계약했고, 이제 뭘 해야 하지?
1인 가구 내 집 마련하기 Ep.6 : 겁 없는 셀프 인테리어 도전!
1인 가구 내 집 마련하기 Ep.7 : 철거가 시작되었다. 이제 되돌아갈 길은 없다.
1인 가구 내 집 마련하기 Ep.8 : 매일 저녁 빨간 눈으로 맥주를 마셨다.
1인 가구 내 집 마련하기 Ep.9 : 핼러윈 데이의 악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