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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차 Jun 25. 2022

혼자 살아도 매실청은 담급니다.

매실이 속삭이는 밤

지난여름, 처음 매실청을 담그게 되었다. 이전에는 엄마에게 받아서 먹거나 마트에서 구매해서 먹었는데, 무슨 바람이 불어서인지 매실청을 담그기로 했다. 그 덕에 이번 봄에 어깨 수술을 한 엄마는 올해 매실 장아찌를 담글 수가 없었다. 그래서 올해 담근 청매실 장아찌는 엄마와 나누기로 했다. 


작년에 처음 매실청을 담그는 거라 여기저기 검색을 해보았다. 홍매실로 청을 담그면 향이 너무 좋다는 말에 홍매실을 3kg 주문하였다. 하필 회사 업무가 갑자기 몰아쳐 너무 바쁜 시기였다. 묵직한 박스에 배송되어 온 매실은 하루를 현관 앞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더 이상 미루면 안 될 것 같아 박스를 열었다. 아파트 단지에도 종종 보이는 매실나무의 초록 열매가 아닌 살짝 노란빛 빨간빛이 도는 매실이었다. 복숭아가 잘못 왔나 싶은 향이 온 집에 번졌다. 빠르게 세척하고 물기를 빼기 위해 부엌에서 온 채반을 다 꺼내 담아 놓고는 혹시 먼지가 앉을까 싶어 얇은 면포를 다 덮어 놨다. 

그러고는 야근 시작! 후다닥 업무를 마치고 한숨이 나오는 매실산을 보았다. 매실 3kg은 어쩌면 작은 양이기도 하다. 매실을 구매하는 최소 단위니까. 이쑤시개로 꼭지를 따고는 씨를 발라내기 시작했다. 홍매실은 청매실과는 다르게 과육이 단단하지 않아 씨를 빼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다. 문제는 양이었다. 나는 하루 종일 일하고 야근까지 마친 상태였고 이미 자정을 넘어가고 있는 시간이었다. 

두리뭉실한 성격이랑은 좀 다르게 남다른 고집이 있던 나는 고집이 얼마나 인생을 피곤하게 만들었는지 지난 40년이 넘는 세월을 지내며 깨닫게 되었고, 그 후로 내 인생 모토 중 하나는 "빠른 포기, 큰 행복"이다. 

"그래. 포기하자. 그냥 통째로 담그자!" 반은 씨를 제거했고 반은 그대로 매실청을 담갔다. 이미 새벽 2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대충 끈적거리는 설탕 가루들을 닦아내고는 설레는 마음을 안고 잠자리에 들었다. 


유리병 안의 설탕은 하루가 다르게 녹았다. 씨를 뺀 매실청은 하루 이틀 사이에 설탕이 다 녹아서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매실청이 찰랑거렸고, 매실을 통째로 쓴 병의 설탕은 바닥에 상당히 많은 양이 가라앉아 녹지 않았다. 엄마는 뚜껑을 열어 저어주라고 했지만, 뭔가 불안했다. 괜히 세균이 들어가면 어쩌지? 하는 마음에 그대로 뒀다. 그것이 화근이었다. 역시 엄마 말은 잘 들어야 했고, 고집은 인생을 피곤하게 만든다. 

통째로 담갔던 매실청에 곰팡이가 피기 시작했다. 망했다. 그대로 모두 버리고 통을 세척해 싱크대 깊숙한 곳에 넣어버렸다. 씨를 제거한 매실은 작은 유리병에 담아 만들었는데 너무나 잘 발효가 되고 있었다. 100일 뒤가 너무 기대되었다. 


왼: 열탕 소독 후 건주 중인 유리병/ 가운데: 잘 세척하고 물기를 빼고 있는 홍매실/ 오: 씨를 빼지 않은 것은 뒷줄 씨를 뺀 것은 앞쪽 작은 유리병에 담은 매실청 (2021년)


100일 후, 적은 양의 매실청이 완성되었다. 매실은 건져내어 유리보관용기에 담고 매실청은 하나의 유리병에 담았다. 처음부터 과육이 물렀던 홍매실의 과육은 상당히 많은 양이 매실청에 녹아들었고 비록 껍질과 얇은 과육만 남은 매실장아찌였지만 나름 첫 도전이라 의미가 있었다. 그리고 그냥 고추장에 슬쩍 조몰락거렸을 뿐인데 너무 맛있었다. 아삭한 식감은 없지만 달짝지근한 향이 참 좋았다. 가끔 친구들이 놀러 올 때 슬쩍 고추장에 무쳐 내놓았다. 그렇게 만든 매실청은 아껴 아껴 먹고 있다. 겨울에는 따뜻한 물에 더운 날에는 찬물에 얼음 동동 띄워서 매실차 한 잔씩 마시면 너무 좋았다. 양도 적고 차마 아까워 요리에는 넣지를 못하고 아껴 먹고 있다. 동생이 와서는 "엄마 매실청이랑 너무 다른데? 이거 처음 마셔보는 맛이다. 복숭아 같아!"라고 했고 엄마도 한 잔 마시더니, 다음엔 엄마도 홍매실로 담거야겠다 하셨다. 작년에 담근 매실청은 나름 대성공이었다. 

올해 씨를 뺀 청매실로 담근 매실청, 빨간 뚜껑 위로 매실청이 올라오며 밤에 소리가 났다. 


올해도 어김없이 매실청은 담근다. 여름이 시작되면, 청매실이 먼저 나오니 청매실로 담그고 조금 시간이 지나면 홍매실로 담글 계획이었다. 아삭한 매실 장아찌가 먹고 싶어 청매실은 씨를 모두 빼고 담그려고 했다.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가! 다 있다. 세척하고 씨를 빼고 쪼개진 청매실도 판매한다. 편하게 편하게 하자며, 쪼갠 청매실을 구매해서 설탕 양만 맞춰서 금방 뚝딱 매실청을 담갔다. 작년 실패의 기억이 떠올라 가끔 한 번씩 뚜껑을 열어 물기 없는 나무 주걱으로 저어준다. 

어느 날 밤 평소엔 절간 같은 집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부엌 쪽이었다. 벌레인가 싶어 쪼그라든 심장을 부여잡고 조심스레 가보니, 매실청 전용 유리용기에 담가서 그런가? 매실청 뚜껑에서 매실청액이 조금 올라오면서 소리를 내고 있었다. 나 잘 익어가고 있어~라고 알리는 건가? 또다시 100일 뒤가 기다려진다.


한창 비가 내리고 본격적인 여름으로 접어들려고 한다. 아직 담그지 못한 홍매실을 담글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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