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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차 Oct 11. 2022

점심시간에 도서관으로 산책 갑니다.

재택의 일상

2020년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임시 재택근무가 시작되었다. 미국 본사와 중국 사무실, 유럽 사무실 그 어느 곳도 서울보다 나은 곳은 없었다. 회사 전체의 상황과 함께 맞물려, 한 일 이 주 정도 할 것 같았던 재택근무는 한 달 한 달씩 늘어났다. 이렇게 코로나는 나의 일상을 굉장히 많이 바꾸어 놓았다. 


3개월 정도 재택근무를 하면서 24시간 집 안에만 있다 보니, 19평 아파트가 숨 막히게 만드는 기분이 들었다. 늦은 밤이 되면 사람이 거의 없는 아파트 단지들 사이로 마스크를 벗고 혼자 산책을 했다. 저 멀리 100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거리 정도에 한 두 사람씩 보였다. 이렇게라도 해야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잠자는 방과 아주 작은 옷방이 있어 큰 테이블이 있는 좁은 거실에서 아침에 눈뜨면 노트북을 켜고 일을 했고 그 자리에서 점심과 저녁을 먹고는 퇴근을 해서도 그 자리에 앉아서 넷플릭스를 보며 쉬다가 산책을 잠깐 다녀오고는 침실에서 잠을 잤다. 매일이 반복이었다. 하루에서 잠자는 시간과 산책하는 시간을 빼고는 대부분의 시간을 거실 테이블에서 보냈다. 혼자 살기에 충분하다 생각했던 내 집은 점점 작은 감옥이 되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마흔이 되면 내 집 마련을 해야겠다는 결심은 이미 마흔이 지난 시점이었고 대출이 무서운 나는 주저하고 있었다. 그렇게 주저하고 있던 나의 등을 떠민 것은 코로나였다. 좀 더 넓은 집에 사무실과 개인 공간이 분리되어 있는 집이 필요했다. 그렇게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었다. 


계약을 하고 이사까지는 약 4개월 정도 기다려야 했다. 좀 더 넓은 공간으로 간다는 희망에 그 4개월은 기다릴만했다. 물론, 집 부분 수리, 이사, 그리고 집 누수까지 많은 시련을 겪게 되었지만 그때는 내가 닥칠 상황을 몰랐기에 참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나는 부동산 등기부등본에 내 이름 석자가 박힌 내 집으로 이사를 갔다. 흔히 말하는 뻥뷰였다. 확장이 된 집이라 거실도 평수에 비해 넓었다. 집 앞에는 학교와 공원이 있어 날이 좋은 날은 블라인드를 모두 올리고 그 앞에서 차를 마시면 힐링이 되는 기분이었다. 서재는 사무실이 되었다. 이전 집에서 쓰던 큰 테이블과 잡동사니를 넣을 수 있는 작은 장만 있었다. 이 방도 확장된 방이라 큰 방이었다. 일하다 옆 창문을 통해서 보는 뷰는 사무실에서 보던 경복궁뷰 보다는 못했지만 숨통이 트이기엔 충분했다. 드디어 업무 공간과 내 사적인 공간이 분리되었다. 


코로나의 상황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는 않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려는 노력들이 보였다. 재택을 하던 친구들도 하나둘 출근을 시작했다. 코로나로 재택근무를 시작하면서 회사는 재택근무를 하면 사무실 유지 비용을 상당히 줄일 수 있으며, 업무에 있어서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회사는 전면 재택으로 갔다. 아니 이미 전면 재택이었기에 영구 재택이라고 해야 맞는 표현인 것 같다. 그렇게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는 사무실의 책상의 수를 직원 수의 약 30% 정도만 남기고 대형 회의실과 다양한 크기의 회의실과 개인 사물함으로 바뀌었다. 특별한 회의가 있을 경우 사무실로 출근을 하면 되고 이 때는 빈 책상을 회사 시스템에서 예약을 해야 했다. 


코로나 상황이 2년 차가 되었다. 업무 공간이 분리되었으니, 재택이 너무 좋았다. 그러나 그것도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퇴근을 하면 서재 문을 닫아 절대 열지 않았으며, 주말에는 서재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가끔 읽을 책을 가지러 가는 것조차 업무 공간으로 들어가는 것 같아 나도 모르게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조금 더 커졌을 뿐 나는 또다시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남들 다 있는 운전면허도 없기에 당연히 차도 없다. 사람들을 피해 가까운 근교에나 숲에 책과 커피를 들고 이동할 수도 없었다. 나는 흙이 밟고 싶었다. 퇴근 후 타운하우스를 검색해보기 시작했다. 내 집을 전세 주고 나도 전세로 갈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보통 3~4층으로 구성된 타운하우스의 꼭대기 층을 업무 공간으로 사용하고 퇴근 후나 주말에는 절대 꼭대기 층으로 올라가지 않으리라! 좁지만 흙을 밟을 수 있는 마당에서 방울토마토와 허브를 키워야지. 업무를 하다가 쉴 때는 테라스에서 마스크를 원 없이 벗고 커피도 마셔야지. 수많은 상상을 했다. 그러나 이런 과정들은 많은 에너지를 소모해야 했기에 결국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물론 지금도 타운하우스를 꿈꾼다. 비록 작은 벌레 한 마리에 비명을 질러대는 쫄보이지만. 


2022년 코로나 3년 차가 되었다. 시간은 약이었다. 재택근무에 적응이 되기 시작했다. 출퇴근에 써야 하는 약 3시간 정도 되는 시간과 출근 준비 시간이 오롯이 내 시간이 되었다. 틈틈이 빨래와 청소, 설거지를 할 수 있었다. 재택을 하는 나를 위해 두바이에서 J가 전자동 커피머신을 선물로 보내주어 매일 맛있는 커피를 뽑아 마실 수 있었다. 옷도 편하게 입고 일할 수 있었고 화장을 할 필요도 없었다. 점점 재택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점심시간이면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건강하게 만들어 먹을 수 있었고 간단히 점심을 먹고 도서관에 다니기 시작했다. 시험공부를 위해 열람실을 가는 것이 아니라 책을 빌리기 위해 가는 도서관은 거의 30년 만인 것 같았다. 일주일에 두세 번은 책을 반납하고 예약한 책을 빌리고 어떤 책이 있는지 구경하러 점심시간에 도서관으로 산책을 갔다. 독서 양도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게다가 나는 이제 걸어서 5분 거리에 도서관이 있는 아파트로 이사를 왔으니 점심시간을 쪼개어 도서관에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퇴근을 하고 도서관에 가도 좋았다. 그렇게 나는 재택근무를 즐기기 시작했다. 


퇴근을 하고 거실로 나와 간단히 저녁을 만들어 먹고는 동네 산책을 다니고 있다. 작은 천이 흐르는 산책로는 지하철 역 바로 앞에 있다. 크게 한 바퀴를 돌면 약 4km 정도 되는 거리다. 소화를 시킬 켬 산책을 나와 지하철역 근처로 가면, 퇴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사람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온다. 운동복 차림에 민낯을 한 나는 마치 백수같이 느껴진다. 그리고 좋았다. 회사로 가는 길과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써야 하는 시간에 나는 산책을 할 수 있었고 잠을 더 잘 수 있었다. 점심시간이면 기다리느라 밥을 후다닥 먹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와 업무를 해야 했었던 시간을 이제는 때때로 도서관으로 산책을 다니면서 즐기고 있다. 

그렇게 오늘도 나는 점심시간에 도서관으로 산책을 가 새로 나온 책들을 구경하고 몇 권 빌려 집으로 돌아왔다. 물론 아직도 퇴근 후에는 서재 근처에 절대로 가지 않는다. 다만 이 상황에서 내를 가장 행복하게 해 줄 상황을 스스로 만들고 있는 중이다. 운전면허도 땄다. 언젠가는 작은 차를 사서 주말에는 숲에서 책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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