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ㅇ님 생일 축하드립니다!/ 생일 축하해!
9월 xx일 아무 날도 아닌 오늘, 생일 축하를 받았습니다.
가까스로 80년대 생에 걸친 나는 요즘 핫한 MZ세대는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풍족한 시절에 태어났다고 생각한다. 물론 강원도 시골 마을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나는 발전하는 우리나라의 부의 물결에 휩쓸리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풍족한 시절이라 생각한다. 어쩌면 늘 밥상머리에서 쌀이 부족해서 강냉이(옥수수)로 밥을 지어 도시락을 싸갔다는 아빠의 이야기를 셀 수도 없이 들었고, 할머니가 한국 전쟁이 끝난 직후에는 밀가루를 나눠줬다는 얘기를 하도 들어서 그런지 배부르게 먹고 맛있는 거 해달라고 조르며 살아온 나는 풍족한 삶이었다고 생각한다.
어릴 적 내 또래의 친구들은 양력과 음력에 대한 개념을 잘 몰랐다. 대부분 양력으로 된 달력을 썼으며, 친구들 대부분은 할머니 할아버지와 살지 않았기에 음력을 쓰지 않았다. 지금도 우리 집은 몇 월 초하루라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을 만큼 음력 달력을 많이 쓰고 있다. 이런 우리 집은 모두의 생일은 당연히 음력 생일로 챙겼었다. 매년 달력을 받으면 큰 숫자 아래 작은 숫자로 내 생일을 찾아 커다랗게 내 생일을 표시했다. 우리 가족 모두의 생일을 그렇게 기록했었다. 좀 더 자라고 주민등록증을 처음 신청하고 받았을 때 나는 무엇이 남들과 조금 다른지 잘 몰랐다. 어릴 적 나는 내 주민번호를 기억하지 못해 늘 엄마에게 물어보고 했었다. 평소에는 주민번호를 쓸 일이 전혀 없었기에, 그 시절에는 인터넷 가입도 없었다.
매번 친구들에게 내 생일을 알려주는 것이 힘들었다. 내 생일은 9월 xx일인데 음력으로 해서 매년 날짜가 바뀌어, 실제로 바뀌는 건 아닌데 우리는 주로 양력 달력을 쓰니까 음력 날짜를 찾아야 해.라는 부연 설명을 해야 했다. 새해 첫날과 음력으로 된 설날 이외에는 음력을 쓸 일이 없어서인지, 음력 달력을 잘 이해 못 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이렇게 새로운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일 년에 한 번씩은 귀찮고 불편했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인터넷이라는 신세계가 열렸고, 다양한 사이트에 가입을 할 때마다 생년월일을 입력해야 했고 병원을 처음 갈 때도 백화점 카드를 만들 때도 생년월일을 입력해야 했다. 그리고 매년 그날이 되면 어김없이 문자로 생일을 축하한다는 문자가 왔다. 그 문자가 오는 그날은 나에게는 아무 날도 아닌데 말이다.
우리 아빠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우리 3남매 중에서 나만 출생신고를 음력으로 하셨다. 아빠한테 이유를 물으니 "글쎄? 기억이 안 나는데? 내가 왜 그랬지?"라고 하셨다. 몰랐다. 세상 모든 이들이 출생신고를 하나, 불편함 때문에 생일은 양력으로 보낸다고 생각했다. 아니다 그 반대였다, 나만 음력으로 출생신고를 했고 매년 아무 날도 아닌 날 다양한 곳으로부터 생일 축하를 받았다. 심지어 회사에서도 당연히, 아무 날도 아닌 9월 어느 날에 생일 축하를 해준다. 2015년도에 첫 조카가 태어나고 첫 돌이 될 때쯤 엄마와 아빠는 음력으로 생일을 축하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물었으나, 그 당시 40년 가까이 귀차니즘과 불편함에 시달렸던 나는 동생 부부가 반대 의견을 내기도 얼마나 불편한 일인지, 아무 날도 아닌 날에 축하를 받거나, 평생 챙기지 않았고 엄마와 아빠도 잊은 어색한 내 양력 생일에 축하를 받거나, 이젠 가족들도 심지어 나도 귀찮아서 찾아보지 않는 내 음력 생일을 지나치는 일도 생긴다며 토로했고 엄마와 아빠는 바로 수긍을 했다.
친구들도 많이들 헷갈려했다. 매년 달력에서 음력을 찾아 내 생일을 챙겨주는 것도 귀찮아했다. 생일 당사자인 나도 귀찮은데 친구들은 오죽했으리라! 결국 내 양력 생일을 찾아보기로 했다. 부모님 중 아무도 그 날짜를 기억하고 있지 않았기에 도저히 못 찾을 줄 알았지만, 인터넷의 발달로 아주 손쉽게 날짜를 찾을 수 있었다. 나는 11월 생이었다. 매년 11월, 진짜 내가 태어난 양력의 그날이 되면 친구들에게 카카오톡으로 생일 축하 메시지와 이모티콘이 날아온다. 그리고 때때로 10월 때때로 11월 내 음력 생일이 되면 가족들이 축하해준다. 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을 같이 다닌 친구 J만 유일하게 나의 음력 생일을 챙겨준다. 심지어 언제부터인지 구글 캘린더만 보는 나도 내 생일을 모르는데, J가 알려주면 오늘이 내 생일이구나! 했다.
이젠 아무 날도 아닌 9월에 생일 축하를 받는 것도, 양력 생일에 받는 것도 귀찮아서 내 생일을 지나치고 기억이 나도 아무렇지도 않은 나이가 되었다. 9월 xx일 2022년 올해 첫 생일 축하를 받았다. 앞으로 두 번의 생일 축하를 더 받을 예정이다. 이제는 여러 번 생일 축하를 받는 것을 조금 즐겨봐야겠다. 올해 나의 음력 생일은 언제일까? 오랜만에 음력 달력을 찾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