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거? 해

#나로 산다는 것

by 바코

독일의 ‘Idar-Oberstein’은 인구 3만 5천 명의 작은 도시이자 보석으로 유명한 곳이다. 이 곳에서 3개월 정도를 Sigurd 가족(독일인 가족)과 함께 지냈다. Sigurd에게는 내 또래의 자녀가 4명이 있었다. 그중 Franzi를 제외하고는 다른 도시에서 일을 하고 있거나 독립하여 대학교를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빈방이 있다며 싼 값에 나에게 방 한 칸을 내어주었다. 음악을 사랑하는 이 가족은 나의 피아노 연주를 좋아해 주고, 나를 좋아했다.


‘앗, 착각인가?’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았던 Sigurd 가족은 나에게 형식적으로 받아야 할 최소한의 방세만 받으며 호의를 베풀었다. 널따란 방 한 칸을 혼자 차지하고 지내는 동안 Sigurd의 가족들은 나를 자신들의 가족처럼 챙겨주었다. 한국인이 없던 도시였지만, 이 곳에서 지내는 동안 Sigurd 가족 덕분에 외롭지 않았다.


대저택의 방 한 칸은 나에게 아주 널따란 방 한 칸이었다.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고양이도 있었다. 그 고양이의 이름은 야누스였는데, 내가 마음에 드는지 첫 만남부터 나의 폭신한 뱃살 위에서 꾹꾹이를 해댔다. 1층에는 Sigurd 부부가 살고 있었고, 나는 2층에서 Franzi와 함께 지냈다. (물론 각자의 방에서 따로) Franzi는 금발 단발머리에 눈이 동그랗고, 누가 봐도 반할 만한 외모의 소유자였다. 게다가 노래까지 가수 급으로 잘했던 Franzi는 나와 팀이 되어 함께 작은 Pub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다. 우리는 소파에 앉아 종종 맥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곤 했다.


“호키”


Franzi는 나를 ‘호키’라고 불렀다. ‘호키도키, 오키도키’라며 장난을 치기도 했다.


“Why?”


“한국 친구들은 왜 그렇게 바쁘게 열심히 사는 거야? 부러워.”


“What? 그게 부럽다고?”


“응. 항상 목표를 향해 전진하고 열정적으로 살잖아.”


“나는 여유로운 너희가 부러운데?”


"네가 여기서 5년만 살아봐."


"너도 한국에서 5년만 살아봐."


"한국 가면 이제 뭐하고 살고 싶어?"


"음악으로 따뜻한 세상을 만들 거야. 넌?"


"난 사회 복지 문화 쪽으로 공부 좀 더해서, 아이들을 위해서 살고 싶어."


"내가 계속 독일에서 살게 되면 우리 같이 할 수 있는 일들도 많겠다. 그렇지?"


"응. 그럼 너무 좋겠다."


꺄르르.


독일에서는 자신의 진로를 선택하는 데 있어 폭이 넓으며, 배우는 것에는 큰 비용이 들지 않았다. 그리고 무조건 대학을 가야 하는 룰은 없었다. 대학을 가지 않는다고 해서 그에 따른 차별적 대우를 받는 느낌도 들지 않았다. 다만, 집안에 틀어박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굉장히 안 좋게 생각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 어떤 진로를 선택하느냐는 본인의 선택이었으며, 그 선택은 존중받고 있었다. 그리고 그에 따른 책임도 본인의 몫이었다.


“나는 이런 이런 일들을 하고 싶어.”라고 얘기하면, 독일 친구들은 “네가 하고 싶은 일이면, 하면 되지. 해 봐.”라고 얘기했다.


“그거 하면 한 달에 얼마 버는데? 평생 할 수 있는 일이야? 안정적인 수입은 보장되는 거고?”라는 대답에 더 익숙했던 나에게 뭐든지 해봐라는 식의 대답은 날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하고 싶은 일을 도전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는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의 문화 차이. 그로 인한 생각차이었다.


어학원이나 학교에서 외국인 친구들과 대화를 하면서 우리와 다르다고 느꼈던 점이 있다. 그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과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일에 거리낌이 없었다. 그리고 자신이 소속되어 있는 학교와 과에 대한 비전이 있어 보였다.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하늘을 찌르는 듯했다. 저런 자신감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 좀 과한 친구들도 있었다.


‘내가 왜 여기에 있고,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다.’에 대한 물음에 대답을 할 수 있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었다.


‘성적에 맞춰서 왔어. 부모님이 원해서 왔어.’라는 대답은 거의 들어 보지 못했다.


Franzi에게 내가 한국에서 느끼는 사회 불만에 대한 얘기를 쭉 털어놓았다.


한국에서는 온전히 ‘나’의 존재로 살아가는 게 쉽지 않다고. 나 말고도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너무도 많다고.


어느 학교의 누구
어느 회사의 누구
누구의 제자
누구의 라인
누구의 자녀
누구의 엄마


Franzi는 그런 한국이 부럽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더 열심히 사는 거 아니냐고.

혼자 이기적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빛나기 위해 열정적으로 사는 거 아니냐고.


'우와...'


신선한 관점이었다.


이건 어쩌면, 익숙해져 버린 것에 대한 권태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고.


솔직히 나는 지금도 여전히 그들이 부럽다.

그들이 부유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개인의 생각과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것이 부럽다.


말이 나온 김에 얘기하자면,

우리나라 사회에 내가 바라는 점이 있다.


조금만 더 ‘나’로 살아가는데 편한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물론, 우리나라도 많은 것들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올바른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개인의 생각이나 표현의 자유가 인정되고, 다양한 삶의 방식이 존중받는 사회로 변해가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요즘 쏟아져 나오는 기사들을 보면 겉 무늬만 변하고 있었고, 실제로는 발전이 아닌, 퇴보하고 있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가슴 울화통이 치민다. 지금 내가 어느 시대를 살고 있는 건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이런 글을 쓰면 어디 끌려가는 건 아닌가 눈치도 보인다. 이 정도면 심각한 거다. 생각과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며칠 전 어느 대학 병원에 가서 진료예약을 하면서 설문지를 받아 작성을 하는데, 부모님의 직업을 적는 칸이 있었다.


"진료받는데 부모님 직업을 왜 적어야 되죠? 꼭 적어야 하나요?"


"네. 적어주셔야 합니다. 어느 교수님이 배정될지 몰라서..."


내가 나온 대학, 나의 부모님의 직업, 나의 직속 상사, 나의 교수님이 누군가가 중요한 것이 아닌, 온전한 ‘나’를 알아주는 사회가 오길 꿈꿔본다.





이제는 정말 바뀔 것이라 꿈꿔본다.
나부터 바뀔 것이다.
더 이상 눈치 보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