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홈쉐어(in 독일)

#세탁기 사건

by 바코

지하실에 있던 세탁기가 고장이 났다.


우리 7명의 빨래는 침침한 지하실에서 쌓여만 갔고, 그 케케 한 냄새를 감당해야 하는 것은 몽땅 우리들의 몫이었다. 급한 빨래는 손빨래를 해야 했다. 근처에 빨래방은 있었지만,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빨래를 쌓아둔 채, 세탁기를 누군가가 고쳐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 외출하고 집에 토비아스와 나만 있는 날이었다. 나는 내 방에서 밀린 과제를 하고 있었고, 토비아스는 웬일인지 낮에 깨어있었다. 평소에는 밤에 활동하고 낮에 잠을 자는 친구였다. 뚜렷하게 하는 일 없이 거의 방에서 나오지 않는 그는 집에 무슨 일이 생기기만 하면, 매우 적극적인 모습이었다. 마치 자신이 집주인인 것처럼. 토비아스의 생활이 신기해서 마리온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마리온. 혹시, 토비아스가 이 집주인 아들이야?”


“No”


“그럼 이 집 관리인이야?”


“No”


“그럼 뭐야?”


“우리 전부 토비아스에 대해 잘 몰라. 자기에 대해서 얘기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


“학교도 안 다니고, 직장도 안 다니는 거 같은데. 어디 아픈 거야?”


“부모님이 주는 돈으로 10년째 이 집에서 살고 있다고 들었어. 우리도 토비아스랑 잘 지내보려고 여러 가지 시도를 했었는데. 본인이 별로 원하지 않더라고. 힘든 일이 있었나 봐. 파티하거나 집에 손님들이 많이 올 때면, 토비아스 혼자 사라지고 없어.”


토비아스 방에는 야마하 업라이트 피아노가 있었다. 클래식 음악을 연주하는 것에 취미가 있었던 토비아스에게 내가 피아노를 몇 번 가르쳐준 적이 있다. 가르쳐주면서 내가 느낀 것은 매우 고집이 강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손가락 번호나 페달 밟는 것에 대해 몇 가지 조언을 해줬는데, 잘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궁금했지만, 나의 짧은 독일어 실력 덕분에 깊은 대화는 나누지 못했다.


토비아스는 집에 세탁기가 고장이나 집이 어지러워지고 냄새나는 상황이 싫었는지, 본인이 어떻게든 빨리 해결하려고 했다. 그의 분주함이 내 방까지 들려왔다. 지하에서 2층까지 오르락 내리락을 몇 번을 하는지, 계단에서 나는 삐그덕 대는 소리 때문에 공부에 집중할 수 없어 나는 결국 방에서 나와서 그에게 무슨 일인지 물었다.


“토비, 무슨 일이야?”


“세탁기 고치고 있는데, 잘 안되네.”


“우와, 이런 것도 혼자 고칠 줄 아는 거야?”


“아니, 잘 모르는데. 할 수 있을 것 같아. 너 혹시 세탁기 고칠 줄 알아?”


“No”


고칠 수 있었으면 내가 이렇게 있었겠니. 빨래방도 못 가고 손빨래 쪼물쪼물하는 것도 귀찮아 죽겠는데. 그리고 주저리주저리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다 하지 못했다. 수다 실력은 누구에게도 꿀리지 않는 내가 독일에서 생긴 버릇이 있다. 용건만 간단히 하는 것. 말을 많이 하고 싶어도 독일어가 능숙하지 않으니까 할 수 없는 것이 슬프고도 답답했다. 그래도 희한하게 내 말을 잘 알아듣는 친구들이 고마웠다.


토비아스는 몇 시간 동안 그렇게 지하에서 세탁기를 고치더니, 정말로 고쳐냈다. 그가 해냈다. 나는 박수를 쳐줬다.


“우와. 대단해. 토비아스. 고마워.”


그 날 저녁, 우리 7명은 부엌에 모였다. 토비아스가 다 모여보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 순간부터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얼음이 되어버렸다. 이들이 싸우는 건지, 토론을 하는 건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당황스러운 상황에 뭐라 해야 할지 몰라 가만히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아니, 관찰하고 있었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


토비아스가 말했다.


“내가 오늘 세탁기 고쳤어. 고치는데 시간 4시간 걸렸고, 부품도 교체했어. 그러니까 4시간에 대한 수고비와 수리비용을 너네가 분담해서 나에게 줬으면 좋겠어.”


토마스가 진한 눈썹 사이로 깊게 파인 주름에 각을 잡으며 말했다.


“뭐? 누가 너보고 고치라고 했어? 난 돈 못 내.”


토비아스가 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지는 꿈에도 몰랐다. 이게 이들의 문화인지 토비아스의 생각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나의 정서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보았다. 나였다면, 부품비용이 그리 비싸지 않은 값이었다면, 그냥 내 선에서 해결했을 것이다. 만약 부품비용이 크게 들었다면, 상의했겠지만 이건 너무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빠른 대화 속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마리안이 조심스럽게 얘기했다.


“새 세탁기를 구해보려고, 학교 페이스북 페이지에 세탁기 무료로 구한다고 공고 띄웠는데 오늘 마침 고맙게도 누가 준다고 했어. 내일 내가 가지고 오기로 했어.”


프랑수와는 이 와중에 생뚱맞게 얘기했다.


“그래, 토비아스 고마워. 얼마 주면 될까? 줄게.”


프랑수와 쟨 뭐야. 자유로운 쿨 가이네. 나는 상황을 더 지켜보기로 했다.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친구들의 표정을 둘러보니 프랑수와 말고는 썩 달갑지 않은 표정이었다.


다비드가 말했다.


“토비아스. 우리랑 상의하고 고친 것도 아니잖아. 그리고 제대로 고쳐졌는지 어떻게 증명할 거야? 너한테 돈 주는 건 No.”


마리온과 토마스 다비드가 차례로 다시 한번 말했다.


“No”


“No”


“No”


토비아스가 억울하다는 듯 어깨를 들썩거리며 얘기했다.


“내 소중한 시간을 낭비했어. 4시간이나 이거 고치느라 고생하였다고. 당연히 그 값을 줘야 하는 거 아냐?”


이건 이들의 문화가 아닌 게 확실했다. 토비아스 그 혼자만의 생각이었다. 독특하다고 생각했다. 당당하게 얘기하는 게 신기하게 느껴졌다. 근데 그의 얘기를 계속 듣고 있으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말도 안 되는 진정성이 느껴졌다고나 할까.


이 상황은 토마스가 깔끔하게 정리했다.


“이건 어때. 마리안이 내일 가지고 오는 세탁기.

앞으로 그 세탁기 쓸 사람은 돈 내지 말고. 토비아스가 고친 세탁기 쓸 사람은 돈 내는 거 어때.”


모두가 동의했고, 나는 그렇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토비아스와 어색한 웃음만 주고받았다. 그렇게 우리에게 세탁기가 한 대가 더 생겼고, 우리 모두는 자연스럽게 토비아스가 고친 세탁기도 은근슬쩍 사용하게 되었다. 토비아스에게 왠지 모를 미안함은 나만 느꼈을까. 다른 친구들도 느꼈을까. 그때를 생각하니 괜스레 쓴웃음이 새어 나온다.


토비아스.

그의 생활은 아직도 여전한지.

여전히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건지.

아직도 그 집에 살고 있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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