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홈쉐어 (in 독일)

#여자 둘, 남자 다섯

by 바코

하이델베르크에서 집을 구하기 위해 이곳저곳에 메일을 보내고, 인터뷰를 하고 지낼 곳을 결정했다.
그때 당시 매우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독일에서 대학을 입학하기 전까지는 독일 학생들과 함께 지낼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은데, 독일어가 빨리 늘 수 있을 것 같아 들떠있었다. 이들의 사고방식, 생활방식, 공부하는 방법, 토론하는 방법이 궁금했었는데 가까이서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이들과 지내면서 많은 것들을 듣고 보고 느낄 수 있었다. 제일 많이 들었던 생각은 '사람 사는 거 어디든 다 똑같구나.'이다. 독일의 사회 시스템이나 교육제도, 삶의 방식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부분이 많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속도와 문화의 차이 또한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니 우리는 우리대로 정상적인 방법으로 발전해보길 기대해본다.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생들과 홈쉐어를 하면서 (독일에서는 'WG'라고 한다. -Wohngemeinschaft 주거공동체-) 일어난 에피소드 몇 가지를 말하기에 앞서 지냈던 집 구조를 설명하자면, 우리나라로 치면 주택 같은 형식의 집이었다. 자그마한 정원이 딸려있는 이 집은 2층으로 되어있고, 지하에는 세탁기와 빨래건조대가 있었다. 화장실은 1,2층 각각 하나씩 있었다. 부엌은 1층에 있었고, 부엌에는 오븐과 냉장고 2개가 있었다. 1층에는 3개의 방, 2층에는 4개의 방이 있었는데 내가 지냈던 방은 지붕 바로 밑에 있어 천장이 기울어져 있는 방이었다. 화장실과 바로 붙어있었던 내 방은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춥기로 유명한 방이었으며, 화장실에서 일어나는 별로 안 궁금한 생생한 소리도 매우 잘 들렸다.

나를 포함해서 여학생 2명, 남학생 5명이 함께 지냈다.
나와 함께 지냈던 친구들은 하이델베르크 대학을 다니고 있거나, 졸업을 했거나, 중퇴를 한 친구들이었다.
간단하게 소개하자면 이렇다.

1. 다비드(독일,남) : 본인이 vegan이며, 자신의 가치관과 삶의 방식을 사랑하며 자부심을 느끼며 그것을 주변에 권유하는 친구였다. 자신이 직접 만들어 먹는 음식들과 본인의 생각들을 잘 정리하여 동영상 촬영을 하여 유튜브에 올리기도 했다. 다비드는 공대를 졸업하고, 연구원으로 일하는 직장인이었다. 또한 운동을 매우 좋아했다. 내 기준에서는 중독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틈만 나면 자전거를 타고 걷거나 뛰거나 푸시업을 했다.

*vegan : 엄격한 채식주의자 (고기는 물론 우유, 달걀도 먹지 않음. 어떤 이들은 실크나 가죽같이 동물에게서 원료를 얻는 제품도 사용하지 않음.)

2. 마리안(독일,남) : vegetarian(채식주의자)이었지만, 남에게 권유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공대생이었는데, 음악을 좋아해서 방에 기타가 몇 개나 있었다. 음악 중에도 록음악을 좋아했다. 술과 파티를 즐기고 친구들과 어울려 얘기하고 노는 것을 좋아하는 친구였다. 우리가 지낸 집에서 파티를 한 번씩 열었는데, 마리안의 친구들로 북적북적 댔었다. 각종 공구를 가지고 있어서, 내가 가구를 조립해야 할 때 마리안에게 종종 빌리곤 했다. 덧붙이면 굉장히 잘생긴 친구였다.

3. 토마스(독일,남) : 다비드와 마리안과 달리 육식 마니아라고 칭할 수 있을 정도로 고기를 좋아하는 친구였다. 터프하고 쿨한 성격의 토마스는 화도 잘 냈다. 약간은 다혈질의 소유자였다. 키도 매우 커서 나는 이 친구가 무서웠다. 하지만 친해지고 나니 다정다감한 사람이었다. 토마스는 의대 박사님과 연애를 하고 있었는데, 그 여자 친구가 한 번씩 집에 놀러 올 때면, 방에서 무얼 하는지 하루 종일 방에서 나오질 않았다.

다비드, 마리안, 토마스는 1층에서 지냈던 친구들이다.

4. 프랑수와(프랑스,남) : 프랑수와는 이 집에서 유일한 프랑스인이었다.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영혼만 자유로우면 될 것이지, 말과 행동도 자유로워 그의 방은 늘 지저분했으며 그가 부엌을 쓰고 나면 꼭 문제가 발생했다. 수돗물이 켜져 있다던지, 오븐에 불이 켜져 있다던지. 그가 스쳐 지나간 자리는 늘 시끄럽거나 깨끗하지 않았다. 이 친구는 독일어를 구사하지 못하여,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는 친구였는데, 나는 그 당시 영어를 거의 못했기 때문에 우리의 대화는 거의 수화로 이루어졌었다.

5. 마리온(독일,여) : 마리안과 마리온의 이름이 아직도 헷갈린다. 마리안이 남자, 마리온이 여자. 마리온은 나의 방 옆방에서 지낸 여자 아이이다. 스무 살이라고 하기엔 믿기 힘든 성숙한 내면과 지혜로움을 가지고 있었다. 나의 독일어 실력을 향상하여준 친구이기도 하다. 영어전공을 하는 친구였다. 영국에서 1년간 지낸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유학생의 마음을 잘 이해해주었고, 소중한 추억을 많이 만들어 주기도 했다. 아 참, 마리온도 채식주의자였다.

6. 토비아스(독일,남) : 이 집에서 10년 동안 거주한 친구였다. 대학을 다니다가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학교를 그만두었다고 했다. 그리고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외출도 하지 않았다. 이 집에 있는 친구들이 토비아스를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끔 도와주려고 시도를 수차례 했었다. 하지만, 토비아스는 마음의 문을 끝까지 열지 않았다. 강박증을 가지고 있어 물건들이 늘 가지런하게 제자리에 있어야 마음이 불안하지 않은 것 같았다. 주로 활동시간대는 밤이었다. 낮에는 자고 밤에 활동했다. 토비아스의 강박증 때문에 2층에 있는 친구들이 모두 이사를 가게 되었다. 그것이 내가 이 집에서 나오게 된 이유이기도 했다. 아무튼 그에 대한 소문은 늘 무성했다.

7. 나 (한국,여) : 이 집에 있는 유일한 동양인이자 한국인이다. 무대뽀 정신이 강하다. 쾌활한데 우울해 보이고, 유쾌한데 외로워 보인다. 빠릿빠릿해 보이는데, 허당이다. 한국인인데, 한국인 답지 않은 자유로움이 느껴진다. 맨날 징징대는데 미워할 수 없는 매력의 소유자이다. 매일 아침 일어나 어학원을 가고 저녁시간이 되어 집에 돌아온다. 어학원을 마치고 나면 도서관을 가는지 딴짓거리를 하는지 아무도 모른다. 집에 돌아와 부엌에 혼자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으면 어버버 한 독일어 실력으로 마리온과 신기한 대화를 이어나간다. 심상치 않은 여학생이다.


다음 편에서는 이들과 지내면서 일어난 썰들을 풀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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