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행위의 질보다 값비싼 음향기기와 세련된 영상편집이 우선인가
코로나 19 상황에 접어든 지 벌써 2년째이다. 지금의 생각과 기록들이 좋은 자료가 될 것이라 생각하여 이렇게 노트북 앞에 앉았다. 우리 공간에서는 나의 주변에 있는 친구들과의 교류와 예술의 행위들이 끊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시도들을 해왔다. 기억에 남는 시도 중 한 가지를 뽑자면 오프라인으로 진행되던 공연을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하여 진행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요즘은 직접 대면하여 진행되어야 할 지원사업이나 공모의 진행 과정들이 온라인 인터뷰 또는 영상 제출로 대체되는 경우가 많다. 일련의 과정들을 겪으면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괴리감과 내가 스스로 정하고 있었던 예술과 그 행위에 대한 의미가 무엇인가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었다.
줄어든 관객, 사라진 포스터
공연을 기획하고 진행함에 있어 홍보할 수 있는 포스터와 팸플릿을 제작한다. 예전에는 포스터를 인쇄하여 이웃 상인들에게 웃음을 주고받으며, 포스터를 부착해줄 수 있냐며 물으며 안부도 함께 주고받았다. 요즘은 타인이 자신의 공간으로 오는 것이 부담스러울뿐더러, 우리와 마찬가지로 이웃 상인들의 손님들도 현저히 줄었기 때문에 포스터 홍보의 효과가 줄어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SNS용 홍보물을 제작한다. 많은 사람들이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더 많이 늘었고, 특히 젊은 층을 상대하려면 SNS 홍보물은 필수다. 하지만 공연을 준비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또 하나의 흥미로운 행위가 하나 줄어든 것이나 다름없다. 인쇄기에서 갓 태어난 따끈따끈한 포스터와 팸플릿을 바라보며 그동안 함께 작업한 디자이너에게도 인쇄소 사장님에게도 수고하셨다고 하며 인사를 건네받는 것, 손으로 직접 홍보물을 만지작 거리며 수고스럽게 여기저기 부착하는 것, 그 일련의 과정들이 공연을 만들어 가는 정성이다. 지나가던 행인들도 가던 길을 멈추고 포스터에 찍힌 활자들을 보고, 시시덕거리며 사진을 찍고, 서로 감성을 주고받는다. 이런 기운들이 모여 관객들이 공연장에 앉아 공연을 관람할 때 더욱더 흥미롭게 공연을 감상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이러한 관객들마저도 수가 현저히 줄었다. 관객의 수가 줄어든 것은 불가피한 상황 속에서 수동적으로 수가 줄어든 것이다.
공연의 성공 여부 = 관객의 수?
지금 같은 상황에서 관객의 수는 공연을 기획하는 단체에서 결정할 수가 없다. 미리 계획해 놓아도 당일에 확진자가 많이 발생하게 되면, 무관중으로 공연을 강행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최악의 경우는 공연을 취소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공연이 있을 때마다 지역주민들에게 문의가 온다. 생각보다 공연을 직접 관람하고 싶어 하는 지역주민의 수요도가 높다. 하지만 나라에서 정해준 거리두기 지침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없다. 공연의 수와 관객이 줄었다고 해서, 공연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늘 현장의 최전선에 있는 내가 겪은 바로는 대중들은 늘 볼거리, 즐길거리를 찾고 있다. 전염병 상황이 진행될수록 사람들은 직접 공연을 더 보고 싶어 한다. 아이들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스마트기기에 눈을 들이대고 있는 것에 지쳐있다. 모든 것을 온라인으로 대체하기에는 피로도가 높다. 다만, 모두의 건강감을 위해 참고 있는 것이다. :(
예술행위의 질보다 값비싼 음향기기와 세련된 영상편집이 우선인가
나 또한 피아니스트로 활동하며 음악을 연주하면서 촬영을 하고 편집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코로나 상황 이전에도 자신의 예술행위들을 SNS를 통해 업로드하고 그것과 관련하여 대중들과 소통하는 것은 일찌감치 유행이었다. 하지만 공연을 온라인으로만 진행하는 일들은 TV에 나오는 연예인들의 이야기였지, 드문 일이었다. 공연을 준비하는 예술가들은 공연을 준비하면서 많은 준비를 한다. 관객들과 어떤 방식으로 소통하고, 현장에서 어떤 퍼포먼스와 기량들을 펼칠 것인가에 대한 끝없는 고민을 한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런 타이밍에서는 관객에게 이런 질문을 해야지', '만약에 실수를 할 경우 어떻게 센스 있게 대처를 할 것인가', '내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들을 어떤 기운으로 전달할까' 등등의 준비를 했었다. 요즘은 완전히 다른 고민을 한다. 무관중 온라인 실시간 방송, 오디션을 대체한 각종 영상 촬영을 진행하면서, 예술행위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달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답은 아직 찾지 못했다. 현장에서 직접 바라보면 틀림없이 감동과 위로를 줄 수 있는 공연이 온라인 송출될 때 어떻게 변질되는가? 에 대한 물음에 주변에 많은 사례들을 지켜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우리가 이때까지 해오던 순수예술 장르의 공연에 대한 이해는 직접 공기 중에 느낄 수 있는 기운과 예술가가 뿜어내는 에너지가 주를 이뤄왔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상황은 아닌 것 같다. '누가 더 좋은 음향기기를 쓰느냐.', '누가 더 좋은 기술로 현장감 있게 방송 송출을 하느냐.', '얼마다 더 세련되게 영상편집을 하느냐.' 온라인 공연을 준비하면서 이런 추가된 고민들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순수 예술의 행위가 복합 예술의 행위가 되어 버린 것이다. 아직까지 이런 상황에 적응이 안된 우리는 종종 공모전이나 오디션 주최 측에서 적어놓은 문구를 보게 된다. '영상편집의 기술은 심사에 반영되지 않음'
하지만 온라인 공연을 진행할 때는 대중들이 심사위원이다. 아무래도 음질이 좋고, 보기에 편한 방송을 선호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공연 예술인들은 카메라를 의식한 퍼포먼스와 예술행위들을 준비하고, 화면에 담길 나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연습해야 하는가? 또한 앞으로의 공연기획자들은 영상 촬영과 편집 그리고 라이브 방송 송출까지 다룰 수 있어야 기획자로서의 역량을 갖출 수 있는 것일까? 눈에 보이는 관객과 보이지 않는 관객을 모두 충족시킬 수 있는 공연을 만들어내기가 쉽지 않은 상황에 우리는 놓여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