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것에 비롯된 지극히 개인적인 깨달음
(2013-2014 독일에서)
“제 연주를 한 번 들어줄 수 있을까요?”
독일 음대 석사과정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수많은 이메일들을 썼다. 입학을 원하는 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교수 정보와 연락처를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약속시간을 정하여 그 교수를 찾아가 시험 전에 미리 나의 연주를 선보였다. 당시 독일어가 능숙하지는 않았지만, 무엇이라도 부딪혀보는 것이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많은 학생들이 이러한 방식으로 독일 음대 입시를 준비하지만, 교수와 미리 접촉하여 연주를 선보이고 면담을 하는 그것이 합격을 보장한다고 단정 지어 말하기 어렵다. 그 이유는 오디션 당일에 기량이 더 뛰어난 학생이 나타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독일 이곳저곳을 기차를 타고 다니며 오디션을 치르고 다니는 것은 많은 체력과 정신력을 필요로 했다. ‘여행’에 가까운 일이었다. 오디션‘여행’을 통해 독일의 문화와 교육시스템을 체험하면서 나 스스로에 대한 문제부터 시작하여 우리나라 음악계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시작하게 되었다.
독일의 음대 입시 실기고사장을 가면, 여기가 한국인지 독일인지 헷갈릴 정도로 한국 유학생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입시 시즌에 오디션‘여행’을 다니다 보면 같은 처지의 한국 유학생들을 기차에서 또는 호스텔에서 마주치는 일이 많았다. 기차의 연착 소식에 옆에서 한숨을 푹푹 쉬고 있는 왠지 모를 친근감이 느껴지는 한국인에게 나는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혹시 내일 바이마르 음대 시험 치러 가시는 거예요?”
“네. 독일에는 언제 오셨어요?”
“온 지 몇 달 안됐어요.”
“시험은 처음이시겠네요. 저는 독일에 온 지 2년째고 시험은 이번이 세 번짼데 이번에 합격하지 못하면 비자 문제로 한국에 돌아가야 해요.”
“요즘은 한국 학생들 많이 안 뽑는 추세라던데, 정말인가요?”
“네. 맞아요. 한국 학생들의 똑같은 연주 스타일. 별로 안 좋아한대요. 제가 배우고 있는 독일 교수님은 한국에는 음대가 없냐고 물어보세요. 한국 사람이 워낙 많이 지원을 하니까요... 그리고 요즘 한국인들이 독일까지 와서 교수들한테 돈 쥐어주고 하는 것들이 점점 퍼지고 있어서.. 음.. 아무튼 분위기가 좀 그래요.. ”
“헉. 정말요? 여기까지 와서..”
내가 독일로 떠나고 싶었던 이유들 중 하나는 ‘나’로 살아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시험 전에 여러 교수들을 만나고 필요할 때에 레슨을 받아 보았지만, 나의 배경에 대해서 물어보는 교수는 없었다. 그들은 나와의 인격적인 소통, 그리고 음악이 우선이었다. 사적인 것은 묻지 않고 해야 할 일에만 집중하는 그들에게 서운한 감정이 들기도 했다.
사사로운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타인의 삶에 간섭이나 강요하지 않는 ‘개인주의’는 ‘나’의 가치가 존중받는 느낌은 들었지만, 매사에 두 번은 묻지 않는 냉랭함은 유학생활을 외롭게 했다. 굳이 서로가 세세하게 챙기지 않아도 개인의 의식주를 해결하는 것에 어려움이 없는 환경에서 만들어진 문화였다. 그들의 안정되고 여유로운 삶이 부럽기는 하지만 역사의 속도와 문화의 차이라고 생각하기에 한국과 비교하여 맹목적으로 그들의 사고방식이 무조건 옳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외국을 나가면 애국자가 된다는 말이 무엇인지 이해가 되었다.
나 역시도 그러했다.
‘우리나라도 이랬으면.’이라는 생각과 ‘우리나라는 이러지 말았으면.’하는 생각이 공존했다.
독일 음대의 권위 있는 교수에게 레슨을 수년간 받으며 친분을 유지한다고 해도 합격이 보장되는 것이 아니었다. 한국에서는 학연 지연을 통해 조금 실수해도 인정에 호소할 수 있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마음으로 통하기에 어느 정도면 눈 감고 넘어가는 일들이 많았는데, 자신들의 입장을 콕콕 집어 말하는 것에 상처받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나뿐만이 아니었다.
독일의 ‘원칙주의’ ‘개인주의’ ‘직설적인 화법’으로부터 느껴지는 괴리감은 한국 유학생들이 모이면 빠지지 않는 대화의 주제였다. 어딘가에 소속되어 ‘나’보다는 ‘우리’로 살아왔던 것이 더 익숙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정’이라는 단어. 독일에서 지낸 시간 동안 참 그리운 단어였다.
하지만 ‘누구의 자녀, 어딘가의 소속, 누구의 제자’보다는 단지 ‘나’라는 존재가 더 중요하며, ‘누구의 라인이냐’라는 것이 시험 합격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독일 사회의 공정성은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독일 음대 입시에 커튼이 필요 없는 이유이지 않을까.
‘합격’
‘1등’
‘우수한 성적’
‘장학생’
학습에 의한 것인지 사회 분위기에 의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 단어들을 좋아했다. 원하는 것들이기도 했고, 부유하지 않았기에 내 삶에 필요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그것들에서 자유로워지기 시작한 건 아이러니하게도 오디션 ‘여행’을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면서이다. 꼭 눈 부시는 삶을 살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예측할 수 없는 유학생활이기 때문에 좀 더 하루하루에 집중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점점 소소한 것에 만족감을 느끼기 시작했고, 내가 가진 것들에 감사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