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 준비기간은 1년 정도였다.
1년 동안 독일 유학 관련 인터넷 카페, 사이트를 검색하고 독일어 공부를 했다. 지낼 방은 한국에서 미리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서 구했다. 독일어가 능숙한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우선은 한인민박에 묵으면서 거주지를 다시 구하는 방법을 택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굳이 한인민박에 있을 필요 없이 바로 방을 구할 수 도 있었는데, 모든 것이 미숙할 때인지라 가장 위험하지 않으면서 편한 방법을 택했다. 수많은 도시가 있지만 베를린으로 첫 주거지를 정한 이유는 생활이 편리하고 위기상황에 닥쳤을 때 빠른 해결이 가능하며 여러 가지 기회가 많은 도시이기 때문이다. 독일은 한국에 비해 정말로 모든 것이 느렸다. 하지만 베를린은 독일에서 외국인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이기 때문에 은행이나 통신사의 업무처리 속도가 빠르며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도 꽤 많아서 생활도 편리하다. 단점이 있다면 볼거리와 놀 거리가 너무 많아서 정해진 학업에 집중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추천해주고 싶지 않은 도시이다. 베를린 공항에 도착했을 때, 독일인 할아버지가 나에게 길을 물으셨다. 독일 땅을 처음 밟는 동양 여자에게 길을 보다니, 너무 당황스러웠다. 어쭙잖은 독일어 실력으로 독일 처음 와서 잘 모른다고 대답하니 웃으면서 지나가셨다. 내가 방을 예약해놓은 한인민박집까지 가려면 택시를 타야 했다. 공항에서 택시를 잡으려고 주위를 둘러보니 택시, 버스가 죄다 벤츠였다.
‘내가 독일에 왔긴 왔구나.’
어리바리하게 서있으니 공항 안내원인지 경찰인지 구분이 안 가는 유니폼을 입은 남자가 날 택시 쪽으로 안내해주었다. 중국 베이징 공항에서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식겁한 기억이 났다. 하지만 한국에서 독일어 공부를 꽤 하고 왔던 나는 독일어로 어느 정도 (초보적인 수준이었지만) 소통이 가능한 상태였기 때문에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택시를 타고 한인민박에 도착했다. 민박집주인 언니가 나를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안전한 곳까지 무사히 도착하니 마음이 안심이 되면서 마음이 들뜨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사람들, 자동차, 신호등, 슈퍼, 횡단보도, 건물, 간판. 모든 것이 신기했다. 앞으로 일어날 일들과 내가 해낼 일들을 생각하니 잠이 오지 않았다. 시차 적응 탓도 있었겠지만 꿈을 꾸는 것 같았다.
베를린에 도착한 지 한 시간도 되지 않아 친구가 생겼다. 한인민박집에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한국 유학생이 한 명 더 있었다. 나보다 한 살 어린 여학생이었다. Y는 독일에 온 지 일주일 정도 되었는데, 외로웠다고 하며 처음 보는 나를 매우 반겨주었다. 우리는 다음날 해가 뜨는 대로 베를린 구경을 떠나기로 약속했고, 밤이 새도록 각자의 사연을 나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