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남
2013년 3월 1일.
부산에서 야간 버스를 타고 인천공항을 가기 전, 꽤 많은 짐을 가지고 있었다. 부모님이 그 짐들을 낑낑대며 버스에 함께 실어주셨다. 눈물 많은 우리 엄마는 나를 전쟁터로 보내는 양 서럽게 우셨다. 기분이 묘했다. 꿈을 향해 가는 길이었지만, 나만 이런 기회를 가지고 떠나고 한국에서 고생할 나머지 가족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조금 이기적이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잘 돼서 돌아오겠다는 각오를 했다. 인천공항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많은 생각을 했다.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생각들을 비롯해 베이징 공항에서 환승하는 순서를 외우기도 하며 두려움 반 설렘 반 공항으로 향했다. 인천 국제공항에 도착해서 의자에 앉아 한숨 돌리고 있으니 이모와 친구들이 배웅해 주러 왔다. 커피와 조각 케이크를 먹으며 실감이 나지 않는다는 둥 드디어 떠난다는 둥 깔깔대며 수다를 떨었다. 이모는 엄마가 바빠서 챙겨주시지 못한 세심한 부분까지 걱정해주고 챙겨주셨다. 인사를 나누고 나는 완전히 혼자가 되었다는 생각에 긴장이 되었다. 이제부터는 핸드폰으로 연락해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으며 혼자 부딪히고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비행기는 중국으로 향했다.
베이징 공항에 내리고 나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공항은 너무 컸으며, 그 당시 나의 영어실력이 정말 형편없었다. 다행히도 주변에 한국 사람들이 있었다. 게다가 운 좋게 독일 베를린 공항으로 가는 한국 여행객들이 있었다. 베이징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또 다른 공항으로 가야 했다. 중국어, 영어 어느 하나도 구사하지 못하는 비행기 티켓 하나만 가지고 있는 나에게 첫 어려움이 닥쳤다.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한국 일행들을 잃어버린 것이다.
‘오 마이 갓. 나 무사히 갈 수 있을까? 국제 미아가 되는 건 아닐까?’
그렇게 한국인 일행들을 놓치고 나니, 머릿속이 하얘졌다. 넓디넓은 베이징 공항에서 주변을 돌아보면 볼수록 나에게 돌아오는 건 가중되는 불안감이었다. 나의 유일한 희망 줄이었던 티켓을 놓치지 않으려 악착같이 손에 들고 이 사람 저 사람 붙잡고 물어보기 시작했다. 중국인들의 영어 발음도 익숙하지 않았으며, 발음이 좋다 한들 나의 영어 실력이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에 의사소통이 되지 않았다. 한 안내원이 2층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기서 줄 서서 내 차례가 돌아오면 해결해줄 것이라고 했다. 아니,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2층으로 올라가서 끝이 없는 줄에 무작정 줄을 섰다. 시간은 자꾸 흘렀다. 2시간 내로 환승 장소로 이동해야 하는데,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30분 동안 기다리고 나서 내 차례가 되어 안내원에게 물어보니 여기가 아니라고 했다.
‘도대체 뭐가 아니라는 거지?’
설명을 해주는데도 못 알아들었다. 이해 못했다는 표정을 지으니 손가락을 아래로 가리키며 내려가서 밖으로 나가란다. 1층으로 내려가서 밖으로 나가보니 버스들이 서있었다.
‘아! 버스를 타고 어디로 이동해야 하는 건가?’
줄지어 서있는 버스들 앞에는 작은 매표소가 있었다. 표를 사려고 하니, 한화와 유로밖에 없었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환전을 하기 위해서 환전소를 찾기 시작했다.
‘환전소는 또 어디 있단 말이냐.’
산 넘어 산이었다. 한국에서는 뭐든지 척척 잘 해냈었던 내가 한없이 작아지는 기분이었다. 창피하고 조급한 마음에 자신감이 없어졌다. 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울고 싶었지만, 그런다고 해결될 것이 없었다. 나는 깊은 한 숨을 내쉬었다. 다행히도 안내표지판을 보고 환전소를 찾을 수 있었다. 매표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환전소에 있는 안내원들이 환전을 해주면서 깔깔대며 웃었다. 어리바리해 보이는 나를 보고 비웃는 것 같았지만, 빨리 이동을 해야 했기 때문에 창피함은 잠시 잊기로 했다. 환전을 하고 나서 매표소로 갔다. 매표소 안내원은 내가 타려는 버스는 표가 필요 없다고 했다. 환승용 버스는 표가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환전을 하겠다고 진땀을 뺀 것이다. 그때 환전했던 위안화는 그 후 2년이 넘도록 내 지갑 속에 처박혀 있었다. 돌이켜보면 웃음이 피식 나는 일화이지만, 당시에는 국제적 미아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등에서 땀이 줄줄 났었다.
세상의 모든 일들이 당시에는 죽을 것 같이 힘들거나, 세상을 다 얻은 듯 기쁠 때도 있지만 시간이 흘러 지나고 나면 그저 한 문장의 추억 거리가 된다. 한국에서는 쉬웠던 것들이 한국 땅을 떠나는 순간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쉽지 않았다.
버스를 타고 20분 정도를 달려 도착하니, 베를린 공항으로 가는 승객들이 줄지어 서있었다. 놓쳤던 한국 일행들도 발견했다. 그제야 안심을 했다. 이제부터 긴 시간 동안 독일까지 가야 한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비행기는 출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