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
여행이 늘 낭만적인 것은 아니다.
바위를 총총 디디며 바다 색깔을 감상하는데 집중하지 못하고 바퀴벌레를 피하느라 끔찍한 시간을 보낼 때도 있다.
사실은 그들에게 내가 더 무서운 존재일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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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톡'
'까톡'
'까톡'
'까톡'
어느 날 갑자기 중학교 때 이후로 소식이 끊긴 중학교 때 친구들이 제주도 여행을 가자는 단톡 방을 만들었다.
여행 계획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고, 전국에 흩어져 있는 우리는 제주도에서 13년 만에 모였다.
우리는 1박 2일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꽤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요즘 세상이 남녀 갈등이 심화되고 연애와 결혼이 갈수록 가벼워져서 이별이 쉬워지는 것에 대해서 우리는 각자의 생각을 나누었다. 삶의 패턴이 '함께'보다는 '혼자'가 되어가면서 우리는 점점 외로워지고 있다. 이렇게 남녀가 편 가르고 싸울 바에는 그냥 남자를 사귀지 않는 게 속편 하고, 여자 친구들과 노는 것이 더 낫지 않겠느냐고 입을 모아 얘기했다.
그러면서 동성애에 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우리 모두 그것에 대해 별 거부반응이 없었다.
얼마 전 '캐럴'이라는 영화를 봤다. 젊은 여주인공이 백화점 종업원으로 일하던 중, 나이 든 여성과 사랑에 빠지는 내용이었다.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사랑이라는 표현보다는 좀 뭔가가 다른 느낌이었다.
성적인 끌림보다는 인격체를 가진 한 사람으로 감성, 느낌, 생각 등이 통한다는 느낌
인간 대 인간의 끌림. (영화 '뷰티 인사이드'를 보면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자기가 사랑하고 싶은 사람을 사랑하겠다는데 타인이 비판할 권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단,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이런 얘기들을 친구들과 나누면서 "그래도 나는 여자보다 남자가 좋아."라고 했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삼천포로 빠져서 19금 얘기를 나누다가 누가 우리의 대화를 들었을지도 모른다며, 주변 눈치를 살피기도 했다.
주상절리 : 화산에서 분출한 용암이 지표면에 흘러내리면서 식게 되는데 이때 식는 과정에서 규칙적인 균열이 생겨 형성된 것 (출처:네이버 두산백과)
주상절리를 보면서 고등학교 때 추억이 떠올랐다. 수학여행으로 제주도를 갔었다. 그땐 여행을 가놓고 선 왜 버스에서 꼼짝하기 싫고 구경하는 것이 귀찮았고, 매번 찍는 단체사진이 번거롭게 느껴졌을까.
아이러니하다.
해줄 땐 누리지 못하고, 굳이 지금 와서 하겠다고 단체를 만들고 단체사진을 찍고 여행을 떠난다.
이 여행은 독채펜션인 '라라 하우스'에서 완성되었다. 아마 이 펜션을 알아보고 예약을 했던 친구가 아니었으면 이 여행이 흐지부지 되었을 것이다. 내가 본 사람 중 최고의 추진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우리는 이 곳에서 오랫동안 보지 못해서 나누지 못했던 얘기들을 쏟아냈다.
중학교 때 늘 붙어 다녔던 우리.
그때 그 시절을 떠올리면서 한 바탕 웃고, 한 바탕 울었다. 우리의 흑역사라고 그만 얘기하자고 하면서도 어딘가에 홀린 듯 헤어지는 순간까지 학창 시절 얘기를 했다.
그중에 한 사연만 얘기하자면, 우리는 원래 다섯이 아니라 여섯이었다.
그 한 명에 대한 험담이 시작되었다. 어쩌다가 그 친구가 멀어지게 된 것인지 뚜렷하게 기억하는 사람이 없었지만, 추억을 더듬어 보니 그 친구가 너무 얌체같이 이간질하고 여우 같은 행동을 해서 싸운 것 같다는 어렴풋한 추억으로 묻어두기로 했다.
"걔는 지금 무얼 할까. SNS 보니 하는 짓은 여전한 것 같다." 하면서 얘기를 마무리 지었는데, 그 뒤로 그 친구 얘기를 계속했던 걸 보니, 우리는 서로 많이 친했던 것은 확실했다.
곧이어 우리는 서로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 입장에서 가족 얘기를 터놓고 할 수 있는 건, 상대방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되거나 좋은 친구라고 생각될 때이다.
내가 우리 가족을 욕할지언정
남이 함부로 얘기하는 것은 싫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나름의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래도 지금은 마음을 잘 추스르고 각자의 삶에서 노력하고 잘 살고 있는 모습에 서로를 토닥여줬다. 오늘 오지 못한 친구가 아쉬워할 것이니, 다음번에는 그 친구를 위해 서울에서 모이자는 다짐을 했다.
하루의 짧은 밤이었지만, 우리만의 공간이었던 독채펜션에서 수영장 물에 발을 담그고 나누었던 얘기들.
맥주 한 잔에 함께 나누었던 지난 추억들.
쉽게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어렸을 때 우리는 자신의 성향이나 상대방의 취향을 계산하거나 나와 잘 맞을 것 같아서 친구를 사귄 게 아니었을 텐데 생각보다 서로 많이 닮아있었고, 대화가 잘 통하는 것을 느꼈다.
이런 거 보면 정말 만나야 될 인연은 정해져 있는 건가.
우리는 운명인가.
감성 충만해져서 손발이 오그리쪼그리되는 운명론을 논하기도 했다.
하루가 고단했는지 나는 잠이 빨리 들었다.
대신 아침에는 눈이 빨리 떠진 나는 서둘러 샤워를 하고 펜션 주변을 혼자 걸었다.
펜션 근처에 있었던 해수욕장 이름은 금능이었는데, 조용한 곳이었다. (붐비는 곳은 다른 방향이었을 것이다.)
사실 혼자 고독해지려고 (분위기 잡으려고) 나섰는데, 태양이 엄청 뜨거웠다. 한적한 해변가에는 내가 알 수 없는 벌레들이 땅바닥에 진을 치고 있어서, 내가 한 걸음 한 걸음 움직일 때마다 벌레들은 쫙쫙 사방으로 퍼졌다.
나는 바다는 참 좋아하는데, 벌레를 지독히도 싫어한다.
벌레는 어딜 가나 나의 낭만을 깨는 존재다.
어찌 보면 몽롱함 속에서 현실을 인식하게 되는 현실성이 투과된 존재일지도.
제주도 여행에 대해서 글을 쓰고 있는데, 어찌하다 보니 벌레로 시작해서 벌레로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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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현실과 이상에서 허우적대며,
소주 한 잔을 기울이며 뭐가 어떻니 저떻니 이렇게 해야 한다니 말아야 한다니 누가 어쩐다니 저쩐다니
탁상공론을 주저 없이 펼치지만
결국 어느 곳에 서 있을 것인가는 자신이 선택해야 하는 개인의 몫.
각자의 선택에 의해 살아가는 인생이고 그것이 존중되는 사회지만, 때론 서로의 말에 귀 기울이며 상대방의 조언을 들을 줄 아는 것이 나를 좀 더 나은 나로 성장시켜주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은 또 하나의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