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보통의삶

독일과 한국에서의 보통의 삶

#보통의 것

by 바코


iPhone_4S3045.JPG?type=w1 베를린 (포츠다머 플라츠) by 바코

베를린에서 내가 묵었던 숙소에 일본인 투숙객 N이 새로 왔다. N은 내와 같은 또래인 일본에서 밴드 활동을 하는 친구였다. N은 베를린에 실용음악이 발달해있다고 하며, 독일어도 배울 겸 한 달 정도 베를린으로 여행을 온 친구였다.


iPhone_4S3773.JPG?type=w1 베를린 by 바코


N은 일본의 오키나와라는 섬에서 왔다고 했다. 이 친구와는 의사소통이 잘 되는 편은 아니었다. 나는 독일어로 말하고 N은 영어로 말하고, 온갖 몸동작을 동원하여 영어, 독일어가 마구 섞여서 용케 대화는 가능했다.

덕분에 별거 아닌 소소한 대화에도 웃겨서 빵빵 터지곤 했었다.


이 친구를 떠올릴 때면, 베를린에서 알게 된 트롬본 연주자 일본인 마사루와의 추억도 떠오른다.


마사루도 일본 오키나와에서 온 친구였다. 마사루를 알게 된 건 베를린 어느 교회에서이다. 독일 사람들하고 어울려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컸던 지라, 그런 기회를 쉽게 접할 수 있는 독일 현지 교회를 찾아 나섰었다.


기회가 된다면 교회에서 음악활동도 함께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독일에서의 기독교 문화도 궁금하기도 했었다.


숙소 근처에 있는 교회를 가서 예배를 드리는데, 독일어가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아서 예배를 드리는 내내 지루해서 사람 구경만 실컷 했다. 분위기는 기본적인 예의는 지키되 대체적으로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내가 한국사람이라서 또는 이 교회를 처음 오는 사람이라고 해서 유난스럽게 반겨주거나 말을 걸어주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모임에 참석하라는 지시도 없었다.


그런 것들이 나에게는 편안하게 와 닿았다. 예배가 끝난 후에는 책자들과 광고지들을 잔뜩 챙겨서 돌아왔다.


'악기 연주자 모집 - 어린이들과 함께 하는 연주'


라는 광고지를 발견하게 되었다. 흥미로운 마음에 더듬더듬 메일을 쓰기 시작했다.


"안녕, 나는 한국인이야.
피아노 연주자이며 독일에 음악공부를 하러 왔어.
나도 함께 공연에 참여할 수 있을까?"


메일을 보낸 지 5분도 채 되지 않아 바로 답장이 왔다. 반갑다고 당연히 함께 음악 연주를 할 수 있다면 좋다고 말이다.


그의 이름이 바로 마사루.


그는 베를린 음대에서 트럼본을 전공한 일본인이었으며, 교회뿐만 아니라 어린이들과 함께 음악활동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인연이 닿아 나는 교회에서 어린이들과 함께 연주회도 하고 개인 연주도 하게 되었다.


그가 소속한 오케스트라 공연도 초대받아 무료로 보기도 하였다.


그와의 음악활동은 독일어와 영어 실력이 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여러 가지로 고마운 친구였다.


N에게 마사루 얘기를 해줬더니, 오키나와는 일본에서도 작은 섬인데 베를린에도 그 지역 출신이 있다는 것에 매우 반가워했다. 그리고는 만나보고 싶다고 했다. 마사루에게도 N얘기를 해주었더니, 역시나 반가워했다.


그렇게 마사루는 맛있는 요리를 해주겠다고 하며, N과 나를 자신의 집에 초대했다.


독일은 집으로 초대하여 지인들과 식사를 하는 문화가 발달되어 있다. 마사루의 집에 가니 일본인 음악가들과 독일 음악가들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마사루는 꽤 요리를 잘하는 사람이었다. 덩치는 산만했지만, 섬세한 손놀림으로 우리에게 파스타와 피자를 직접 만들어 주었다.


베를린에서 이루어지는 공연들에 대한 소식을 서로 전하기도 하고, N은 자신의 기타를 연주하며 일본의 가요를 소개해주기도 했다.


일본 친구들을 만나게 되면서, 나는 그들이 매우 신사적인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국 사람들과 비슷한 점도 많지만 그들은 어떠한 선을 지키는 것을 상대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했다. 때때로는 그들의 속을 다 알 수 없어 답답하기도 했다. 하지만 항상 웃는 얼굴로 대화를 이어나가는 그들의 모습에서 배려와 예의를 중요시하는 것들을 느낄 수 있었다. 감정의 표현이 확실한 독일 사람들과는 많이 달랐다.


내가 만난 사람들과의 대화로 그 나라 사람이 모두 그렇다고 판단할 수는 없겠지만, 대화를 통해 그 사회 분위기나 환경을 들어보니 그들의 말투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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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국에서 소소한 만남들의 기쁨을 느끼지 못하고 살았었다. 독일을 떠나기 전 나의 생활은 항상 무언가에 쫓겨서 살았다. 과제와 실기시험을 준비하며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주변의 친구들과의 관계에 소홀했다. N과 마사루를 비롯한 독일 현지 음악가들과 일본 음악가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행복이란 것은 특별한 것에 오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맛있는 음식들과 기분 좋은 사람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들로부터 웃을 수 있는 시간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한국에서 소소함의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 가능하지 않았던 사람이다.

독일에서의 생활들로 지금은 나는 많이 변했다.


나는 왜 한국에서는 그것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보통의 것들에 집중해서 사는 것이 왜 그렇게도 어려웠을까.


독일에서 거의 2년, 한국에 돌아와 2년을 지내면서 나는 스스로 많이 갇혀있는 사람이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조금만 달리 생각했다면, 충분히 한국에서도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 것이다.


인생에서 사람마다 중요한 계기가 되는 사건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나에게는 독일에서의 생활이었다. 이 글을 쓰면서 많은 것들을 느꼈다. 독일을 다녀오면 한국에서 소외계층 어린이들을 도우며 음악활동을 하며 그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겠다는 생각도 돌이켜보면 성급한 생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도 나는 불안정한 사람이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란 걸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나의 꿈들을 포기하겠다는 얘기가 아니다.


조금 천천히 가려한다.


나는 아직도 사회 시스템을 많이 탓하는 사람이지만,
나라는 개인이 극복해야 할 문제도 많은 것을 겸허히 인정하게 되었다.


외국을 간다는 것은 대단한 것을 얻기 위해 떠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찌 보면 가장 보통의 것들을 느끼기 위해 떠나는 것이 아닐까. 타지로 기술적인 것들을 배우러 떠나기도 하지만, 어찌 보면 일상을 배우러 떠나는 길이기도 하다. 나와 다른 사람들로부터 신선함을 느끼고 우리와 다른 문화에서 새로운 자극을 느끼기 위해 떠나는 사람들을 응원하고 싶다.


그리고 앞으로 각본 없이 펼쳐질 나의 보통의 삶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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