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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연 Feb 20. 2021

부자연(不自然)

노린재를 위하여

1.


예전보다 줄었다고는 해도 시골집엔 여전히 벌레가 많습니다. 노린재, 집게벌레, 무당벌레를 비롯해 온갖 벌레가 한집살이를 합니다. 이따금 주말 말고는 내내 빈 집이라 물과 먹이가 부족합니다. 그런데도 그럭저럭 지내는 걸 보면 자체 생태계가 잘 유지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벌레 입장에서는 간혹 나타났다 사라지는 덩치 큰 짐승이 훼방꾼이나 파괴자로 보일게 뻔합니다.


벌레가 돌아다니면 여러 가지로 성가십니다. 방바닥에 꼬물꼬물 기어 다니는 건 여사고, 한 이불 덥고 자겠다는 건지 잠자리로 숨어들어오기도 하고 밥상에서 어슬렁거리며 겸상을 시도하기도 합니다. 전등을 켜면 갑자기 환해진 세상에 놀라 굉음을 내면서 정신없이 날아다닙니다. 그러다 더러는 머리칼이나 옷섶에 불시착합니다. 벌레도 당황스럽겠지만 나 역시 화들짝 놀랍니다. 시간이 흘러도 좀체 적응이 안 됩니다.


밤에 불을 끄면 깜깜합니다. 별빛과 달빛을 제외하면 일체의 빛과 소음이 없습니다. 부드러운 어둠에 고요히 잠기면 몸은 긴장에서 놓여납니다. 폭신하고 좁다란 오솔길을 따라가던 뇌는 언제인지 모르게 잠이 듭니다. 농도 짙은 잠 덕분에 시골에서는 새벽 일찍 눈이 떠집니다. 


노린재는 다리로 몸뚱이를 들었다 부렸다를 반복하지만 몸을 바로잡지 못합니다. 그 때 내는 소리가 탁 탁 탁 쾌나 크게 들립니다.


2.


잠이 방해받을 때가 있습니다. 선잠이 들 즈음, 작은 소리가 들립니다. 콩이나 쌀알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 같습니다. 탁, 탁, 탁 소리가 이어지다가 잠잠해지고, 다시 들리다가 잠잠해지기를 반복합니다. 처음엔 무슨 소리인가 했습니다. 귀틀집을 지탱하는 통나무 이음새에서 나는 소리인가 싶어 무섭기도 합니다. 


불을 켜고 확인합니다. 벽이며 천장을 둘러봐도 딱히 짚이는 게 없습니다. 하긴 지은 지 20년된 집에 갑자기 구조적인 문제가 생길 까닭이 없습니다. 불을 끄고 자리에 눕습니다. 다시 잠을 청해보지만 잠시 후 탁, 탁, 탁 소리가 반복됩니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작은 소리는 간절한 구조 신호 같기도 합니다.


다시 불을 켰을 때 방바닥에 있는 벌레가 눈에 들어옵니다. 노린재 한 마리가 뒤집혀 있습니다. 날아다니거나 천정에 붙어 있다가 운 나쁘게 거꾸로 떨어졌습니다. 몸을 바로 잡아야 하는데 쉽지 않습니다. 비닐장판이 깔린 방바닥은 평평하고 매끄럽습니다. 딱딱한 등껍질을 바닥에 깐 채 가는 다리로 용을 써 보지만 몸뚱이 전체가 미끄러질 뿐입니다. 다리로 버티고 몸통을 들었다 부리는 과정에서 탁, 탁, 탁, 소리가 납니다. 작은 몸집에 비해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큰 편이라 놀랍습니다. 노린재에겐 그만큼 절체절명의 순간입니다. 연거푸 시도하다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기운 차려 장판 지옥으로부터 탈출을 시도합니다. 잠을 방해한 탁, 탁, 탁 소리는 노린재가 내는 절박한 소리였습니다.



3.


빗자루로 쓸어 창밖에 내 던지고 다시 잠자리에 듭니다. 더는 방해받을 일이 없어 쉬 잠이 들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합니다. 창밖에 던져진 노린재는 어떻게 됐을까 궁금해 하다가 쓸데없는 걱정이라며 혼자 웃습니다. 흙바닥에는 뒤집기를 도와줄 온갖 것들이 널려 있습니다. 돌멩이나 나뭇가지 뭐가 됐건 걸리는 대로 몸을 잔뜩 밀어붙인 다음 반대쪽 다리에 힘을 주고 버티면 쉽게 자세를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깜깜해서 확인할 수 없지만, 굳이 확인할 필요도 없습니다. 떨어지자마자 단박에 툴툴 털고 제 갈 길 갔습니다. 


장판이 깔린 방바닥은 맨땅과 다릅니다. 말 그대로 거칠 게 없습니다. 걸리적거리는 게 없다는 건 사람에겐 깔끔한 거지만 벌레에겐 끔찍한 환경입니다. 뒤집힌 뒤에 운 좋게 벽이나 의자, 이불 같은 장애물에 닿으면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하늘 향해 배를 드러낸 채 온 바닥을 헤매다 기진하고 맙니다. 비질을 해 보면 뒤집힌 채 죽어 있는 벌레를 심심찮게 보게 됩니다.


땅바닥과 집 바깥이 자연이라면 방바닥과 집 안은 인공이라는 의미에서 부자연(不自然)입니다. 자연스럽지 못하면 ‘부자연하다’고 합니다. 사전에서는 부자연한 걸 ‘꾸밈이나 거짓이 있어 어색하다’로 풀이합니다. 인간들 사이에선 어색한 정도로 끝나지만, 인간을 제외한 생명들에게는 인간이 만든 부자연이 생과 사를 가르는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노린재는 평평하고 매끄러운 방바닥에서 지옥을 경험합니다. 직선으로 뻗은 고속 국도에서는 매일 밤 수많은 개와 고양이와 고라니가 무지개다리를 건넙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제부턴가 직선보다는 곡선에 눈길이 갑니다, 쭉 뻗은 도로보다 구불구불한 오솔길에서 안정감을 얻습니다. 거침없는 망망대해나 드넓은 평야도 좋지만 얕은 구릉이 이어진 들판을 보며 편안해 합니다. 늘 같은 일상이 반복될 때 보다 작더라도 변화가 생기면 유쾌하고 풍요로워집니다. 자연계에 없는 직선이나 원이 부자연하게 느껴지는 건 어쩌면 당연합니다. 부자연으로 넘쳐나는 도시에서 다친 몸과 지친 마음을 자연에서 위로받았다는 사례는 많습니다. 


편리를 위해 끊임없이 자연을 개량해 왔지만 우리의 언어생활은 자연이 배제된 것이나 자연에서 멀어진 것을 이미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부자연(不自然)’이란 말은 유전자 깊이 새겨진 속마음이 투영된 건지도 모릅니다. 노린재를 위해 방바닥을 자갈이나 흙으로 채울 수는 없습니다. 다만, 내 삶에서 부자연스러움을 조금씩 줄여나간다면 훨씬 더 자연스럽게 다시 말해 ‘꾸밈이나 거짓이 없어 어색하지 않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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