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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연 Mar 07. 2021

덕배

복수초 순정

<fiction>


1. 복수초


마당에 햇살이 가득 내려앉았다. 볕이 닿은 것 모두 반짝반짝 윤이 났다. 묵은 잔디도 생명을 다한 엄나무 삭정이도 이 순간만큼은 황홀했다. 거실 창을 통해 하릴없이 마당을 바라보던 덕배는 말라비틀어진 가지에서 움이 트고, 돌담 밑에 웅크린 두꺼운 목련 잎사귀에 물이 오르는 상상을 했다. 이런 기분이 들 때면 늙은 제 몸뚱이에도 생기가 도는 것 같았다.


한낮 햇살이 비칠 때면 이미 봄이 온 것 같지만 덕배는 더 기다려야 한다는 걸 안다. 음력 정월도 채 지나지 않았다. 멀리 언덕배기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려면 몇 차례 더 추위를 겪어야 한다. 산꼭대기에 덮여 있는 흰 눈은 아직은 남풍을 막아낼 수 있을 만큼 힘이 넉넉했다. 한낮에는 한발 물러섰다가도 밤이 되면 땅속 깊은 곳에서부터 찬 기운을 끌어올려 다시 꽁꽁 얼리곤 했다. 그 냉기가 아침 안개를 따라 산 아래로 내려오면 마음 급한 봄꽃은 몸살을 앓고 잠시 숨을 골라야 한다.


먼 산에서 시선을 거두어 내리던 덕배의 눈이 마당 한 곳에서 멈췄다. 산수유 아래 흙바닥 한가운데였다. 윤기 나는 샛노란 꽃봉오리, 복수초다. 며칠 전부터 올록볼록 흙을 밀어 올리더니 드디어 꽃망울을 터트렸다. 잔에 남아 있던 커피를 후루룩 마시고는 일어섰다. 외투를 걸쳐야 하나 잠시 고민했지만 햇빛을 믿어보기로 했다. 


조심스럽게 마당에 나섰다. 눈이 부셨다. 햇빛을 정면으로 맞서지 않아도 마찬가지였다. 사방에서 반사된 빛은 어디에 시선을 두든 사정없이 망막을 자극했다. 막 정오를 넘긴 때였다. 한낮의 태양은 앞산의 눈을 직각으로 내리누르고 있었다. 그렇게 쏟아 붓고도 남은 온기를 아낌없이 덕배에게 내주었다. 눈부신 만큼 살갗에 닿는 바람과 공기도 따뜻했다. 겉옷을 안 입고 나오길 잘했다.


눈과 몸이 햇빛에 익숙해지기를 기다렸다 천천히 산수유나무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묵은 껍질이 덕지덕지 일어난 채 초라하게 서 있는 산수유는 덕배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푸석한 산수유 수피에 물기가 오르고 꽃이 피려면 보름은 더 있어야 했다. 힐끗 한 번 쳐다보고는 곧장 땅으로 시선을 꽂으며 쪼그려 앉았다. 올해 처음으로 복수초와 대면하는 순간이다. 


사람들은 눈 속에서 핀 복수초를 좋아한다지만 덕배는 아니었다. 작고 여린 꽃망울로 차가운 눈을 뚫고 나오느라 고생했을 것을 생각하면 딱하기만 했다. 오늘같이 맑은 날에는 안쓰러운 마음 없이 화사한 꽃잎과 마주할 수 있었다. 바닥에 깔린 포슬포슬한 흙은 천지사방으로 산란하는 한낮의 빛을 붙잡아 꽃잎을 더욱 도드라지게 만들었다. 그때 바람이 불어왔다. 부드러운 바람은 덕배의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을 훑고 나서 산수유 가지를 가볍게 흔들었다. 얼키설키 드리워져 있던 나뭇가지 그림자가 어른거리자 복수초는 별처럼 빛나기 시작했다. 가슴이 벅찼다. ‘나도 이럴 때가 있었겠지?’라는 생각이 들자 얼굴에 씁쓸한 미소가 나타났다. 그때였다. 집안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울렸다.


“또 청승 떨고 있지? 꽃이 폈으면 폈지, 뭐 한다고 일삼아 들여다보고 앉았데. 다 늙어서 뭔 짓인지 참. 얼른 들어와. 밥 먹게. 국 다 식잖아!”


또 무슨 수가 틀어졌는지 경자는 화가 잔뜩 나 있었다. 대답할 겨를도 없이 혼자서 마구 쏘아 댔다. 덕배는 짐짓 못 들은 척했다. 일일이 대거리를 하면 피곤하기만 했다. 대답 대신 손을 들어 보이고는 일어서는데 순간 어지럼증이 와서 비틀거리고 말았다. “젠장, 또 한 소리 듣겠네.”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잠시 중심이 잡히길 기다렸다가 집으로 들어갔다. 



2. 경자


경자가 처음부터 사나웠던 건 아니다. 3년 전 가을, 버섯 철이 지나고 겨우살이 준비가 막 끝났을 때였다. 김치냉장고가 채워지고 장작더미가 높이 올라가자 덕배는 마음이 푸근해 졌다. 이제 급할 것 없이 그저 기다리기만 하면 되었다. 산에도 다닐 수 없고 농사도 끊긴 겨울 산골은 난롯불을 피우고 마당에 쌓인 눈을 치우는 게 유일한 소일거리였다. 먼 산을 바라보고 정남향으로 지은 집은 커다란 통 창으로 햇빛이 밀려오면 한겨울에도 난방이 필요 없었다. 벽난로에 불을 붙이고 기름보일러를 돌리면 밤에도 훈훈했다. 덕배는 배부르고 등 따신 계절인 겨울이 좋았다. 


경자도 그랬다. 눈이 많이 내려 1주일씩 고립될 때면 더러 갑갑해하긴 했어도 산골 생활에 잘 적응했다. 부엌살림은 윤이 났고 방과 거실에 있는 세간도 정갈했다. 얼마 전에 도시에서 이주한 김선생은 볼 때마다 감탄했다. 집안 살림만 보면 이곳이 깊은 산속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대도시 아파트 사모님도 이정도로 해놓고 살기는 어렵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산에 산다고 모두들 춥고 어설픈 건 아니었다. 덕배와 경자는 세련되지는 않아도 깔끔하게 살았다.


마지막 장작단을 쌓아 올리고 홀가분하게 집안으로 들어서자 경자가 말했다. 

“버섯 판 돈 있지? 그거 좀 줘. 겨울엔 여기서 못살겠어. 너무 추워. 선미네 가 있다가 눈 녹으면 들어올게.” 선미는 덕배를 만나기 전에 경자가 낳은 딸이었다. 살림을 합친 후로 내내 같이 살다가 대학생이 되면서 산골을 떠났다. 


십 몇 년을 같이 살면서 겨울을 춥게 보낸 적은 없었다. 추워서 못살겠다는 건 이유가 될 수 없었다. 게다가 느닷없는 통보라니, 어이가 없어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낌새가 있었으면 마음의 준비라도 했을 텐데 아무 조짐이 없었다. 


막무가내였다. 무슨 말도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화를 내 보기도 하고, 달래 보기도 했지만 소용없었다. 20년 나이 차이가 나는 경자는 막 갱년기를 지나고 있었다. 까닭 없이 화를 내고, 수시로 기분이 변했다. 그 탓인가 하고 며칠 붙잡아 보았지만 닷새째 되는 날 경자는 결국 짐을 쌌다. “안태워 줄 거야? 그럼 걸어서라도 간다. 그런다고 내가 못갈까 봐?” 라며 집을 나섰다. 버스 다니는 곳까지는 반나절을 걸어야 한다. 수중에 돈이 없는 걸 뻔히 아는데, 돈도 필요 없다며 어깃장을 놓았다.


읍내 버스정류장에 데려다 주고 돌아오는 길은 멀게만 느껴졌다. ‘영 안 돌아오는 거 아냐?’ ‘내가 뭘 잘못해서 저러는 거지.’ 안 좋은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돈을 조금만 쥐어 보낸 게 오히려 다행이다 싶었다. 버섯 판 돈이 입금되기 전이라 더 줄 수가 없었다. 돈 떨어지면 들어오겠지 하는데 생각이 미치자 마음이 놓였다. 


혼자 지내는 겨울은 삭막했다. 경자와 같이 살기 전에 이미 오랫동안 혼자 지냈지만 그때와는 달랐다. 바람이 불면 덕배 가슴에는 폭풍이 몰아쳤다. 마당 가득 쌓인 눈도 치우지 않고 겨우내 내버려 두었다. 밤낮으로 마신 술병이 늘어나면서 집안 꼴은 엉망이 되었다. ‘안 올 거야. 이유 없이 떠났다는 건 마음이 멀어졌다는 거잖아. 지금이라도 찾으러 가 볼까? 데리러 가면 따라 올까?’ 경자의 야무진 손끝에 반짝이던 세간살이는 빛을 잃어갔고, 덕배의 머리카락은 점점 더 헝클어졌다. 


유난히 긴 겨울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전화가 왔다. 전화기 너머에서 경자는 차분한 목소리로 읍내로 데리러 오라고 했다. 어떻게 지냈는지 묻지 않았고, 묻는 말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마치 아무 일이 없었던 것 같았다. 터미널에서 마주섰을 때 둘은 묘하게 대조를 이뤘다. 밥을 대신해 겨우내 술을 마신 덕배는 몰라보게 수척해 보였지만 경자는 살이 오른 얼굴이 한결 탱탱해져 있었다. 젊고 밝은 모습이었다.


경자를 태우고 오는 길에 눈이 내렸다. 처음엔 성글게 하나 둘 떨어지더니 금세 굵어지기 시작했다. 제법 쌓이긴 했어도 다행히 집에 무사히 도착했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마치 경자가 들어오길 기다렸다는 듯이 눈은 사나흘 내내 내렸다. 산수유며 생강나무가 꽃봉오리를 한껏 키우다가 다시 눈 속에 갇히고 말았다. 


그래도 봄기운은 물러서지 않았다. 햇빛이 비치기 시작하자 두껍게 쌓인 눈이 녹고 고립이 해제되었다. 며칠 만에 흙이 드러난 마당에는 오늘처럼 복수초가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그 뒤로 경자는 겨울마다 산골을 빠져나갔고 복수초가 필 때 쯤 돌아왔다. 그리고 산골에 다시 돌아오면 한동안 멍한 표정으로 지냈다. 그 즈음부터 짜증과 화가 늘어났다.


3. 인연


중동 건설 붐을 타고 나갔던 사우디에서 돌아 왔을 때 아내는 예전과 같은 사람이 아니었다. 사람 대하는 게 데면데면했고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그러니 부부의 정도 느낄 수 없었다. 덕배가 보내준 돈으로 차렸다는 식당은 파리만 날렸다. 그런데 이상했다. 다른 남자와 동업을 했다는 거였다. 편지에는 그런 말이 없었다. 한사코 부인하더니 추궁이 계속되자 결국 실토했다. 피가 거꾸로 솟구쳤다. 같이 있다가는 자칫 일을 치를 것 같아 무서웠다. 덕배는 그 길로 모든 걸 버려두고 산골로 들어왔다. 둘 사이에 아이가 없었던 게 다행이었다.


밭이고 들이고 가리지 않았다. 지난 일을 잊으려고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그 덕에 형편은 조금씩 나아져 몇 년 되지 않아 땅도 사고 집도 지었다. 맨손으로 들어와 이만큼 일궜으면 잘 살고 있는 것 같은데, 허전했다. 외로웠다. 깊은 산골에서 혼자 사는 건 견디기 힘들었다. 십 년 넘게 지나도 좀체 익숙해지지 않았다. 아랫마을 박씨가 애 딸린 여자를 소개해 준다고 했을 때 덕배는 지쳐있었다. 스무 살이나 되는 나이 차이가 부담스러웠지만, 상대방이 좋다고 하면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경제적으로 쪼들릴 뿐 아니라 아이를 데리고 살 곳이 마땅찮았던 경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린 선미만 같이 살 수 있으면 다른 건 필요 없다고 했다. 맞선을 보고 한 달 후 둘은 살림을 합쳤다. 


경자와 선미가 온 뒤로 살림은 오히려 폈다. 덕배는 산에서 나물과 버섯을 따서 팔고 토종꿀 농사를 지었는데 둘이 함께 움직이고 나서 수입이 곱절 이상으로 늘었다. 산이고 들이고 둘은 붙어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그러니까 선미가 대학을 가느라 산에서 나가고 난 그 해, 아직 봄기운이 완연해지기 전이었다. 덕배는 집을 경자 명의로 바꾸기로 했다. 달리 상속할 자식도 없으니 어차피 죽고 나면 경자가 차지할 집이었다. 미리 넘긴다 해도 달라질 건 없었다. 


경자는 손사래를 쳤다. 처음에는 어디 아프냐며 걱정하더니 왜 죽는다는 말을 입에 올리냐며 화를 냈다. 그러더니 돈 좋아하는 사람이 망령 났다보다고 깔깔 소리 내 웃었다. 하지만 경자는 어려서부터 가난하게 살았다. 제 이름으로 된 재산세 고지서 받아보는 게 소원이라는 걸 덕배는 알았다. 서류 정리가 끝난 날 저녁, 술상을 사이에 두고 경자는 눈물을 흘렸다.


“고마워. 빚 갚아 준 것만도 고마운데 집을 넘겨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어. 선미 대학 보내준 것도 그렇고. 뭐라 할 말이 없다. 내가 더 잘 할게.”


덕배는 빙그레 웃었다. ‘내가 더 고맙다. 니가 없었으면 내가 지금껏 사람 꼴로 살수나 있었겠냐?’라고 생각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튿날 모처럼 함께 산에 갔다. 미끄럽고 위험한 해빙기에는 산에 가길 꺼리는데 주문이 들어와 어쩔 수 없이 길을 나섰다. 말굽이나 잔나비걸상 같은 약용 버섯 찾는 이가 늘어나는 바람에 겨우내 모아 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그날 눈 속에서 복수초를 만났다. 경자는 눈을 떼지 못했다. 쪼그리고 앉아 코를 땅에 처박고 보더니, 아예 퍼질러 앉았다. 처음이라고 했다. 엉덩이가 젖어오도록 그러고 있더니 한참을 더 지나서야 겨우 일어섰다. 눈물이 주르륵 흐르는데, 환하게 웃는 표정이 햇살 속에서 말갛게 빛나고 있었다. 왜 우는지 묻지 않았다. 다음날 덕배는 혼자 그 곳에 다시 다녀왔다. 복수초가 그렇게 마당에 들어왔고, 해마다 노랗게 별이 떴다.


4. 다시 복수초


겨울에 나갔다 들어오기를 반복하면서부터 경자는 더 이상 복수초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미리 정한 것도 없이 꼭 복수초가 필 때 들어오면서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마음이 시렸다. 버림받은 게 복수초가 아니라 자신인 것만 같았다. 경자가 복수초와 눈을 맞추던 자리는 이제는 덕배가 대신했다. 복수초를 보고 있으면 허전해진 마음이 위로 받는 느낌이었다. 복수초도 그럴 거 같았다. 그런 걸 아는지 덕배가 마당 귀퉁이에 쭈그리고 앉아 있을 때마다 경자는 방금 전처럼 화를 냈다.


점심상을 물리고 나자 경자는 얘기 좀 하자며 덕배를 불러 앉혔다.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다시 들어온 지 며칠 되지 않았다. 몇 년째 반복 되면서 으레 그러려니 하는 터라 겨울 출타에 대해서는 달리 할 말이 있을 리 없었다. 심각한 얘기라면 뻔했다.


“이제, 선미한테 가서 살려구. 애 혼자 사는 거 더는 못 보겠어. 집 꼴도 그렇고 먹는 것도 그렇고. 엄마라고 해준 것도 없는데 시집가기 전에 챙겨 주고 싶어. 짐 가지러 온 거야. 당신은 혼자서도 잘 살잖아. 이해해 줄 거지?”


동의를 구하는 말이 아니었다. 선미는 20대 중반이었다. 같이 살다가도 독립할 나이였다. 딴에는 예의를 차려 핑계를 대는 게 고마울 지경이었다. 덕배는 그 때 집 명의를 바꾸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생각했다. 그랬어도 이렇게 말 할 수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경자가 말을 이었다.


“봄 가을에 잠깐씩은 들어올게. 버섯하고 나물, 당신 혼자서는 힘들잖아. 내일 나갈 거야. 나물 철에 다시 봐.”


덕배 귀에는 ‘다시 보자’는 말이 들어오지 않았다. ‘잠깐씩은’이라는 말이 반복해서 울렸기 때문이었다. 경자는 ‘잠깐’이라는 말을 왜 굳이 힘주어 말했을까? ‘이제 떠나면 영영 안 들어올 거야.’라는 말로 이해되었다. 


더는 대답 들을 일도 없다는 듯 경자는 일어섰다. 달라질 건 없었다. 지난 몇 년 간 혼자 사는 건 충분히 연습했다. 아니, 살림을 합치기 전에는 계속 혼자 살았으니까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그런데, 눈물이 났다. 방에서는 서랍장 여닫는 소리가 들렸다. 생각해 보니 엊그제 들어올 때 짐이 다른 때 보다 훨씬 단출했다. 옷가방이 텅 빈 것처럼 가벼웠다. 겨울옷을 안 갖고 들어온 게 분명했다. 지금 덜그럭 거리는 건 나머지 옷을 챙기는 소리였다. 


읍내에 경자를 데려다주고 오는 내내 덕배는 복수초를 생각했다. 계속 두고 보는 게 맞을지, 치워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치운다면 산에 옮겨 심거나 볼 때마다 탐내던 김선생에게 줘버려야 할 판이었다. 그러다가 마음을 고쳐먹기로 했다. 복수초가 마당에서 사라지면, 봄눈이 녹지 않을 것만 같았다. 눈이 녹아야 봄이 오고 봄이 와야 산나물이 자랄 수 있었다. 덕배는 그 날로 복수초를 한 바구니 더 캐 왔다. 그리고는 마당을 둘러 빼곡하게 심었다. 


* ‘복수초’는 이른 봄철 눈이 녹기 전에 눈 속에서 꽃을 피워 주변의 눈을 식물 자체에서 나오는 열기로 녹여버린다.(네이버)

* 복수초의 꽃말은 ‘영원한 행복’과 ‘슬픈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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