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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글그림 Feb 19. 2023

228. 영광의 시대
























































주간 잡지에 연재되던 슬램덩크가 다음 주에 끝난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친구들과 함께 망연자실했던 순간이 기억난다.

 

만화가가 꿈이었던 만화책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는 나의 10대에

같이 만화를 그리던 친구들과 방과 후면 항상 학교 앞 만화 대여점에 모여서

그날의 신간을 챙겨보며 조잘조잘 수다를 떨었다.

방앗간의 참새들처럼 제법 시끄럽게 짹짹거렸을 텐데 그 설익은 아이들을 다 받아주셨던 너그러운 만화방 아주머니 덕에 우리는 팍팍했던 학창 시절 그나마 숨통 틀 수 있는 아지트를 가질 수 있었고,

지금까지도 그 네 평 남짓한 공간에서 웅크리고 앉아 좋아하는 만화책을 보며 키득거렸던 순간이

봄날의 햇살처럼 뽀사시 하게 남아있다.


소녀만화보단 소년만화를 즐겨보았던 나에게 슬램덩크는 드래곤볼과 함께 매주를 기다려지게 만들던

거대한 양대산맥 중에 하나였다. 영원히 계속될 줄 알았던 드래곤볼이 끝나버린 지 1년이 채 되지 않아서 슬램덩크마저 끝난다니 실로 그 허탈감이 제법 크게 다가왔던 것이다.


그렇게 내가 만화가란 꿈을 꾸게 만들었던 사랑에 빠져버린 대상은 만져지는 종이였다.

그 위에 잉크 냄새나는 펜으로 새겨진 그림들이었다.

완벽한 인체 데생은 말할 것도 없고 정교한 옷의 주름들 하며 땀방울 하나하나까지 생생하게 묘사되어 거친 숨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리는 것처럼 모든 것을 살아 숨 쉬게 만드는 천재의 필력에 감탄하며 한 장 한 장 넘어가는 것을 밥공기에 밥이 줄어드는 것만큼이나 아쉬워하며 넘겨보던 만화책이 바로 슬램덩크였다.


TV용으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 슬램덩크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관심이 가질 않았다.

좋아했던 포인트가 너무나 분명했기 때문에 동일한 등장인물과 서사를 가지고 있었도 그 모습이 달라져버린 대상에 대해서는 흥미가 사라져 버린, 누군가는 반쪽짜리 애정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는 그런 형태의 애정을 가진 작품이었다.

그래도 뜨거운 코트를 가르며 너에게 가고 있어 하는 박상민 님의 오프닝 노래는 좋아서 가끔 흥얼흥얼 거리던 정도였는데.


극장판이 개봉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런데 무려 감독이 이노우에 작가님이시란다.

이어서 여기저기 들려오는 호평까지. 분명히 좋아했던 모습을 다 담아내지 못할 애니메이션인데

그래도 이번은 뭔가 좀 다를 것 같아서 호기심이 생겨 예고편을 찾아보게 되었다.

하지만 역시 모션 캡처로 제작된 3D가 자연스러움과 부자연스러움 사이에 묘한 줄타기를 하고 있었다.


사랑에 빠졌던 그 시절 이후 강산도 한 세번즘 변했다.

어쩌다 보니 만화가가 아니라 애니메이션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 되어 쓸데없이 까다로워진 눈을 탓하며

그냥 OTT가 풀리면 집에서 봐야겠다 하고 있었는데

하늘에서 떨어진 선물처럼 우연히 고마운 극장티켓이 생겼다.

없는 시간을 쪼개어 조조로 보고 다녀온 나의 감상평은

단 두 글자면 충분할 것 같다.  



와. (이것은 극장의 함성소리)

와. (이것은 내 마음속 감탄소리)



그건 정말 예상치 못한 만남이었다.

슬램덩크와 함께 자란 사람들은 그때의 추억도 같이 소환되어 가슴 벅찬 울림을 받는다고는 익히 들었지만 나는 그 정도는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다른 더 좋아하는 만화책들도 계속 생겼고 그때의 추억이란 것이 그렇게까지 뭉클하게 다가올까 적잖이 비판적인 마음이었는데.

집에서 작은 모니터를 통해 예고편으로 볼 때는 미처 보이지 않던 그 선들의 정교함이 시야를 가득 채우는 큰 화면 속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잉크냄새가 났다. 따뜻한 햇살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이전과 똑같지는 않아도 충분히 그때의 그 모습 그대로였다.

예뻤다.



연출이 말도 못 하게 훌륭했다.

전반은 그런 감상에 젖어서 이런저런 잡생각들과 함께 보았었는데

후반은 그냥 완전히 처음 보는 새로운 영화인 양 몰입해서 보게 되었다.

우려했던 3D의 어색한 움직임은 전혀 신경도 쓰이지 않을 만큼 쫄깃하게 진행되었고,

오히려 3D였기 때문에 이노우에 작가님의 완벽한 선이 애니메이터들의 편차 없이 일관되게 보여질 수도,

만화를 보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훨씬 공감하기 쉬운 사실적인 움직임으로 다가갈 수도 있었으리라.

여러모로 3D가 탁월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만화책을 봤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만한 중간중간 애정하던 캐릭터가 등장해서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명대사를  번씩 던져주는 장면을 만나는 것도 정말 즐거운 일이었다.

그리고 나보다 훨씬 깊게 몰입해서 보는 찐 팬이 실제 농구장 코트에 와 있는 듯

헉!이나 와! 하고 뱉어내는 현장음을 듣는 것도 집에서였다면 절대 경험하지 못했을 재미였다.



나의 최애는 정대만이었다.

선생님 농구가 하고 싶어요 했던 그 대사는

여러 가지 여건으로 그림을 마음껏 그리지 못했던 10대 내내 내 마음속에 깊이 맴돌던 내 마음의 소리와 꼭 닮아 있었다.

그리고 아무리 비틀거려도 제자리에서는 흐트러짐 없이 슛을 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아니 되고 싶다. 지금도.

포기를 모르는 불꽃남자 정대만처럼 나도 아직 포기하지 않았지.


이렇게 좋은 만화를 그리고 이렇게 멋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준 사람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시대를 넘어 가슴을 울려준 천재님에게도 무한 감사를.

그대와 함께 살아 숨 쉬고 있는 이 시대가 저에게 영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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